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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9대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릉(貞顯王后陵)" - 선릉(宣陵)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17. 2. 28. 22:30
조선 제9대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릉(貞顯王后陵)" - 선릉(宣陵)
정현왕후릉(貞顯王后 陵)은 성종의 계비(繼妃)인 정현왕후 윤씨의 능으로,
이 능은 선릉 동쪽 언덕에 안장되어 있는데, 봉분에 병풍석이 없는 것을 제외하고는 선릉과 비슷하다.능은 병풍석 없이 난간만 돌렸고, 석주(石柱)의 주두(柱頭)에는 초기 난간의 부드러운 맛이 그대로 남아 있다.
선릉, 정릉과 마찬가지로 정현왕후릉은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시신이 있는 곳까지 불타는 수모와 함께도굴을 당해 능침 속에는 유해가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정현왕후 윤씨는 파평(坡平) 윤씨(尹氏) 영원부원군(鈴原府院君) 윤호(尹壕)의 딸로 태어나
성종 4년(1473년) 12세의 나이로 숙의(淑儀)에 봉해졌다.
성종의 왕비 공혜왕후(恭惠王后)가 승하(성종 5년, 1474년)하고 원자(元子, 후에 연산군(燕山君))를 낳은숙의(淑儀) 윤씨(尹氏)가 계비(繼妃)가 되었으나 폐위되자, 1480년(성종 11년)에 왕비의 자리에 올랐다.
슬하에 중종(中宗)과 신숙공주(愼淑公主)를 낳고 중종 25년(1530년)에 승하하였다.폐비 윤씨로 크게 곤혹을 치른 성종은 정현왕후에 대해 "부녀는 질투하고 시기하지 않는 사람이 적은 법인데,
현명한 왕비를 맞아들인 후부터 내 마음이 편해졌다."라는 글을 지석에 쓴 걸로 봐선
그녀는 성종의 여자관계에 대해선 비교적 관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난간석주(欄干石柱)
이곳에 노출된 석물인 난간석주는 조선시대 정현왕후릉 조성 당시 또는
그 후 보수과정에서 파손되어 능 주변에 묻혀 있던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의 관람로가 신설된 후 토양이 빗물에 일부 유실되어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현왕후의 능은 능제 형식에 맞게 12개의 난간석주로 완전하게 구성되어 있다.
선릉(宣陵)
선릉은 조선 제9대 임금 성종(成宗, 1457~1494, 재위 1469~1494)과
계비 정현왕후 윤씨(貞顯王后 尹氏, 1462~1530)를 모신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이다.
서쪽 언덕에 성종의 능침(陵寢)이, 동쪽 언덕에 정현왕후의 능침이 조성되어 있다.
성종의 봉분에는 12면으로 된 병풍석을 두르고 십이지신상을 새겼고 봉분 주위에는 12칸의 난간석을 둘렀다.
세조가 능에 병풍석을 세우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으나 성종의 봉분에는 병풍석이 설치되어 있다.
정현왕후의 봉분에는 병풍석이 없이 난간석만 둘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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