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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제9대 성종대왕 선릉(宣陵)
    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17. 3. 1. 04:56

    조선 제9대 성종대왕 선릉(宣陵)

     

     

    홍살문()

     

    홍살문은 능역의 가장 아래쪽 정자각 남측 향로·어로가 시작되는 곳에 신성구역임을 표시하기 위해 세워놓은 문이다.

    기둥을 양쪽에 세우고 위에 심방과 띠장을 가로지르고 가는 살을 약 15~24cm 간격으로 박고

    중앙에는 삼지창과 태극문 등을 새긴 형태와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지붕은 달지 않는다.

    홍살문이란, 붉을 . 살은 한글로 화살의 살. . 직역하면 붉은 화살이 박혀있는 문이라는 뜻이다.

     

     

     

    향로(香路)와 어로(御路)

     

    홍살문 밑에 정자각까지 들어가는 돌길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왼쪽이 오른쪽보다 조금 더 높고, 더 넓다.

    왼쪽은 향로(香路), 오른쪽은 어로(御路). 향로는 제향을 지낼 때 혼령을 위한 향이 지나가는 길이다. 어로는 산 자의 길이다.

    무덤의 주인이 제례를 지내러 온 자손을 맞이하러 나오는 신도가 자손들의 길인 어도보다 위에 있고, 폭도 넓다.

     

     

     

     

    정자각(丁字閣)

     

    정자각은 능에서 산릉의례를 위한 건물로 정전(正殿),

    배위청(拜位廳)이 결합한 자형 평면을 이루어 정자각(丁字閣)이라 부른다.

    정전은 대부분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면 3칸은 모두 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양 측면은 화방벽이 설치되어 있는 벽으로 되어 있다.

    정자각은 봉분 아래에 있으며, 정자각 앞으로는 박석을 깐 삼도(三途, 三道)가 있고 삼도 맨 앞에는 홍살문이 놓인다.

    조선왕릉 정자각의 연원은 고려시대에서 찾을 수 있으나 그 이전의 정자각 형태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수라간(水剌間)

     

    궁중에서 임금의 진지를 짓는 부엌을 이르던 말로, 매년 제향을 지낼 때 음식을 덥히는 곳이다.

    정자각에서 10걸음 서쪽에 2칸으로 있다는 춘관통고(春官通考)의 기록과 유적 발굴로 초석을 찾아 2014년에 복원하였다.

     

     

     

    수복방(守僕房)

     

    수복방은 능지기들이 능역을 관리하기 위하여 정자각 동남쪽에 지은 집이다.

    보통 정면 3,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건축하였다.

    수복방은 18세기 중반까지는 2칸 규모로 조성되었으나 이후부터는 3칸규모로 조성되었다.

     

     

     

    예감(瘞坎)

     

    예감(瘞坎)은 제사때에 쓴 축문판(祝文板폐백(幣帛)을 묻는 구덩이이다.

    그 위치는 남향한 정자각의 서북편 임지(壬地-북북서)에 둔다고 하였다.

    제사를 끝내고 축문이나 폐백을 묻을 때 헌관·집례자가 이를 지켜 보던 일을 망예(望瘞)라 하고 그 자리를 망예위((望瘞位)라 한다.

    축문을 태우던 곳을 망료위(望燎位)라 하고, 위패를 불사르는 곳을 소대(燒臺) 또는 소전대(燒錢臺)라고도 한다.

    예감의 안넓이는 25, 길이 16, 바닥에는 방전(方甎)을 깔았고 위에는 석판이나 두꺼운 송판을 덮는다.

    이것을 예감판이라 한다.

     

     

     

     

     

    비각(碑閣)

     

    무덤 주인공의 표석(表石)을 놓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것이 비각이다.

    표석은 보통 1.5미터 높이의 장방형 돌에 주인공의 호칭을 새기고 간략한 이력을 적는데

    하부에 받침돌이 있고 위에도 화강석으로 기와지붕 형태를 다듬어 올려놓는다.

    비각은 보통 정면과 측면 각각 1칸의 간소한 규모이다.

    벽의 하부는 전돌로 채워서 내구성을 높이지만 상부는 나무로 창살만을 내서 바람이 잘 통하도록 한다.

    지붕은 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이다.

     

     

     

    선릉비 음기(宣陵碑 陰記)

     

    (전면)

    朝鮮國 成宗大王 宣陵 貞顯王后祔左岡(조선국 성종대왕 선릉 정현왕후부좌강)

     

    (후면)

    成宗康靖仁文憲武欽聖恭孝大王(성종강정인문헌무흠성공효대왕)

    성종강정인문헌무흠성공효대왕은

     

    皇明天順元年丁丑七月三十日誕生(황명천순원년정축730일탄생)

    명나라 천순원년(1457) 730일 탄생하셨다.

     

    辛巳初封者山君成化四年戊子加封者乙山大君(신사초봉자산군성화4년무자가봉자을산대군)

    신사년(1461) 처음으로 자산군에 봉해졌고, 성화4(1468) 자을산대군으로 다시 봉해졌으며,

     

    己丑十一月卽位弘治七年甲寅十二月二十四日昇遐(기축11월즉위홍치7년갑인1224일승하)

    기축년(1469) 11월 즉위하셨다. 홍치7(1494) 1224일 승하하시어

     

    乙卯四月六日葬于西學堂洞壬坐之原(을묘46일장우서헉당동임좌지원)

    을묘년(1495) 46일 광주 서학당동의 남남동향언덕(壬坐丙向)에 장사지냈다.

     

    在位二十五年壽三十八皇朝賜諡康靖(재위25년수38황조사시강정)

    재위 25년 보령 38세이셨으며, 명나라에서는 시호로 강정을 내렸다.

     

    繼妃慈順和惠昭懿欽肅貞顯王后尹氏(계비자순화혜소의흠숙정현왕후윤씨)

    계비자순화혜소의흠숙정현왕후윤씨는

     

    天順六年壬午六月二十五日誕生成化九年癸巳初封淑儀(순천6년임오625일탄생성화9년계사초봉숙의)

    천순 6(1462) 625일 탄생하시어 성화 9(1473) 처음으로 숙의에 봉해졌고

     

    庚子十月冊封王妃嘉靖九年庚寅八月二十二日昇遐(경자10월책봉왕비가정9년경인822일승하)

    경자년(1480) 10월 왕비에 책봉되셨다. 가정 9(1530) 82269세로 승하하시어

     

    十月二十九日葬于大王陵左岡艮坐之原壽六十九(1029일장우대왕릉좌강양좌지원수69)

    1029일 대왕릉 좌측 언덕의 남서향(艮坐坤向) 둔덕에 장사지냈다.


    崇禎紀元後一百二十八年乙亥二月日立(숭정기원후128년을해2월일립)

    1755(영조 31) 2월 일 세움

     

     

     

     

     

     

     

     

     

     

     

     

     

     

     

     

    선릉(宣陵)

     

    선릉은 조선 제9대 임금 성종(成宗, 1457~1494, 재위 1469~1494)

    계비 정현왕후 윤씨(貞顯王后 尹氏, 1462~1530)를 모신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이다.

    서쪽 언덕에 성종의 능침(陵寢), 동쪽 언덕에 정현왕후의 능침이 조성되어 있다.

    성종의 봉분에는 12면으로 된 병풍석을 두르고 십이지신상을 새겼고 봉분 주위에는 12칸의 난간석을 둘렀다.

    세조가 능에 병풍석을 세우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으나 성종의 봉분에는 병풍석이 설치되어 있다.

    정현왕후의 봉분에는 병풍석이 없이 난간석만 둘러져 있다.

     

     

     

    9대 성종 선릉(成宗 宣陵)

     

    선릉은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으로 서쪽 언덕에 조선 제9대 왕인 성종대왕이,

    동쪽 언덕에는 계비(繼妃) 정현왕후가 모셔져 있고 홍살문과 정자각이 두 릉의 남쪽 가운데 위치한다.

    성종은 1457730일 경복궁에서 세조의 맏아들인 의경세자(덕종으로 추존)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睿宗)14691128일 재위 14개월 만에 승하하자

    정희대비(세조의 비) 명에 따라 13세에 경복궁 근정전에서 왕위에 올랐다.

    재위 중 경국대전을 반포하여 조선의 법전체제를 완성하고

    조세제도(租稅制度)로는 관수관급제를 실시하여 백성의 부담을 줄였다,

    홍문관을 설치하고  동국여지승람 등 많은 서적을 편찬하였다

    국조오례의를 편찬하여 유교예법을 확립하고 창경궁을 창건하였다.

    밖으로 윤필상 등을 보내 압록강, 두만강 건너의 야인을 물리쳐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왕비로는, 원비인 공혜왕후(1456~74)는 후사 없이 승하하여 파주 순릉(順陵)에 모셔졌고,

    연산군의 모후인 윤씨(1455~1482)는 폐비가 되어 서삼릉의 회묘(懷墓),

    계비 정현왕후(1462~1530) 이 곳 선릉의 동쪽 언덕에 모셔져 있다.

    성종은 39후궁에게서 1612녀를 두고 14941224일 창덕궁에서

    보령 38세에 승하하니 재위기간은 251개월이다.

    정현왕후는 윤호(尹壕)의 딸로 1462625일 태어나, 14736월 숙의(淑儀)가 되었고,

    1480118일 왕비가 되어 중종과 신숙공주를 낳았다.

    1530822일 경복궁에서 보령 69세로 승하하여 1029일 선릉에 장사되었다.

    성종대왕릉은 병풍석의 면석(面石)에는 구름 문양 속에 십이지신(十二支神),

     지대석(地臺石)과 만석(滿石)에는 연꽃문양,

    인석(引石)에는 해바라기와 모란문양이 조각되어 있고 상석(裳石) 및 난간석이 있다.

    정현왕후릉은 병풍석이 없고 난간석만 있으며

    이곳 석물들은 국조오례의에 의하여 장대하면서도 조화가 잘 이루어져 균형미가 있다.

     

    * 선릉 연혁

    - 1495(연산군) 성종 안장, 선릉 조성

    - 1530(중종 25) 정현왕후 안장, 동원이강릉으로 조성

     

    * 선릉 제향일

    - 성종 : 매년 1224(음력)

    - 정현왕후 : 매년 822(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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