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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1대 임금 중종의 정릉(靖陵)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17. 2. 28. 05:08
조선 제11대 임금 중종의 정릉(靖陵)
정릉(靖陵)은 조선 11대 임금 중종(中宗,1488-1544, 재위 1506-1544)의 단릉(單陵)이다.
중종의 능은 원래 고양시 서삼릉 구역에 장경왕후 윤씨(章敬王后 尹氏, 1491-1515)와 함께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으로 모셔졌으나,
풍수지리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1562년에 문정왕후의 주도로 이곳으로 옮겨졌다.
문정왕후 윤씨(文定王后 尹氏, 1501~1565)는 이곳에 합장되기를 원했으나
지대가 낮아 침수가 자주 발생하자 명종은 어머니 문정왕후를 이곳이 아닌 태릉(泰陵)에 모셨다.
봉분에는 십이지신상을 세긴 병풍석을 세우고 난간석을 둘렀다.
※단릉(單陵): 왕이나 왕비를 단독으로 모셔진 형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왕과 왕비의 능이 정자각 뒤편 좌우의 서로 다른 언덕위에 조성된 형태.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 100길 1 (삼성동)
신도(神道)와 어도(御道)
홍살문 밑에 정자각까지 들어가는 돌길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왼쪽이 오른쪽보다 조금 더 높고, 더 넓다.
왼쪽은 신도(神道), 오른쪽은 어도(御道)다. 신도는 죽은 자의 길, 어도는 산 자의 길이다.
무덤의 주인이 제례를 지내러 온 자손을 맞이하러 나오는 신도가 자손들의 길인 어도보다 위에 있고, 폭도 넓다.
정자각(丁字閣)정자각은 능에서 제사지낼 때 사용하는 중심 건물로 위에서 본 모양이 ‘丁’자와 같아 ‘정자각(丁字閣)’이라고 부른다.
정자각은 봉분 아래에 있으며, 정자각 앞으로는 박석을 깐 삼도(三途, 三道)가 있고 삼도 맨 앞에는 홍살문이 놓인다.
조선왕릉 정자각의 연원은 고려시대에서 찾을 수 있으나 그 이전의 정자각 형태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신계(神階)와 어계(御階)
정자각의 계단은 좌측의 신계(神階), 우측의 어계(御階)로 나뉘어 정자각의 문 앞에서 두 길이 만난다.
그 중 왼쪽은 신령이 오르는 신계(神階)고, 오른쪽은 임금과 제관이 오르는 어계(御階)다.
정자각 계단으로 올라서 동문으로 들어가고 서문으로 나와 서쪽 계단으로 내려오는 동입서출(東入西出) 한다.
신계(神階)
어계(御階)
비각(碑閣)
중중대왕의 일대기를 기록한 비석
정릉비 음기(靖陵碑 陰記)
前面(전면)
朝鮮國中宗大王靖陵(조선국중종대왕정릉)
후면(後面)
中宗恭僖徽文昭武欽仁誠孝大王
중종공희휘문소무흠인성효대왕은
皇明弘治元年戊申三月五日誕生
명나라 홍치 원년(1488년) 3월 5일 탄생하셨다.
初封晋城大君正德元年丙寅九月二日卽位
처음에는 진성대군에 봉해졌고, 정덕 원년(1506년) 9월 2일 즉위하셨다.
嘉靖二十三年甲辰十一月十四日傳位于仁宗十五日昇遐
가정 23년(1544년) 11월 14일 인종에게 전위하시고 같은 달 15일 승하하셨다.
乙巳二月葬于高陽禧陵
을사년(1545년) 2월 고양 희릉에 장사지냈으나
嘉靖四十一年壬戌九月四日移葬于廣州宣陵東岡乾坐之原
가정 41년(1562년) 9월 4일 광주 선릉 동쪽 언덕 동남향 둔덕으로 이장되었다.
在位三十九年壽五十七皇朝賜諡恭僖
재위 39년 보령 57세이셨으며, 명나라에서는 시호로 공희를 내렸다.)
崇禎紀元後一百二十八年乙亥二月日立
1755년 영조 31년 2월 일 세움
날짜는 음력임.
제11대 중종 정릉(中宗 靖陵)
정릉은 중종대왕의 단릉(單陵)이다.
중종은 1488년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사이에서 태어나 1494년 진성대군에 봉해졌다.
1506년 9월 박원종 등이 반정을 일으켜 조선 제10대 왕인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성종의 둘째 아들인 진성대군을 조선 제11대 왕으로 추대하였다.
재위 기간 중 조광조 등 새로운 학자를 등용하여 나라의 기틀을 확립하고자
현량과(賢良科)를 설치하고 향약(鄕約)을 실시하여 향촌자치를 시도하였다.
그의 재위기간 중 서원(書院)이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주자도감(鑄字都監)을 설치하여 활자를 개량하여 많은 책을 펴냈다,
북방야인의 침범에 대비하고, 삼포에서 왜인들이 난동을 부리자 이를 진압한 뒤 한 뒤
비변사(備邊司)를 설치하여 국방체제를 정비하였다.
왕비로는, 신수근의 딸인 원비 단경왕후(1487~1557)는 양주시 온릉(溫陵)에,
윤여필의 딸인 제1계비 장경왕후(1491~1515)는 고양시 서삼릉의 희릉(禧陵)에,
윤지임의 딸인 제2계비 문정왕후(1501~1565)는 서울시 노원구 태릉(泰陵)에 모셔져 있다.
중종은 3비 9후궁에게서 9남 11녀를 두었다.
1544년 11월 14일 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다음날 창경궁에서 승하하니 재위 39년이며 보령 57세였다.
1545년 2월 현재의 고양시 희릉에 장사하였으나,
문정왕후에 의하여 1562년 9월 4일 이곳 선릉 동쪽 동남향 언덕으로 옮겨졌다.
문정왕후 사후 문정왕후도 이곳으로 장사하려 하였으나,
한강의 범람으로 홍살문까지 물이 들어와 이장론(移葬論)이 대두하여 문정왕후는 태릉에 장사되었다.
정릉은 단릉으로, 홍살문과 정자각 및 능침이 일직선상에 있다.
병풍석의 면석에는 구름 문양 속에 십이지신이, 지대석과 만석에는 연꽃모양이,
인석에는 국화문양과 모란문양이 조각되어 있고 상석 및 난간석이 있으며
문석인과 무석인은 장대하고 선각이 뚜렸하며 머리가 몸에 비하여 큰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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