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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박한 궁궐 건축물 "창덕궁 낙선재(昌德宮 樂善齋)"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7. 3. 11. 05:28

    소박한 궁궐 건축물 "창덕궁 낙선재(昌德宮 樂善齋)"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창덕궁에 있는 조선 후기의 건물. 주택풍의 연속된 건물 세 채와 후원(後園)이 딸려 있다.

    낙선재(樂善齋) 건물은 본래 국상(國喪)을 당한 왕후들이 소복(素服)을 입고 은거하던 곳이므로

    상중에 근신하는 왕후가 소박한 건물에서 예를 갖추는 법도를 지키도록 하여 단청도 하지 않았다.

    후원은 절제되면서도 조화 있는 조경으로 꾸며져 있다. 1846(헌종 12) 창건되었다.

    1926년 순종이 죽은 뒤 조선의 마지막 황후인 윤비(尹妃,순정효황후)가 이곳에서 은거하다 별세하였고,

    고종의 외동딸인 덕혜옹주가 생을 마쳤던 곳이며,

    그리고 1963년 일본에서 환국한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도 이곳에서 생애를 마쳤다.

    건물이 위치한 곳은 궁의 동쪽 건양문(建陽門) 밖으로 이곳은 원래 태조가 임종한 광연정(廣延亭)이 있던 자리이며,

    뒤에 왕세자인 동궁의 처소인 저승전(儲承殿)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건물 구성은 낙선재·석복헌(錫福軒수강재(壽康齋) 세 건물이 옆으로 길게 붙어 있고,

    그 뒤편에 건물이 들어가고 나온 데 따라서 자연스럽게 후원이 조성되었다.

    낙선재의 앞과 오른쪽에는 행랑이 있어서 외부와 경계를 짓고  있으며,

    행랑 남쪽 가운데에 장락문(長樂門)이라는 출입문이 나 있다.

       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자형의 낙선재가 나타난다.

    사대부들의 주택 사랑채를 닮은 소박한 건물로 정면 6, 측면 2칸에 누마루 등이 딸려 있는데, 모두 17칸반의 규모이다.

    장대석을 반듯하게 다듬은 기단 위에 네모난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으며,

    기둥 위에는 간결한 형식의 익공(翼工)을 끼웠다.

    가운데 3칸은 퇴를 개방하였고 나머지는 분합문이나 회벽으로 벽체를 꾸몄는데,

    분합문의 창살무늬가 다양하고 섬세하게 꾸며져 여성들이 머무르는 궁중의 건물다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누마루 아래에 아궁이를 설치한 벽에는 작은 돌을 불규칙하게 붙여 자유롭고도 아름다운 벽면을 장식하였다.

    후원 동쪽에는 꽃무늬 담장 사이에 월광문(月光門)이라는 출입문이 나 있는데

    완전한 원형을 이루고 있고안쪽에 좌우로 미닫이 판문이 달려 있다. 

     

     

     

     

     

     

     

     

     

     

     

     

    여성들의 소박한 공간, "창덕궁 석복헌(昌德宮 錫福軒)“

     

    창덕궁의 낙선재(樂善齋)가 사랑채에 해당한다면 석복헌(錫福軒)은 안채에 해당하는 곳이다.

    각종 살림살이에 요긴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황후의 처소공간이 아닌 마치 여염집 같은 분위기를 느끼는 곳이다

    조선의 마지막 왕손인 이구씨가 결혼하였던 외국인 여인이 한동안 이집에 살았다.

     

     

     

     

    장수와 건강을 기리는 "창덕궁 수강재(昌德宮 壽康齋)"

     

    창덕궁 수강재는 별당역할을 하는 건물로 조선 제24대 헌종이 지어준 곳으로 

    대왕대비인 순원왕후(1789~1857, 23대 순조의 왕비) 거처하였고 

    일본에 볼모로 가 있던 대한제국의 덕혜옹주(1912~1989)가 말년에 폐인이 되어 귀국하여 한 많은 여생을 마친 곳이다.

    수강재는 헌종이 할머니 순원왕후 김씨(1789~1857)의 장수와 건강을 기리는 이름이다.

     

     

     

     

     

     

    수강재(壽康齋) 전통구들 전시

     

    구들은 바닥을 뜨겁게 덥혀 난방하기 위하여 방바닥에 구들장을 깔고

    그 밑에 불을 지펴 바닥을 데우는 구조체 또는 그러한 난방방식을 말한다. 온돌이라고도 한다.

    200여년 전 축조된 구조로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궁궐과 민가의 건축 양식이 도입되어 최근까지 실제 거주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궁궐에서 흔치 않은 부채고래 형태와 한 장의 함실장(아랫목돌)으로 그 위에는 더 이상 구들돌이 없는 특이한 구조이다.

    고래둑은 높이 약 40cm로 전돌과 기와 조각을 쌓아 조성하였고 그 위에 약 10cm 두께의 구들장이 덮여있다.

    2016년 사단법인 한국전통구들협회에서 해체, 보수, 정비하였다.

     

     

     

     

     

     

    승화루(承華樓)

     

    창덕궁 상량정(上凉亭) 서쪽에 있는 승화루(承華樓)를 "창경궁 궁궐지"에서는

    창덕궁 호원의 주합루(宙合樓)에 비견하여 소주합루라하고, 아래층을 의신각(儀宸閣)이라 하였다.

    현재는 승화루(承華樓)와 삼삼와(三三窩) 그리고 삼삼와에서 이어지는 복도인 칠분서(七分序)만 남아있다. 

    현재의 승화루(承華樓)의 모습은 아래층 의신각(儀宸閣)이 헐려 없어지고 돌로 된 누기둥만 남아있다.

    승화루는 반간통 3간의 도합 4간 반짜리 이익공 집으로

    기둥의 길이가 8척 5치에 양통은 12척 5치이며 도리통은 3간 8척씩이다.

    승화루(承華樓)는 일제시기에 우리나라의  왕실을 탄압하고자 창덕궁 경찰서로 사용하기도 했으며 

    일군의 건물은 정조 연간(1777~1800)에 건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이한 명칭의 육각정자 "삼삼와(三三窩)"

     

    창덕궁 낙선재(昌德宮 樂善齋)삼삼와(三三窩)는 특이하게 부르게 된 연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부용정(芙蓉亭남쪽에 있던 개유와(皆有窩)는 중국 서적을 수장하였던 건물이며,

    그 뜻은 "모든 것이 있는 움집"이란 것을 감안하면 삼삼와(三三窩)는  "여섯 모서리 움집"이란 뜻이며,

    승화루(承華樓)의 아래층인 의신각(儀宸閣)과 함께 귀한 서적을 보관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6각형의 정자로 1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기둥 하부로 2단으로 쌓고 그 위에 초석을 놓고

    그 위의 아래층 벽에는 전돌로 거북의 등문양(귀갑문)을 장식하였다.

    바깥쪽에는 모두 3단의 툇마루 난간을 두르고 이 난간은 칠분서(七分序)의 난간과 계단으로 연결되도록 하였다.

    2층의 기둥은 모두 6각형 기둥을 사용하였으며 지붕 위에는 절병통을 설치하였다.


     

     

     

    아름다운 육각정자 "창덕궁 상량정(昌德宮 上凉亭)"

     

    상량정(上凉亭)은 1908년경 융희년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궐도형>에 보면

    평원루(平遠樓)라는 이름의 육각정으로 그려져 있으나,

    현재는 상량정으로 이름이 바뀌어 있다.건립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1820년대에 그려진 <동궐도>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다.

    다만 1908년 무렵 제작된 <동궐도형>에서는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상량정, 즉 평원루는 그 사이 어느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될 따름이다.

    물론 상량정이란 이름 역시 1908년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일제시기에 이름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한 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안쪽으로 다시 한 단을 돌려 쌓고 그 위에 육각형의 돌기둥으로 밑층을 세운 뒤

    그 위에 계자 난간의 튓마루를 구성하였고 난간의 궁판에는 투각하여 치장하고

    난간 하부로도 낙양을 두어 장식하였다.

    위층의 벽에는 육각형의 기둥 사이로 사분합문의 창살 구성이 독특하고 공포는 일출목의 다포 형식이며

    겹처마의 육각 지붕 정상에는 절병통을 설치 하였다.

    천장에는 서까래가 노출되어 있고 중도리 안쪽 육각형의 부분은 마름모꼴의 소란 반자로 구성하고

    봉황과 용과 박쥐 문양으로 화려한 단청을 베풀었다.

    궁궐에 있는 소규모의 정자로서는 이례적으로 치장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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