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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덕궁 후원(昌德宮 後苑) - 부용지(芙蓉池) 부용정(芙蓉亭) 주합루(宙合樓) 영화정(迎華亭)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7. 3. 25. 05:03

    창덕궁 후원(昌德宮 後苑)

    부용지(芙蓉池) 부용정(芙蓉亭) 주합루(宙合樓) 영화정(迎華亭)

     

     

     

     

     

    부용정(芙蓉亭)


    부용지(芙蓉池)에 두 다리를 연못에 담그고 있는 부용정은

    사방으로 지붕이 돌출된 열 십자()자 형태의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1792년 건립된 부용정은 ()자형을 기본으로 하되,

    남쪽으로 양쪽에 한 칸씩 보태 다각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정자이다.

    1795년 정조는 사도세자와 혜경궁의 회갑을 기념하여 화성에 다녀온 뒤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부용정에서 규장각 신하들과 낚시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어수문(魚水門)과 주합루(宙合樓)


    주합루는 정조 원년(1776)에 창건된 2층의 누각건물이다.

    아래층에는 왕실 직속 기관인 규장각(奎章閣), 위층에는 열람실 겸 누마루를 조성했다.

    규장각은 정조의 개혁 정치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책 개발과 이를 위한 도서 수집 및 연구기관으로 설립되었다.

    정조는 세손시절부터 정적들로부터 끊임없는 질시와 위협에 시달렸는데,

    이에 굴하지 않고 학문연구와 심신단련에 힘을 써 위대한 계몽군주가 될 수 있었다.

    주합루로 오르는 길에 작은 어수문이 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다는 격언과 같이 통치자들은 항상 백성을 생각하라는 교훈이 담겨진 문으로,

    정조의 민본적인 정치철학을 보여준다.

     

     

     

    어수문(漁水門)

     

    어수문(漁水門) 흔히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고기와 물을 비유하는 하는 의미와 등용문의 의미를 같이 가지고 있다.  

    이 문은 일종의 3개의 대문을 가진 일각문으로 주합루에 비해 아담하고 화사한 장식이 특징이다.

     

     

     

     

    주합루(宙合樓)

     

    주합루(宙合樓)는 앞면5칸 옆면4칸의 2층 누각이다

    정조는 박식하여 많은 저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서책들을 많이 출판하였다.

    주합루는 좋은 환경에서 학자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정조의 의도를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주합루 아래층에 규장각이라하여 수만권의 책을 보존하는 서고로 꾸몄다.

     

     

     

    취병(翠屛)


    취병은 조선시대 독특한 조경기법의 하나로 푸른 병풍처럼 만든 울타리이다.

    내부가 보이는 것을 막아주는 가림막 역할과 공간을 분할하는 담의 기능을 하면서

    그 공간을 깊고 아늑하게 만들어 생기가 나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주합루의 취병은 1820년대 그려진 동궐도의 그림을 토대로 하여

    임원십육지 관병법에 기록되어 있는 제작 기법대로 대나무 틀을 짜고 신우대를 심어 재현한 것이다.

     

     

     

    부용지 우물

     

    부용지 모퉁이에 있는 우물. 부용지는 땅에서 솟아나는 지하수를 수원으로 하고 있다.

     

     

     

    창덕궁 사정기비각(昌德宮 四井記碑閣)

     

    부용지 서쪽 물가에 있는 사정기비각이다. 비석에는 부용지를 만들게 된 배경과 과정이 새겨져 있다. 

    세종 6년에 영순군과 조산군을 시켜 우물을 찾게 했는데 그 때 찾아낸 4곳의 우물에

    마니(摩尼), 파려(玻瓈), 유리(琉璃), 옥정(玉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기록이 있다.

     

     

     

     

    부용지(芙蓉池)

     

    부용지(芙蓉池)는 연못의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창덕궁 후원에서는 제일 큰 연못으로

    동쪽에는 큰 정자인 영화당(暎花堂), 북쪽에는 주합루(宙合樓)를 비롯한 규장각(奎章閣) 건물들이,

    남쪽에는 작은 휴식공간인 부용정(芙蓉亭)이 자리 잡고 있다.

    원래는 국왕을 비롯한 왕실 가족들의 휴식공간으로 조성되었지만,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타버린 후 창덕궁과 창경궁이 동궐로 법궁 역할을 하면서

    국왕이 주최하는 연회를 비롯한 공식 행사를 할 수 있는 경복궁 경회루 영역과 비슷한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복궁 경회루 연못과 비슷한 역할을 했던 부용지는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이다.’라는

    동양의 우주관을 보여주고 있는 전형적인 한국 정원의 연못이다.

     가운데에는 소나무를 비롯한 수목들이 심어져 있는 둥근 섬이 있다

    이는 신선들이 논다는 삼신선산의 하나인 방장(方丈)이나 봉래(蓬萊) 또는 영주(瀛州)를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당(暎花堂)


    영화당은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현재 건물은 숙종 2(1692)에 재건한 것이다.

    왕족의 휴식공간이자 이 건물의 앞마당인 춘당대에서는 친히 임금이 참석한 가운데 인재등용을 위한 과거를 실시하였다.

    영화당 현판은 영조의 어필이다. 영화당은 서쪽에 연못이 있고

    동쪽에는 널찍한 춘당대(春塘隊)가 있어 역대 임금이 이곳에서 많은 행사를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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