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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한양도성 (북악산구간)
    국내 나들이/산(山)으로 2017. 4. 11. 23:00

    서울 한양도성 (북악산구간)

     

    창의문 - 창의문 안내소 - 돌고래쉼터 - 백악쉼터 - 백악마루 - 1.21사태 소나무 -

    청운대 - 백악곡성 - 백악 촛대바위 - 숙정문 - 말바위 안내소 - 와룡공원

     

     

    창의문(彰義門)

     

    지정번호: 사적 제10(서울 한양도성)

    시대:1396(태조 5) 

     

    창의문은 인왕산과 백악산이 만나는 곳에 있는 문이다.

    사소문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에 지어진 문루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문루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741(영조17)에 다시 세운 것으로,

    문루를 새로 지으면서 인조반정 때 반정군이 이 문으로 도성에 들어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공신들의 이름을 새긴 현판을 문루에 걸어 놓았다.

    이 문 부근의 경치가 개경(開京)의 승경지(勝景地) 자하동(紫霞洞)과 비슷하다고 하여

    자하문(紫霞門)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

     

     

     

     

     

    청계천 발원지(淸溪川 發源地)

     

    이곳에서 동쪽 북악산 정상 쪽으로 150m 지점에 항상 물이 흘러나오고 있는 약수터가 있으므로  

    이를 청계천 발원지(發源地)로 정하였다.

     

     

     

     

     

     

    창의문안내소

     

    북악산 일대의 한양도성은 1단계로 200641일 홍련사 숙정문 - 촛대바위(1.1km) 구간을 개방하였고,

    이후 200745일에 와룡공원 숙정문 청운대 백악마루 - 창의문(4.3km)의 나머지 백악 구간을 전면 개방하였다.

    또한 200771일 부터는 방문객들이 군사보호구역인 백악구간의 출입을 좀 더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신분증(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 제시와 간단한 신청서 작성으로 출입절차를 간소화하였다.

     

     

     

    탐방 신청 방법

     

    한양도성 백악구간은 군사보호구역이므로 신분증(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 소지자만 출입이 가능합니다.

    (17세 미만은 보호자 동반 시 출입 가능)

    현지 개별 신청: 출입신청서 작성 후 안내소에 제출(신분증 제시), 표찰 수령 후 입장

    사전 단체 신청: 20명 이상 단체일 경우 탐방일 7일 전까지 한국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사전 접수

    외국인 신청: 출입신청서 작성 후 안내소에 제출(여권 혹은 외국인등록증 제시)

     

     

     

     

     

     

     

     

     

     

     

    북악의 식생(植生)


    경복궁의 진산(鎭山)인 북악은 높이 342m에 이르며 화강암이 주를 이룬 돌산으로,

    산 능선을 따라 조성된 성곽 주위로 수목이 가꾸어져 있다.

    특별히 소나무는 조선 개국 초부터 특별 보호 대책을 세워 관리되었다.

    조선시대 내내 잘 보존되어 온 소나무 숲은 일제강점기 이후 숲이 방치되면서 능선 주위에만 주로 살아남아 오늘에 이른다.

    북악산은 근 40년 동안 인간의 간섭을 받지 않은 덕분에 식물들이 잘 보존된 천연의 공간이 되었다.

    지금 자라고 있는 식물은 208종류이고 그중 나무는 81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키 큰 나무(교목류)로는 소나무, 팥배나무, 때죽나무, 산벚나무 등이 있고

    키 작은 나무(관목류)로는 진달래, 철쭉, 쥐똥나무, 국수나무 등이 있다.

    바늘잎나무로는 소나무가 대부분이며 넓은잎나무는 참나무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나무가 섞여 자라고 있다.
    그 외 성곽 주변에 아까시나무, 은수원사시나무, 리기다소나무 등

    토사 유출을 막기 위하여 심은 나무와 최근 조경수로 심은 스트로브잣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팥배나무 군락은 숙정문 일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다른 곳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북악 특유의 식생이다.

    팥배나무를 비롯한 새 먹이가 될 수종이 많기 때문에 야생동물 중 특히 새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북악산 옛 모습으로 복원

     

    이곳은 북한군의 공중위협으로부터 청와대를 방호하기 위해 1979.10.15일부터 북악통제대 및 발칸진지를 설치.

    운용한 자리이며 200099일 보다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 다른 곳으로 이전하였다.

    민족의 정기가 서려있는 이 곳 북악산을 우리가 살고 후손들이 살아야 할 영원한 삶터로 가꾸기 위해 옛 모습으로 복원하다.

    민족과 함께 영원히 살아 숨쉬길 기원하며

     

    2001년 새해 아침

     

     

     

     

    1.21사태 소나무

     

    1968121일 북한 124군부대 김신조 등 31명은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침투하여,

    현 청운실버타운(청운동) 앞에서 경찰과 교전 후 북악산 및 인왕산 지역으로 도주하였다.

    당시 우리 군경과 치열한 교전 중 현 소나무에 15발의 총탄 흔적이 남게 되었고,

    이 후 이 소나무를 1·21사태 소나무라 부르고 있다.

    무장공비 일당은 당시 청와대 및 주변시설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침투간 아군복장과 민간복 착용,

    취객으로 위장하는 등 치밀하고 철저하게 준비하여 도발을 자행하였다.

    121일 교전 후 14일간 작전결과 침투한 31명 중 1명 도주, 29명 사살, 1명 생포(김신조)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향토예비군이 창설('68.4.1.)되었다.

     

     

     

     

     

     

    성벽 축조의 시대별 차이

     

    태조 5년(1396)의 성벽 - 큰 메주만 한 크기의 자연석을 다듬어 쌓았음

    세종 4년(1422)의 성벽 - 장방형 돌을 기본으로 하면서 사이사이에 잔돌을 섞어 쌓았음.

    숙종 30년(1704)의 성벽 - 2자* 2자의 석재를 정사각형에 가깝게 규격화하여 튼튼하게 쌓았음. 장정 4명이 들 수 있는 무게임.

     

     

     

     

     

     

     

    숙정문(肅靖門)

     

    숙정문(肅靖門)은 서울 남대문인 숭례문(崇禮門)과 대비하는 북대문으로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이다.

    이 문은 정월대보름 전 세 번 놀러오면 액운이 사라진다는 속설이 있어 여인들이 자주 찾았으며,

    덩달아 사람들의 발길이 많아졌다고 한다.

    원래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으로, 도성 북쪽에 있는 대문이라 하여 북대문(北大門북문(北門) 등으로도 부른다.

    숙정문이 처음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1523(중종 18)이며, 북정문(北靖門)이란 표현도 나오는데,

    숙청문과 숙정문이 혼용되다가 뒤에 자연스럽게 숙정문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1396(태조 5) 9월 다른 성문과 함께 완공되었다.

    1413(태종 13)에는 풍수학자 최양선(崔揚善)의 상소로 숙정문 관광방동령로(觀光坊東嶺路)을 폐쇄하였으며

    길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다.

    1504(연산군 10)에는 숙정문을 없애고 오른쪽에 새로이 문을 세우라고 명하였으나

    실제로 문을 옮겼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숙청문은 음양오행 가운데 물을 상징하는 음()에 해당하는 까닭에

    나라에 가뭄이 들 때는 기우(祈雨)를 위해 열고, 비가 많이 내리면 닫았다고 한다.

    1963121일 서울성곽에 포함되어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었다.

    19681.21 사태 이후 청와대 경비를 위해 일반인의 접근을 금지하다가

    200641일 인근의 성곽 탐방로 1.1km 구간과 함께 다시 일반에 개방하였다.

    지금의 숙정문 목조 누각은 소실되었던 것을 1976년에 복원한 것이며, 현판의 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것이다.

     

     

     

    서울 한양도성 - 사적 제10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도심의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1396(태조 5)에 백악(북악산) · 낙타(낙산) · 목멱(남산) ·

    인왕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축조한 이후 여러 차례 고쳤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며,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래도록(1396~1910, 514) 성의 역할을 다한 건축물이다.

    한양도성의 성벽에는 낡거나 부서진 것을 손보아 고친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성벽 돌에 새겨진 글자들과 시기별로 다른 돌의 모양을 통해 축성 시기와 축성 기술의 발달 과정을 알 수 있다.
    한양도성에는 사대문(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과 사소문(혜화문 소의문 광희문 창의문)을 두었는데,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없어졌다.

    2014년까지 한양도성 전체 구간의 70%가 옛 모습에 가깝게 정비되고, 숙정문, 광희문, 혜화문은 다시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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