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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행궁 외정리소(華城行宮 外整理所)와 기층헌(起層軒)
    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17. 4. 27. 05:30

    화성행궁 외정리소(華城行宮 外整理所)와 기층헌(起層軒)

     

    정리소(整理所)는 장차 1795년 을묘원행에서 펼쳐질 각종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179412월에 설치한 임시 기관이었는데, 화성 성역이 끝난 후 외정리소라 하여

    정조를 비롯한 역대 임금이 행차할 때 화성행궁에서의 행사 준비를 담당하는 관청이 되었다.

    처음에 정리소는 장용내영에 설치하였는데, 1796(정조 20) 화성행궁이 완성되면서

    유여택(維與宅) 앞에 외정리소를 세우고 '외정리아문(外整理衙門)'이란 편액을 달았다.

    외정리사(外整理使)는 호조판서(戶曹判書)가 겸임하는 것이 상례였으나

    화성의 경우는 화성 유수가 겸직 하였다.

     

     

     

     

     

     

     

     

     

    기층헌(起層軒)

     

    외정리소 옆에 위치한 작은 건물로 을묘원행과 혜경궁홍씨 진찬연 등

    궁중음악에 사용되던 편경, 편종 등 각종 악기들이 전시 되어있다.

     

     

     

     

     

    진고(晉鼓)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진고는 네 기둥을 세우고, 거기에 횡목(橫木)을 가로지른 틀 위에 놓는다.

    현가악의 시작과 끝날 때 치며 음악 중간에 치기도 한다.“라고 씌여있다.

    진고(晉鼓)는 북소리가 크고 매우 진취적이라 힘차게 나아간다는 뜻으로,

    진고는 중국 송나라 때 이조라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고려 예종 11년에 들어와 궁중음악 중 제례음악에 쓰이게 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특경(特磬)

     

    고려 예종 11년에 들어 온 악기로, 특종(特鐘)처럼 한 개의 큰 경을 틀에 매단 것이다.

    돌로 만든 "자 모양으로 된 경()16개나 단 편경과 달리 1개만을 달아 뿔망치 곧 각퇴(角槌)로 쳐서 소리를 낸다.

    그 음색은 맑고 청아한데, 세종 때에는 가경(歌磬)” 이라고도 하였다.

    특경은 우리 음악의 기본음인 황종(黃鐘)소리를 낸다.

    그리고 음악을 시작할 때 치는 특종(磬鐘)과 달리 끝날 때 치는 악기이다.

    조선왕조 세종 때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이 악기는 지금 종묘제례악과 문묘(공자묘)제례악에 사용하고 있다.

     

     

     

    특종(特鐘)

     

    단 한 개의 종으로 된 타악기의 하나로 세종 때에는 가종(歌鐘)이라고도 하였다.

    고려 예종 11(1116) 중국 송나라에서 들어온 대성아악(大晟雅樂) 중에는 특종이 없고,

    조선조 세종 때 아악을 정비하며 황종(黃鐘) 율에 맞추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본래 등가(登歌)의 특종은 황종 음() 하나를 쓰고, 헌가에는 각각 율이 다른 아홉 개의 특종을 쓴다.

    오늘날에는 문묘(文廟) 석전(釋奠)의 등가에서만 사용하는데, 음악을 시작할 때 사용한다.

     

     

     

    운라(雲羅)

     

    이 악기는 놋 접시 모양의 나(, ) 10매를 매달아서 작은 망치로 하나 하나 때려서 소리를 내는 것이다.

    징의 지름은 10개가 모두 같으나 그 후박(厚薄)으로 높낮이가 달라서, 얇으면 낮은 음이 나고 두꺼워 질수록 높은 음이 난다.

    음색이 맑고 밝아 흥겨운 곡이나 행악에 주로 쓰인다.

    이 악기에 대한 기록으로 순조 무자년(1828)과 기축년(1829)의 진작의궤(進爵儀軌)와 진찬의궤(進饌儀軌)에 사용된 기록이 있다.

     

     

     

    수공후(豎箜篌)

     

    수공후(豎箜篌) 고구려시대에 실제로 사용되었던 악기로 하프(Harp)의 한 종류이다.

    연주법도 모르는채 악기만 전한다. 수공후는 21현이 울림통에 수직으로 연결되어 있다.

    수공후는 이집트, 유태, 희랍 등지에서 유행하던 것이

    그후, 페르샤, 인도에 전하고 여기서 동서로 전파되어 중국으로 들어간 것은 공후(箜篌)라 불리워 지고,

    유럽으로 들어간 것은 서양악기의 하프가 된 것이다.

    고구려악에 서량, 구자, 소륵악과 같이 수공후를 썼다는 기록이 있다.

     

     

     

    편종(編鐘)

     

    타악기의 하나로 쇠붙이로 만들어졌으며, 고려 예종 11(1116)에 송나라로 부터 수입되어 궁중 제례악에 사용되었다.

    공민왕 때에도 명나라에서 보내왔으나 고려와 조선 초기에는 편종·편경 등을 중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했기 때문에,

    아악 연주 때 편종·편경의 수가 모자라고 악기의 음률도 맞지 않는 등의 어려움이 있었다.

    1429(세종 11) 한양에 주종소(鑄鐘所)를 두어 편종을 만들어 아악의 연주에 사용했다.

    지금까지 쓰이는 편종은 16개의 정성(正聲)이다.

    16개의 종은 크기와 모양은 같으나 두께를 달리하여 음의 높고 낮음을 나타냈는데,

    종의 두께가 얇으면 소리가 낮고, 두꺼우면 소리가 높다.

    16개의 종은 나무틀인 가자에 8개씩 2단으로 나누어 단다.

    황종부터 임종까지는 아랫단에, 이칙부터 청협종까지는 윗단에 매단다.

    종은 각퇴로 쳐서 소리를 내는데, 아랫단의 종은 오른손으로 치고 윗단의 종은 왼손으로 친다.

    이 틀은 2개의 목사자에 꽂아 고정시킨다.

    틀의 양편에는 용의 머리가 조각되어 있으며 5개의 목공작과 색사유소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편경(編磬)

     

    편경은 ''자 모양의 경돌 16매를 음률의 순서에 따라 틀의 위아래 2단으로 나누어

    8매씩 홍승으로 묶어놓고 암소뿔에 자루를 끼운 각퇴로 쳐서 소리를 낸다.

    음고는 경돌의 두께에 따라 다르며 틀은 백아(흰기러기)로 고정했다.

    또 봉두와 치미유소로 장식했다. 맑고 청아한 소리가 난다. 중국 고대 악기로 1116(예종 11)에 유입되었다.

    1425(세종 7) 경기도 남양(南陽)에서 경돌(磬石)이 발견되고, 당시 아악을 정비하던 박연(朴堧)에 의해

    율관이 제정되어 아악기의 제작이 본격화되자 주종소를 설치하여 편경을 직접 제작했다.

    이전에는 중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했고 부실한 경은 기와로 만든 와경으로 대신했다.

    1427(세종 9) 악학별좌인 박연의 감독 아래 12매짜리 편경 1틀이 완성되었다.

    이 편경은 중국 편경의 음률을 표준으로 삼아 삼분손익법에 의해 산출된 12율에 맞추어 제작되었다.

    1428(세종 10)까지 16매짜리 편경 33틀이 제작되어 여러 제향에 사용되었다.

    이때 만들어진 편경은 박연이 정비한 율관에 의해 조율되었다.

    세종 때 편경의 제작 등 아악기의 복원과 향악 창제 등 음악의 일대 부흥은

    세종이 음악에 조예가 깊었고 적극적으로 후원했음을 알 수 있는 증거이다.

    당시 세종은 박연이 편경을 시연할 때 그중 이칙의 음정이 맞지 않음을 지적했다.

    박연이 살펴보니 과연 이칙음의 경 뒤에 먹줄이 남아 있어 먹줄을 갈아 바른 음정을 얻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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