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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파강이 흐르던 곳, 석촌호수(石村湖水)의 동호(東湖)
    국내 나들이/호수,저수지(湖水,貯水池) 2017. 5. 19. 23:00

    송파강이 흐르던 곳, 석촌호수(石村湖水)의 동호(東湖)

     

    송파강이 흐르던 곳이 육지로 변하였다.

    그 옛날 송파강이 흘렀던 곳임을 알려주는 두 개의 석촌호를 만들었다.

    그 석촌호를 강이 흘렀던 흔적이라는 뜻의 하적호(河跡湖)라고 부른다.

    석촌호수 동호 서남쪽 언덕에 송파나루공원이 있다.

    그 공원에는 송호정(松湖亭)이란 정자가 있다.

    석촌호수는 전체면적 285,757(지면 : 67,907, 수면 217,850) 조성된 호수로

    현재의 석촌호수 북쪽 잠실벌은 서호의 남쪽에 나룻터가 한강이었으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토사가 쌓여 인공섬이 생기면서 광진교 밑에서부터 잠실야구장까지

    지금의 석촌호수를 지나는 송파강과 신천강을 이루는 샛강이 생기게 되었다.

    1969년 한강본류의 하상 정비 개발에 착수하면서 이 강을 매립하였으나

    일부는 남겨 놓았고, 198111월 이 호수를 정비하여 공원화하였다.

    송파나루공원은 송파대로가 개통하면서 동서로 같은 모양의 동호, 서호로 나누어져 있으며,

    호수와 공원으로 조성된 이상적인 형태의 공원으로 조깅코스 및

    산책로가 설치되어 있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

     

     

     

     

     

    송파(松坡)의 유래(由來)

     

    금강산(金剛山) 영봉(靈峯)의 만폭동(萬瀑洞)과 오대산(五臺山)의 우통수(于筒水) 속리산의 문장대(文藏臺)

    삼대명산의 옥수같은 물줄기는 모이고 굽이돌아 억만년 유유히 흐르고 있다.

    물길의 몫을 잡아 조선왕조가 한양에 도읍하니 상류(上流)의 물화(物貨)

    물길을 따라 모여들고 돌아갈 길이 먼 도성의 문물을 실어날라 황포(黃布)돛배는 줄을 지어 오르내렸다.

    평탄(平坦)하고 조강(燥强)한 지형(地形)을 골라 국토를 종주(縱走)하는 육로로 여기를 기점으로 트이었으니

    수륙(水陸)이 교차(交叉)하며 교역(交易)의 요지(要地)로 송파장(松坡場)은 전국에 이름나게 은성(殷盛)하였다.

    국내의 상계(商界)를 주름잡던 보부상(褓負商)5일장(五日場)을 누비던 장돌뱅이 도부꾼도

    질서있게 모였다 흩어져 갔고 각처에서 모이는 소는 서울로 가는 길에 여기 시장(市場)에서 거래되었다.

    객주(客主)집은 강을 임()해 줄지어 서서 뒷 창문을 활짝 열고 만리(萬里) 강바람을 머금었으며,

    바깥채 전방(廛房)을 이어 시장(市場)길은 안칡으로 길게 뻗어 북적거렸다.

    풍성하고 활기찬 생활터전 위에서 씩씩한 기풍은 내오름 씨름의 주종(主宗)을 이뤘으며

    정월과 칠월이면 보름달 아래 답교(踏橋)놀이와 백중(百中)놀이를 즐기는 멋을 알았고

    송파산대(松坡山臺)놀이가 한국 가면극(假面劇)의 정통(正統)을 이어왔다.

    세월따라 시국(時局)도 무던히 변하더니 1925년 을축년(乙丑年) 대홍수가 주변을 덮치며 싹쓸어가고

    옛 장터자리로 시퍼렇게 강물이 넘실거리는 벼랑에서 주민들은 망연(茫然)하였다.

    강언덕에 오두마니 남아섰는 한(, )의 비()를 흘켜보고 저 놈이 물로 들어가야 나라가 바로 선다던데

    뒤 바꿔 되었다고 투덜거리며 시들어진 가를 버리고 안축으로 구릉(丘陵)을 따라

    다시 이룩한 것이 개발되기까지의 신송파(新松坡)장터였다.

    그러다 오랜 잠에서 깨어나 조국의 눈부신 비약으로 수도 서울이 세계적 대도시로 불어나자

    국토경영의 일환으로 이 지역도 판도를 달리하게 되었으니 하중도(河中島)인 잠실(蠶室)의 북쪽을 가냘프게 흐르던

    신천강(新川江)을 터서 직류(直流) 시키고 원줄기는 메꿔없애 지상(地上)에서 사라졌다.

    선사시대부터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이 터전이 여러번 변모 끝에 이젠 송파구(松坡區)로 새 발길을 내딛게 되고

    농수산물도매시장이 생겨 그래도 옛날 교역중심(交易中心)의 모습을 되찾았고 놀이마당이 들어서며

    이곳의 풍류를 잇게 됐으나 줄기는 하적호(河跡湖)로 그대로 그나마 옛 자취를 전할 뿐이다.

    석양(夕陽)에 줄지어 섰던 돛단배 뒤로 버들 숲 우거진 언덕에 때로는 장고(長鼓)소리도 울려 왔을

    옛 정취를 그리며 여기 대강 유래를 새겨 회상의 발마리로 삼는다.

     

    198912월 송파구문화재연구회 철학박사 이훈종

     

     

     

     

    송호정과 롯데월드타워

     

     

     

    송호정(松湖亭)

     

    그 옛날 송파장(松坡場)을 키워낸 이곳에 한강물의 깊푸른 정기(精氣)

    세차게 굽이쳐 흘러 모이고 청명(淸明)한 하늘의 푸르른 빛은 잔잔한 물결 위 구름을 수 놓는다.

    순풍(順風)에 돛단배 활개를 펼치고 상인(商人)들의 분주한 봇짐 행렬속에 만월(滿月)의 풍요(豊饒)가 가득했던

    송파(松坡)나루에 세월의 흔적은 강물을 모아 호수(湖水)를 만들고 서울의 중심(中心)에서 찬란히 빛나게 하였다.

    1970년대 잠실(蠶室)벌을 휘돌아 흐르던 한강수(漢江水)는 개발(開發)의 물결속에

    1981년 석촌호수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서울 도심(都心) 단 하나의 호수공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20년 세월의 모진 풍상(風霜)은 대자연(大自然)의 수려(秀麗)함을 모두 거두어 내고

    축복(祝福)으로 내리었고 생기(生氣)의 빛을 날로 퇴색(退色)케 하였다.

    이에 선조(先祖)들의 거친 땀과 숨소리를 깊이 되새길 역사(歷史)와 전통(傳統)의 상징적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고자

    2001년 겨울 송파나루공원 명소화(名所化) 사업(事業)을 착수하게 되었다.

     200453년여의 노력 끝에 전통(傳統)과 현대자연(現代自然)의 숨결로 재탄생(再誕生)한 송파나루공원은

    이제 그 빛을 널리 밝히어 천지만물(天地萬物)이 소생하는 생명(生命)의 근원지(根源地)로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잿빛 콘크리트로 가리었던 호안(湖岸)은 수생식물(水生植物)과 야생초(野生草)가 군락(群落)을 이루는

    친환경적 생태호반(生態湖岸)으로 탈바꿈하였고 잔잔한 호수 위에 띄운 황포돛배와 뗏목은

    역사의 향취(香臭)를 물씬 풍기며 유유히 노()졌고 있다.

    기대어 쉴 곳 없던 황토지(黃土地) 불모지(不毛地)는 형형색색(形形色色) 만발(滿發)하는 꽃과 나무로 가득차

    희망과 웃음 사랑이 넘치는 쉼터가 되었고 호수(湖水)를 끼고 돌던 삭막한 콘크리트길은

    2500m의 우레탄조깅코스와 지압보도로 그 모습을 바꾸었다.

    물길따라 우거진 낙락장송(落落長松)은 태양(太陽)의 빛을 받아 사시사철 변하지 않은 솔잎을 피어내

    푸르름을 자랑하던 장송마당을 이루었고 서울놀이마당과 수변데크는

    전통 민속예술공연과 음악회가 펼쳐지는 문화예술공간으로 자리 매김하였다.

    이로써 회색(灰色)빛 가득 물든 삭막한 현대도시(現代都市)에 대자연(大自然)의 정원(庭園)으로

    새로이 탄생한 송파나루공원은 그 생동(生動)의 기운(氣運)을 만인(萬人)에게 비추어 고귀함이 날로 빛나게 되었고

    스쳐가는 찰라(刹那)조차 시야(視野)에서 거둬내던 무용(無用)의 오명(汚名)을 벗어나

    송파의 자부심(自負心)으로 명성(名聲)을 드높이게 되었다.

     이에 그 빛나는 가치(價値)를 후대(後代)에 까지 널리 알리고 기리고자

    여기에 송파진기념정(松坡津紀念庭)을 조성하고 그 한가운데 사각의 정자를 우뚝 세워

    200410월 임천 이지향의 송호정(松湖亭) 세 글자를 깊게 새기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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