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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악산 천연보호구역, 한계령휴게소
    국내 나들이/휴게소,쉼터(休憩所) 2017. 7. 21. 05:30

    설악산 천연보호구역, 한계령휴게소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산인 국립공원 설악산 횡단도로(44번 국도) 의 정상(해발 920m)에 위치한

    한계령휴게소는 1979년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과 류춘수가 설계했다.

    설악산의 장엄한 절경을 조망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건축 개념이 포함됐다.

    건물 어디에서나 바깥을 감상할 수 있게 개방감을 충분히 확보했고,

    내부 공간의 높이를 다르게 조절했으며, 테라스를 길게 설치했다.

    1m 이상 쌓이는 눈과 강풍과 추위에 견딜 수 있는 견고한 구조도 갖췄다.

    외부 마감재는 목재로 처리하면서, 실제 구조는 철골조로 설계됐다.

    대지면적 6,039, 건축면적 373,연면적 676.5

     

    강원도 양양군 서면 설악로 1 (오색리)

     

     

     

     

     

     

     

     

     

     

     

     

     

     

     

     

     

     

    호떡의 유래

     

    ()떡은 중국음식인 떡 종류의 하나로 오랑캐떡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중국식 호떡은 우리의 것과는 많이 다르다.

    지역에 따라 부추나 돼지고기 등이 들어 있는 것도 있고

    속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호떡, 또 속이 빈 딱딱한 호떡도 있다.

    우리나라의 호떡은 화교(華僑)가 처음 조선에 들어와 만들어 먹고나서부터 그 시작을 찾아볼 수 있다

    청나라 군인들이 먹는 떡을 보고 청나라군대가 못마땅한 사람들이

    오랑캐가 먹는 떡이라고 해서 오랑캐 ()를 따서 호떡이라고 했다.

    비슷한 말로 호()주머니도 마찬가지이다.(예전의 우리 옷에는 주머니가 달리지 않았다)
    화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구한말 때이다.

    임오군란(1882)이 일어나자 청나라는 일본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육군 3천명을 조선에 파견했던 것이다.

    군함 3척과 상선 2척에 나누어 탄 청나라 육군은 산둥성(山東省) 옌다이(煙臺)를 떠나 712일 서울에 들어왔는데

    이때 청군을 따라온 약 40명의 청나라 상인들이 바로 우리나라에 첫발을 디딘 화교였다.

    후에 청나라가 망하자 돌아가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뿌리내리게 된다

    그들은 생계를 위해서 음식점을 열어 만두나 호떡 등을 만들어 팔면서

    점차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호떡 안에 조청, , 흑설탕 등을 넣어 팔게되었다.

    주로 인천을 시작으로 하여 종로거리, 명동 중국대사관 주변에서 팔던 것이 점차 전국으로 퍼져 지금의 호떡이 됐다.

     

     

     

     

     

     

    오색령 유래(五色嶺 由來)

     

    이곳 오색령 정상은 행정구역상으로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 산 1-30번지(해발 920m)이며,

    부터 영동과 영서를 잇는 주요 영로(嶺路)였다.

    고문헌(古文獻)에 처음 부른 것은 소솔령(所率嶺)이라 했는데,

    선조 29(1596) 2월에 비변사가 적병이 영동으로 침입하면

    이 영()을 넘을 것이니 방비하지 않을 수 없다고 기록한 것이 지명의 효시(嚆矢)이다.

    조선 말기 지리학자 김정호는 대동여지도의 고본(稿本)이라 할 수 있는 동여도(動輿圖)에 고대로(古大路)라 하였고,

    그 외 각종 고지도(古地圖)와 고지지(故地誌)에는 한결같이 오색령으로 기록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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