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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제20대 경종(景宗)과 선의왕후(宣懿王后)의 능, 의릉(懿陵) – 사적 제204호
    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17. 9. 9. 05:30

    경종(景宗)과 선의왕후(宣懿王后)의 능, 의릉(懿陵) 사적 제204

     

    의릉은 조선 20대 왕 경종(景宗:1688~1724, 재위 1720~1724)

    경종의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宣懿王后 魚氏:1705~1730)의 능이다.

    경종은 숙종(肅宗)과 옥산부대빈 장씨(玉山府大嬪 張氏, 희빈 장씨)의 아들로 1690(숙종 16)에 왕세자가 되었다.

    1717(숙종 43)에 숙종을 대신하여 정사를 돌보았으며(代理聽政, 대리청정), 1720년 왕위에 올랐다.

    경종의 재위기간은 노론과 소론의 정권 다툼이 극심한 당쟁의 절정기였다.

    자식이 없고 병약하여 이복동생인 연잉군(영조)을 왕세제(王世弟)로 책봉하고 재위한 지 4(1724)만에 37세로 세상을 떠났다.

    선의왕후는 어유구(魚有龜)의 딸로, 1718(숙종 44)에 왕세자빈이 되었다가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다.

    1730(영조 6)26세로 세상을 떠났다.

    의릉은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의 독특한 형태로 같은 능역에 위쪽은 왕릉을, 아래쪽은 왕비릉을 조성하였다.

    이렇게 조성한 데에는 능역의 폭이 좁아 좋은 기운이 흐르는 맥이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풍수적인 이유가 있다.

    능침은 병풍석(屛風石)을 생략하고 난간석(欄干石)만 둘러져 있으며, 경종의 능에만 곡장(曲墻)이 둘러져 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화랑로 32길 (석관동)

     

     

     

     

     

     

     

     

    의릉 비문(懿陵 碑文)

     

    (앞면)

     

    조선국 경종대왕의릉 선의왕후 부

    朝鮮國 景宗大王懿陵 宣懿王后 祔

     

    (뒷면)

     

    경종덕문익무순인선효대왕숭정기원후육십일년무진십월이십팔일탄생경자즉위

    景宗德文翼武純仁宣孝大王崇禎紀元後六十一年戊辰十月二十八日誕生庚子卽位

     

    갑진팔월이십오일승하십이월십육일장우양주남중량포천장산신좌지원재위

    甲辰八月二十五日昇遐十二月十六日葬于楊洲南中梁浦天藏山申坐之原在位

     

    사년수삼십칠

    四年壽三十七

     

    계비경순효인혜목선의왕후어씨을유십월이십구일탄생무술

    繼妃敬純孝仁惠穆宣懿王后魚氏乙酉十月二十九日誕生戊戌

     

    책세자빈경자진봉 왕비경술육월이십구일승하십월십구일부장재하수이십육

    冊世子嬪庚子進封 王妃庚戌六月二十九日昇遐十月十九日祔葬在下壽二十六

     

     

    (뒷면 해석)

     

    경종덕문익무순인선효대왕은 숙종 14(1688) 1028일에 탄생하시어 1720년에 즉위(卽位:왕위에 오름)

    1724825일 승하(昇遐:왕의 죽음)하시어 그 해 1216일 양주 남쪽 중량포(中梁浦)

    천장산(天藏山, 해발 140m) 신좌(申坐: 남서에서 북동방향) 언덕에 장사지내다.

    재위(在位:임금의 자리에 있음)4년이고, 천수(天壽:타고난 수명)37세였다.

    계비(繼妃:왕의 둘째부인) 경순효인혜목선의왕후 어씨는 숙종 31(1705) 1029일에 탄생하시어

    44(1718)에 왕세자빈(王世子嬪)으로 진봉되시어 1720년에 왕비로 책봉되셨다.

    영조 6(1730) 629일 승하하시어 그 해 1019일 경종대왕의

    능하(陵下:왕릉아래)에 부장(附葬: 왕과 가까이 묻음)하였으니 천수는 26세였다.

     

     

     

     

     

     

     

     

     

     

     

     

     

    경종(景宗)

     

    경종(1688~1724)은 숙종(肅宗)과 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 희빈) 장씨의 아들로

    1688(숙종 14)에 창덕궁 취선당에서 태어났다.

    경종이 태어남으로서 서인과 남인의 대립인 기사환국(己巳換局)이 일어나 남인정권으로 교체 됐다.

    기사환국으로 어머니 장씨가 왕비로 책봉되고, 경종은 원자를 거쳐 1690(숙종 16)에 왕세자로 책봉됐다.

    그러나 1701(숙종 27)에 무고의 옥(인현왕후 저주 사건)으로 어머니 장씨의 죽음을 목격하기도 했다.

    1717(숙종 43)에 숙종을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하다 1720년에 숙종이 승하하자 왕위에 올랐다.

    재위 4년 뒤인 1724(경종 4)에 창경궁 환취정에서 37세로 승하했다.

    경종 재위 시절 1721(경종 1)1722(경종 2)에 두 해에 걸쳐 연잉군(영조)의 왕세제 책봉을 둘러싸고

    큰 옥사가 일어났는데 이를 신축임인옥사(신임옥사)라고 한다.

    숙종 말기는 노론과 소론이 치열하게 대립했던 시기로, 경종 즉위 후

    당시 노론의 4대신  영의정 김창집, 좌의정 이건명, 영중추부사 이이명, 판중추부사 조태채가 중심이 

    경종의 동생인 연잉군(영조)을 왕세제로 책봉하자는 주장을 했다.

    소론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종은 1721(경종 1)에 이를 허락했다.

    그러자 노론 측은 한 발 더 나아가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경종을 두고 왕세제의 대리청정을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노론과 소론의 대립은 격화됐고, 결국 왕세제의 대리청정을 주장한

    노론 4대신들은 파직 후 유배를 당하는 신축옥사가 일어났다.  

    그 뒤에도 소론 강경파들은 노론의 숙청을 요구했다.

    1722(경종 2)에는 노론측이 세자 시절에 경종을 시해하려고 했다는 고변을 기점으로 노론 4대신을 사사하며

    수백 명의 노론파를 제거하게 되는 임인옥사가 일어난다.

     그러나 경종이 즉위 4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영조가 왕위에 오르자 조정에는 또 한 차례의 숙청의 바람이 불게 된다.

     

     

    선의왕후(宣懿王后)

     

    경종의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1705~1730)는 본관이 함종인 함원부원군 어유구와 완릉부부인 이씨의 딸로

    1705(숙종 31)에 숭교방 사저에서 태어났다.

    1718(숙종 44)에 왕세자빈 심씨(단의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같은 해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됐고,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의 자리에 올랐다.

    경종이 세상을 떠나고 영조가 즉위하자 경순왕대비가 됐으며, 1730(영조 6)에 경덕궁 어조당에서 26세로 세상을 떠났다.

    선의왕후가 중전 재임시절 경종이 후사가 없자 종친 중에서 어린 아이를 입양해 후사를 정할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궁중의 일각에서는 소현세자의 후손인 밀풍군의 아들 관석을 입양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러나 1721(경종 1)에 경종의 이복 동생인 연잉군(영조)이 왕세제로 책봉됐다.

    경종이 아무리 병약하다고는 하나 즉위 1년 만에 왕세제를 책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노론은 소론과의 알력 다툼에서 살아남기 위해 왕세제 책봉 뿐 아니라 대리청청까지 주장했고,

    계속적인 정권싸움과 숙청의 바람을 몰고 왔다.

    이러한 어지러운 정국의 한 가운데에, 결국 선의왕후의 양자 입양은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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