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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색혁명성취탑(綠色革命成就塔) -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중부작물부
    국내 나들이/탑(塔) 2017. 11. 26. 20:30

    녹색혁명성취탑(綠色革命成就塔)

     

    혁명(革命)이라는 말은 많이 남용돼 왔다.

    하지만 새로운 식량종자가 가난한 국가들에 미친 영향을 표현하는 데는

    이 말 이상으로 적합한 것이 없다.

    1960년대 미국 농무성 국제개발국장이던 레스터 R 브라운(Lester R. Brown)

    식량증산을 위한 신품종 개발의 중요성을 혁명에 비유,

    처음으로 '녹색혁명(Green Revolution)'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먹고사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 가난한 국가들에 있어

    식량증산을 위한 신품종 개발은 '혁명(革命)'이나 다름없다는 평가였다.

    한국의 녹색혁명은 필리핀에 있는 국제미작연구소(IRRI)에서 부터 출발한다.

    농촌진흥청 지원으로 1966IRRI에 파견된 서울대 농대 허문회 교수는

    이 연구소에서 개발한 'IR8' 볍씨를 기반으로

    우리나라 토양과 기후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볍씨 연구에 몰두했다.

    내냉성(耐冷性)이 강하고 미질이 좋은 일본산 '유카라' 품종을 관심있게 연구해 온 허 교수는

    먼저 '유카라'와 대만산 '대중재래1(臺中在來1)'를 교접시키고,

    여기에 다시 IRRI가 개발한 'IR8'3원 교배시키는데 성공한다.

    허 교수는 이 같은 3원교배를 통해 666개의 교배조합을 육성하고 이 조합을 'IR 667' 이라고 명명했다.

    'IR 667'이 바로 70년대 우리 농촌에 다수확 혁명의 불씨를 일으킨 '통일볍씨'였다.

    농촌진흥청 연구진은 통일벼 개발을 시발점으로 '유신' '밀양23' '밀양30' '수원264'

    '노풍' 등 신품종을 잇따라 개발, 보급함으로써 77년 연간 쌀 수확 4,000만섬을 돌파하는 개가를 이룬다.

     

    쌀은 크게 구별해서 자포니카계(日本系)와 인디카계(印度系)의 두 종류로 나뉜다.

    자포니카계는 종래 우리가 먹던 찰진 단립형의 쌀이고,

    인디카계는 소위 안남미라 하여 남방에서 생산되는 가느다랗고 찰기가 적으며 부석부석한 쌀이다.

    인디카계는 밥맛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는 반면 수확률은 자포니카계 보다 월등히 높았다.

    통일벼(IR667)는 인디카계인 IR8과의 교배를 통해 탄생한 품종인 만큼 속성상 인디카계에 속했다.

    자포니카권인 한국인 입맛에는 맛없는 쌀이었던 셈이다.

    통일벼는 수확량 증산을 통해 녹색혁명을 이루는데는 기여했지만

    궁극적으로 '밥맛'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맛없는' 통일벼는 결국 78년 보급이 중단된다.

    병충해에 약점을 보인 '노풍'79년 자취를 감추었으며,

    75년 보급된 '유신'79년에는 보급품종 명단에서 사라졌다.

    통일벼로 녹색혁명을 달성한 70년대 후반 이후 우리 농촌의 재배 품종은 인디카계이면서도

    맛은 자포니카계에 가까운 '밀양23''밀양30' '수원264' 등이 주종을 차지하게 된다.

    8.15 해방 이후 수없이 겪어 왔던 미곡 부족과 쌀 파동을 근본적으로 극복하고,

    비로소 '주곡 자립'의 문을 활짝 열게 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71220일 농촌진흥청을 방문,

    뿌듯한 마음으로 '녹색혁명성취'라는 휘호를 남겼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중부작물부

     

     

     

     

     

     

    금년에는 단보당 수확면에서 평균 494 킬로그램의 세계 최고기록을 세웠습니다.

    우리가 남의 원조에 의존하며 매년 많은 외화를 주고 쌀을 수입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리고 세계적으로 식량난이 가중되고 있는 이때에 이미 주곡의 자급을 실현하고

    이제는 쌀이 남아돌아서 걱정을 하게끔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쌀을 절약하기 위해 떡을 만드는데도 잡곡을 섞고 쌀로 술을 빚지 못하게 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식성을 달래 가며 꾸준히 노력해 왔는데,

    그런지 불과 몇 년 만에 이제는 쌀을 먹고 남을 만큼 되었으니,

    이야말로 <하면 된다>,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새마을운동의 행동철학을 입증한 것입니다.

    - 박정희 대통령각하 유시 중에서 (1977129일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탑 건립경위

     

    우리나라 녹색혁명의 선도는 1964313일 농촌진흥청 대강당에서 행하신

    박정희대통령 각하의 식량증산연찬대회 유시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 핵심적인 어록은 “20세기 후반에 들어 선 오늘, 세계의 모든 민족이나 국가는

    <자주>라는 목표의 달성을 위하여 경제적 자립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자립은 식량의 자급자족으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입니다.

    우리의 식량은 우리의 힘으로 해결한다는 전례없이 강렬한 결심하에 범국민적인 일대 증산운동을 전개하여야 하겠습니다.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반드시 이룩할 수 있는 과제이며,

    또한 반드시 이룩되어야만 하는 우리민족의 할로인 것입니다라고 강조하신 말씀이다.

    이 뜻을 받들어 농촌진흥청은 국제미작연구소의 협력하에 국내적인 산학협동으로

    획기적 다수성인 통일벼의 개발 보급을 시초로, 조생통일, 영남조생, 유신, 밀양21, 밀양23,

    수원264, 노풍, 내경 등 15품종을 개발 보급한 결과 1977년에는 쌀생산 4,000만석을 돌파하고

    단보당 평균수량도 494 kg에 달하여 세계 쌀생산 역사상 최고기록을 수립하게된 기념으로

    19771220일 대통령 각하께서 녹색혁명성취라는 휘호를 내리셨다.

    또한 품종개발 보급에 대한 노고와 업적을 크게 치하하시고 특별시상을 하셨는바,

    그 수상자중 14명이 뜻을 모아 이 탑을 건립하게 되었으며,

    1978510일 장덕진 농수산부장관과 김인환 농촌진흥청장에 의해 제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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