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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포의 눈물 노래비(이난영 노래비)
    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18. 3. 12. 05:30

    목포의 눈물 노래비(이난영 노래비)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아씨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사랑

    깊은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찌타 옛 상처가 새로워진아

    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전남 목포시 유달산

     

     

     

     

    살아있는 보석은 눈물입니다.

    남쪽 하늘 아래 꿈과 사랑의 열매를 여기 심습니다.
    이난영의 노래가 문일석 가사(작사) 손목인 작곡으로

    여기 청호의 넋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목포의 눈물 노래 가사 변천사

     

    1. 노래비에 새겨진 가사는 1969년 제막 당시 불리워졌던 가사임

     

    2. 1935년 취입당시 가사

    사공의 뱃노래 감을 거리며 삼학도 파도 깁히 숨어 드는

    부두의 새악씨 아롱저진 옷자락 리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서름

    삼백련원안풍(三栢淵願安風)은 로적봉 밋해 님 자최 완연하다 애닯흔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깁흔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 엇지타 녯상처가 새로워진가

    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의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3. 현재(2001) 불리고 있는 가사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아씨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사랑

    깊은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찌타 옛 상처가 새로워진아

    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목포의 눈물

     

    작사자는 문일석(文一石), 작곡자는 손목인(孫牧人)이다.

    일본 와세다대학 출신의 20대 무명 시인이었던 문일석은 1935년 조선일보가 오케레코드와 함께

    향토 신민요 노랫말을 공모하자 목포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응모하여 1등에 당선되었다.

    흥행의 귀재로 불렸던 오케레코드의 사장 이철이 제목을 목포의 눈물로 바꾸어서 가지고 오면서

    남인수가 취입하려 했던 갈매기 우는 항구라는 곡에다 당선되어

    "본인이 제목을 바꾼 가사(목포의 사랑)를 붙이면 어떨까?" 하여서 작곡가 손목인의 곡을 입혀 취입을 해서 대히트를 기록했다.

    가수는 목포 출신의 신인으로 당시 나이 십대 후반이었던 이난영이었다.

    이난영 특유의 비음과 흐느끼는 듯한 창법에는 남도 판소리 가락과 같은 한이 스며 있다는 평이 있었다.

    결국 이 노래는 이난영의 대표곡이 되었고 이난영의 또 다른 노래 목포는 항구다와 함께

    목포를 대표하는 향토색 짙은 곡으로 남았다.

    '목포의 애국가'로까지 불리기도 하고, 목포 출신의 대표적 정치인이었던 김대중의 애창곡이기도 했다.

    또한 호남 지역을 연고로 했던 프로 야구팀 해태 타이거즈의 응원가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노래의 가사와 곡조는 매우 애잔하여 목포항을 배경으로 이별의 끝없는 아픔과 서러움을 그리고 있다.

    깊은 한과 울분이 숨겨진 목포의 눈물은 나라 잃은 슬픔을 달래주는 상징적인 곡이었기에

    국민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는 해석이 있다.

    '한국가요사에서 불후의 명작'이라는 찬사가 있을 만큼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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