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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율찰대본산 쌍계사(律刹大本山 雙磎寺), 삼신산 쌍계사(三神山 雙磎寺)
    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18. 3. 25. 04:30

    율찰대본산 쌍계사(律刹大本山 雙磎寺), 삼신산 쌍계사(三神山 雙磎寺)

     

    쌍계사는 삼신산의 하나로 방장산(方丈山)이라 불리는

    지리산(智異山)의 남록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이다.

    쌍계사는 서기 723(신라 성덕왕 22)에 삼법(三法), 대비(大悲) 두 스님이

    당나라 6조 혜능(慧能)대사의 정상(頂相)을 모시고 와서 꿈의 계시(啓示)대로

    눈 속에 칡꽃이 핀 곳을 찾아 정상을 봉안하고 절을 지은 것이 처음이다.

    서기 830년 진감혜소(眞鑑慧昭, 774~850)국사께서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삼법, 대비스님의 옛 절터에다 육조 영당을 짓고 절을 크게 확장하여 옥천사라 하시고

    이곳에서 선()과 불교 음악인 범패(梵唄)를 가리치다 77세로 입적(入寂)하셨다.

    그 후 정강왕(定康王)은 이웃 고을에 옥천사가 있고

    산문밖에는 두 시내가 만난다 하여 쌍계사라는 사명(寺名)을 내리셨다.

    서산대사의 중창기를 보면 중섬(中暹), 혜수(惠修)스님의 대대적인 중창이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었다.

    임진왜란 후 벽암(碧巖), 소요(逍遙), 인계(印戒), 법훈(法訓), 용담(龍潭)스님 등이 중창을 하였고,

    1975년부터 고산(杲山)스님에 의해 복원(復元), 중수(重修) 중창(重創)을 거쳐 현재와 같은 대가람의 사격을 갖추고 있다.

    산내 암자로는 국사암과 불일암이 있고 문화재로는 국보 1, 보물 9,

    시도지정 유형문화재 13, 기념물 1, 문화재자료 5점을 보유하고 있다.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海東禪律宗大伽藍(해동선율종대가람)

    律刹大本山 雙磎寺(율찰대본산 쌍계사)

     

     

     

     

     

    쌍계사 진입로 - 한국의 아름다운 길

     

     

     

     

     

     

     

     

     

     

     

     

     

     

    쌍계사 일주문(雙磎寺 一柱門)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6호

     

    절의 입구에 세워져 있는 일주문은 속세를 떠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며,

    항상 한마음을 가지고 수도하고 교화하라는 의미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양쪽에 기둥을 하나씩 세워 지붕을 받치고 있는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배치되어 있는 다포식이다.
    앞면에는 3구씩·옆면에는 2구씩 배치하여, 처마가 매우 화려하며 공포로 꽉 차 있는 듯하다.

    기둥 앞뒤에는 보조 기둥을 두어 지붕을 안전하게 지탱하고 있는데, 보조 기둥 머리 부분에는 연꽃무늬를 장식하였다.
    일주문에는 ‘삼신산쌍계사’‘선종대가람’이라는 두 개의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는 근대 서화가로 이름을 떨친 해강 김규진(1868~1933)이 쓴 것이다.
    화려한 다포계 후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일주문이다.

     

     

     

    쌍계사 금강문(雙磎寺 金剛門)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7호

     

    금강문은 일주문 다음에 통과하는 문으로 천왕문과 함께 절에 들어오는 공간으로 불법을 수호하고,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의미있는 장소이다.

    이곳에서는 금강역사를 모시고 있는데 금강역사는 불교를 수호하고 악을 벌하는 천신으로

    문의 왼쪽에는 부처님을 늘 모시는 ‘밀적금강’이 있고 오른쪽에는 ‘나라연금강’이 있다.

    쌍계사 금강문은 신라 문성왕 2년에 진감국사가 지었고,

    인조 19년(1641)에 벽암선사가 다시 지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79에 수리한 것이다.

    건축양식은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1층이다.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이다.

    가운데 칸은 개방하여 통로로 사용하고, 양 끝 칸은 벽으로 막아서 금강역사를 모시고 있다.

    문 앞에는 벽암스님이 쓴 ‘금강문’이란 현판이 있다.

     

     

     

     

     

     

     

     

    쌍계사 천왕문(雙磎寺 天王門)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6호

     

    쌍계사 천왕문은 숙종 30년(1704)에 박봉스님이 지었고 순조 25년(1825)에 고쳤으며,

    현재의 건물은 고산스님이 1978년에 다시 수리한 것이다.

    사천왕을 모시는 문으로 사천왕은 부처님께 의지하여 불법을 수호하고 수도하는 스님과 선량한 사람을 돕는 4명의 수호신이다.

    동주를 다스리는 지국천왕, 서주의 광목천왕, 남주의 증장천왕, 북주를 다스리는 다문천왕이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가운데 칸은 개방해서 통로로 사용하고 있고, 양 옆칸은 벽으로 막은 후 사천왕상을 모시고 있다.

    사천왕상은 나무로 만든 것으로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쌍계사 9층석탑(雙磎寺 九層石塔)

     

    이 탑은 고산스님이 인도성지 순례를 마치고 돌아올때 스리랑카에서 직접모셔온 석가여래 진신사리 삼과와

    산내 국사암 후불 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의 진신사리 2과와 전단나무 부처님 1위를 모셨다.

    때마침 발심서원한 백창기 부부의 단독시주로 불기 2531년 (서기 1987년) 1월 3일 시공하여

    불기 2534년 (서기 1990년) 3월 15일에 완공 건립하였다.

     

     

    쌍계사 팔영루(雙磎寺 八詠樓)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4호

     

    이 건물은 신라시대인 840년(문성왕 2) 진감선사(眞鑑禪師:774∼850)가 창건하였다.

    그뒤 조선시대인 1641년(인조 19)에 벽암(碧巖) 각성(覺性)스님, 1978년에 고산스님이 각각 중수하였다.

    이곳은 우리나라 불교음악의 창시자인 진감선사가 중국에서 불교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우리 민족에게 맞는 불교음악인 범패(梵唄)를 만든 불교음악의 발상지이자 범패 명인들의 교육장이다.

    진감선사가 섬진강에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팔음률로서 《어산(魚山)》을 작곡했다고 하여 팔영루라고 한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집 목조와가로서 2층으로 되어 있고 총 건평은 106평이다.

     

     

     

     

     

     

     

     

     

     

     

    쌍계사 설선당(雙磎寺 說禪堂)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3호

     

    조선시대에 이르러 1641년(인조 19)에 벽암선사(碧巖禪師) 각성이 중수하였으며,

    1801년(순조 1)에 화악선사가 중수하였다. 2002년에는 고산스님이 다시 고쳤다.

    설선당은 승려들에게 불교의 경전(經典)을 가르치는 중요한 교육장이며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집 형태로 목조 기와집 1동이다.

    정면에는 회산 박기돈이 쓴 ‘설선당’ 편액이 걸려 있다.

     

     

     

    쌍계사 적묵당(雙磎寺 寂默堂)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6호

     

    적묵당은 불도를 닦는 스님 중 처음 배우는 자가 수행하던 곳으로, 통일신라시대 문성왕 2년(840)에 진감선사가 세웠다.

    조선 인조 19년(1641)에는 벽암선사가 넓혀 짓고 1978년에는 고산 스님이 고쳐 지었다.

    정면 6칸,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현재 쌍계사 강원 스님들의 정진처로 쓰이고 있다.

    정면에는 회산 박기돈(1873~1948)이 쓴 ‘적묵당’이 걸려 있다.

     

     

     

     

    쌍계사 석등(雙磎寺 石燈)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호

     

    쌍계사 대웅전 앞에 서 잇는 석등은 절 안의 어둠을 밝힐 뿐만 아니라,

    빛으로 부처님의 진리를 비춤으로써 중생(衆生)을 깨우쳐 선(善)한 길로 인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쌍계사 석등은 증불을 놓는 화사석(火舍石)이나 지붕돌(屋蓋石, 옥개석)과 같은 중요한 부분이 없어서 원형을 알기 어렵다.

    위 받침돌(上臺石, 상대석)은 여덟 폭의 연꽃부리가 위를 향하도록 조각하였으나(八葉單瓣蓮, 팔엽단판앙연),

    아래 받침돌(下臺石, 하대석)은 반대로 꽃부리를 아래로 향하여 서로 대칭을 이루게 하였다.

    받침돌에 새겨진 연꽃무늬는 입체적이며, 사실적으로 표현된 반면,

    석등의 중앙부 기둥은 가늘고 길며 단순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원래의 형태는 알기 어렵지만, 받침돌에 새겨진 치밀한 연꽃무늬와 중앙 기둥의 단조로운 처리 등을 볼 때 통

    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쌍계사 대웅전(雙磎寺 大雄殿) - 보물 제500호(1968년 12월 19일 지정)

     

    정면 4칸, 측면 4칸이다. 단층 팔작지붕의 다포계(多包系) 건물이다.

    쌍계사는 840년(신라 문성왕 2)에 진감선사(眞鑒禪師) 혜소(慧昭)가 개창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로,

    자연조건에 순응하면서 건물을 배치한 산지(山地) 가람의 대표적 일례이다.

    대웅전은 가람의 중심이 되는 전당으로,

    큰 힘이 있어서 도력(道力)과 법력(法力)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으로, 이 사찰의 본전이다.

    중앙의 3칸에는 각각 사분합(四分閤)의 빗살문이 달렸고, 상부에는 창방(昌枋) 밑으로 광창(光窓)을 달았으며,

    기둥이 그만큼 높아져서 규모도 큰 편이다.

    좌우 끝의 두 문은 주간(柱間)을 좁혀 두 짝으로 정자(井字)살문을 달았다.

    평방 위에 배치한 공간포(空間包)는 중앙의 3칸은 2개씩이고, 좌우 끝에는 1개씩이다.

    공포의 구성도 내외 모두 삼출목(三出目)으로 처마를 받치게 하였다.

    내부는 첨차(檐遮)가 모두 교두식(翹頭式)이고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으며,

    중앙의 뒷면에 불단(佛壇)을 마련하였고 그 상부에는 정자각형의 닫집을 달아 조각으로 장식하였다.

    첨차가 교두식인 것으로 보아 오래된 양식임을 알 수 있다.

     

     

     

     

     

     

    쌍계사 나한전(雙磎寺 羅漢殿)

     

    석가모니불을 주불(主佛)로 봉안하고 좌우협시로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입상을,

    그 주위에 16나한상과 인왕상을 봉안하고 있는 전각이다.

    이 가운데 가섭존자상은 고승의 풍모가 느껴지고,아난존자상은 지적이고 준수한 풍모를 잘 표현했다.

    1641년(인조 19) 벽암(碧巖)스님이 응진당을 창건하였는데,이것이 나한전의 전신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3량 구조로 맞배지붕을 한 익공계 건물이며 지붕 옆면에 풍판(風板)이 있다.

    익공의 형태는 출목이 있는 2익공 짜임으로 윗부분에는 연화무늬를 보 머리에 끼워 장식하였고,

    안에서는 초익공과 2익공을 맞붙여 운공(雲工) 형태로 조각하였다.

    기둥은 배흘림이 거의 없으며 높이가 낮고 가늘다.

    주두(柱頭)는 기둥 윗부분 지름의 1.5배 가량으로 매우 넓다.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석가모니불 윗부분 장엄장식은 얇고

    긴 띠모양의 판재를 하나 걸치고 휘장모양의 단청으로 생략하였다.

     

     

     

     

     

     

    금강계단(金剛戒壇)

     

    엎드려 들으니 선사 대은율사께서 칠불사에서 7일간 용맹기도 중에 서상수계하시고 전수계맥하되

    계단을 정하지 않으시니 산승이 1988년 무진년 음력 717일에 쌍계사 대웅전에서 7일간 용맹기도를 시작하여

    5일인 721일 오후 기도 중에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 미륵보살이 오색구름 위에서 나투시고,

    삼존불 아래 허공 중에 금자사구가 나타나니

    심직명지계 심곡명훼범 心直名持戒 心曲名毁犯
    직심근수행 이리구원성 直心勤修行 理利俱圓成

    하리라는 서상계를 받고는 불은에 보답코져 국내, 국외의 크고 작은 사암을 가리지 않고

    보살계 전계전법에 전념하여 쉬지 않았으며

    또한 대은율사서상계맥을 국내외 승속불자가 전수 받지 않음이 없으나 근본계단이 없음을 통탄히 여기고,

    나 또한 서상수계하였으나 근본계단이 없는 연고로 2007년 정해년에 불현듯 뜻을 내어

    바로 대시주자를 만나 대은고산율맥계단을 원만조성하여 부처님 혜명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게 하니

    유정들도 무정들도 모두 정계를 받고 번뇌를 여의고 보리를 이루어서 널리 중생을 제도하며

    사바세계가 극락으로 바뀌어지고, 이것을 보고 듣는 이는 부처를 이루어서 중생계가 다하도록 모두 다 상락아정을 즐길지어다.

     

    쌍계사 조실 고산스님 금강계단조성기문

     

     

     

     

     

     

     

     

     

     

     

    쌍계사 명부전(雙磎寺 冥府殿) -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23호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봉안하여 좌우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협시하고

    그 좌우에 명부시왕상(冥府十王像)을 안치한 곳이다.

    명부전은 칠성각, 산신각, 독성각 등과 함께 한국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전각으로

    한국 불교의 토착화를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1687년(숙종 13) 성안대사가 창건하였고 1710년(숙종 36) 신민대사가 중수하였다.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5량 구조이며 익공계 맞배지붕집이다.

    익공은 출목(出目)이 있는 2익공계이며 옆에는 풍판(風板)을 두어 상부구조를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다.

    각 어칸을 제외한 각 칸에는 머름이 있어 출입할 수 없고 어칸에는 세살 여닫이문,

    협칸에는 2짝 세살 여닫이창, 툇간에는 1짝 세살 여닫이창을 두었다.

    간살은 거의 동일하며 주간(柱間)에는 화반(花盤)이 생략되어 있다.

     

     

     

     

    하동 쌍계사 마애불(河東 雙磎寺 磨崖佛)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8호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특이한 모습의 마애불이다.

    큰 바위에 두터운 돋을 새김으로 불상을 새기고, 불상의 둘레를 깊이 파내, 감실(龕室)에 모셔진 부처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머리가 크고 살집이 많은 얼굴에 어깨까지 처진 귀는 자비로운 느낌을 주고 있다.

    부처의 손은 법의(法衣)로 덮여 있는데. 전체적인 모습이 아주 소박하여 부처라기 보다는 승려의 모습과 같은 마애불이다.

     

     

     

     

     

     

     

     

     

    금당영역

     

    대웅전 앞마당에서 범종루 사잇길에 있는 긴 계단 끝에 자리하고 있는 곳이 쌍계사의 역사가 숨쉬는 금당영역이다.

    금당은 원래 부처님을 모신 전각을 의미하는데,

    육조 혜능대사의 정상을 봉안하고 금당이라 이름한 것은 조사의 가르침을 중시한 선총 사찰의 특징이다.

    금당영역은 수행자의 공간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되며

    하안거, 동안거 해제 후 3개월은 산문을 열어 개방한다.

     

     

     

     

    쌍계사 청학루(雙磎寺 靑鶴樓)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5호

     

    이 건물은 1930년 쌍계사 주지 손민선사가 건립한 맞배지붕의 2층 누각으로 1985년 지붕 기와를 한 차례 보수하였다.

    초심자(初心者) 승려들의 수도 장소로 사용된 곳으로 이와 관련하여 백곡도인(白谷道人)의 청학루 수행기문이 있다.

    또한 1902년 8월 면암 최익현(崔益鉉)이 남쪽을 여행할 때

    이 지방의 사림 32명과 주지 1명과 함께 창수시(唱酬詩)를 짓고 음사(吟社)를 창립하여

    청학루음사(靑鶴樓吟社)라 하였는데, 그 현판이 청학루에 게시되어 있다.

     

     

     

     

    쌍계사 영모전(雙磎寺 永慕殿)

     

    이곳은 쌍계사의 창건주인 진감선사의 진영을 비롯, 지순, 사명, 부휴, 벽송, 소요 대사 등의 진영이 모셔져 있으며

    인조 9년(1641년) 벽암스님이 중창하고 1978년 고산스님이 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특히 이 법당은 불교의 진리와 중생에게 생명의 감로수를 내린 뜻을 길이 숭모한다는 뜻에서 영모전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홑처마 맞배집 건물로 포작(包作)을 짜지 않은 간결한 도리집으로

    정면에는 모두 2분합의 세살문을 달았다.

     

     

     

    쌍계사 팔상전(雙磎寺 八相殿)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7호

     

    석가모니의 생애를 그린 팔상도를 모신 팔상전은 고려 충렬왕 16년(1290) 진정국사가 처음 지었고,

    조선 세조 12년(1466)과 숙종 4년(1678) 그리고 순조 6년(1806)에 수리가 있었다.

    지금의 건물은 1978년 고산스님이 보수한 것이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2구씩 포를 배치하였다.

    전체적으로 건물높이에 비하여 처마의 길이는 짧다.

    내부의 천장은 점차 높이 올라가는 층단형으로 높직하게 보이나 단순한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세부에서 일부 장식적인 조각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내부에는 영산회상도(보물 제925호)와 팔상도(보물 제1365호)가 모셔져 있었으나

    현재는 쌍계사성보박물관에 보관중이다.

     

     

     

     

     

     

     

    쌍계사 금당(雙磎寺 金堂), 육조정상탑전(六祖頂相塔殿)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5호

     

    쌍계사의 육조정상탑전은 쌍계사 내에 있는 전각으로

    중국 불교 선종의 6대조인 혜능대사의 정상, 즉 두개골을 모시고 있는 건물이다.

    통일신라 경애왕(재위 924∼927) 때 진감선사가 건물을 세워 육조영당이라 하였으며, 후에 금당이라 불렀다고 한다.

    건물 안에는 7층석탑이 있는데

    이 탑은 1800년대에 목압사의 석탑을 용담스님이 옮겨 놓은 것으로 그 뒤부터 육조정상탑이 되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양식의 건물이다.

    천장은 중앙부 쪽으로 높아지는 단계형이며, 탑의 중앙부는 닫집으로 장식하여 장엄한 느낌을 준다.

    건물의 앞쪽에는 조선시대 명필인 추사 김정희가 쓴 ‘육조정상탑‘’세계일화조종육엽‘의 현판이 걸려있다.

     

     

     

     

     

     

     

     

     

     

     

     

     

     

     

     

     

     

     

     

     

     

     

     

     

     

     

    (), (), ()의 성지, 쌍계총림 쌍계사(雙磎叢林 雙磎寺)

     

    ()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21(722)에 대비(大悲), 삼법(三法) 두 화상이

    당나라에서 선종의 6(六祖)이신 혜능대사의 정상(頂相)을 모시고

    '지리산설리갈화처(智異山雪裏葛花處:(눈 쌓인 계곡 칡꽃이 피어 있는 곳)'에 봉안한 것이 시초이다.

    쌍계사 금당의 육조정상탑 속에는 혜능대사의 정상이 모셔져 있다

     

    () 우리나라에 차()가 재배된 것은 흥덕왕 3(828)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종자를 가져와 쌍계사에 심으면서 시작되었다.(註 三國史記),

    현재 쌍계사 입구에 차나무 시배지 기념비가 있다

     

    () 신라 문성왕 2(840) 진감국사가 옥천사라는 대가람을 중창하였으며,

    선의 가르침과 불교음악의 시조로서 우리나라 최초로 범패(梵唄)를 보급하시었으며,

    후에 나라에서 쌍계사라는 사명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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