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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산 강천사(廣德山 剛泉寺)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18. 5. 22. 21:30
광덕산 강천사(廣德山 剛泉寺)
산세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할 형상이라 하여 용천사(龍泉寺)라고도 하였다.
선조(宣祖) 때 학자 귀봉(龜峰) 송익필(宋翼弼)이 이곳에 유숙하며 ‘숙강천사(宿剛泉寺)’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었는데
이때부터 강천사(剛泉寺)로 불리었다 한다.
887년(진성 여왕 1)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불교의 전파를 위해 전국을 수행 다니던 중
광덕산(廣德山) 줄기에 호남의 금강산(金剛山)으로 천태만상(千態萬象)의 기암절벽과 굽이굽이 맑은 물이 사계절을 흐르는
천고(千古)의 빼어난 절경에 강천사[옛 이름은 복천사(福川寺, 福泉寺)]를 창건하였다.
당시에는 강천사를 중심으로 국가적으로는 호국 사상과 개인적인 기복 신앙 및
인과응보적 업설이 불교의 전생설과 습합(習合)되어 매우 빠르고 깊숙하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1316년(충숙왕 3) 덕현선사(德賢禪師)가 오층석탑과 12개의 암자를 창건하여 사세(寺勢)를 확장하였으며,
조선시대 1482년(성종 13)에 작성된 ‘강천사 모연문’의 기록을 통해 강천사가
이 해에 신말주(申末舟)의 부인 설씨의 시주를 받아 중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강천사는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불타 없어지게 되었으며,
1604년(선조 37)에 태능(太能) 소요대사(逍遙大師)가 중창하면서 옛 위용을 갖추게 되었다.
1760년(영조 36) 경진판 ‘옥천 군지(玉川郡誌)’에 의하면 강천사는 불전이 3개소, 승방이 12개소이며,
명적암·용대암·연대암·왕주암·적지암 등 강천사에 속한 암자가 12개가 있었으며
그 당시 500여 수도승이 살던 대거찰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후 1855년(철종 6) 금용당(金容堂) 선사에 의해 중창되었으나
1950년 6·25 전쟁으로 인해 보광전, 칠성각, 첨성각의 당우가 모두 불탔다.
당시 강천사에는 비구니들이 주로 머물렀는데 그 까닭은 창건자 도선국사의
“머리카락과 수염이 없는 사람이 있어야 빈찰(貧刹)이 부찰(富刹)로 되고 도량이 정화된다.”라는 예언을 따랐기 때문이다.
그 후 승려 김장엽(金獎燁)이 1959년에 새로 중창하였고, 1992년 보광전을 대웅전으로 바꾸었다.
강천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암사의 말사로 비구니 사찰이다.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강천산길 270 (청계리)
강천문(剛泉門)
강천문(剛泉門) 편액
관지(款識)를 보면 신사중추절(辛巳仲春節) 남곡 김기욱(南谷 金基旭)이라 했으니,
이 편액은 불기 2545년(2001)년 음력 2월에 남곡 김기욱 선생이 쓴 글씨이다.
남곡 선생은 전라북도 서예대전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전라북도 서예대전 초대작가, 대한민국 서예대전 초대작가,
월간서예 초대작가, 대한민국 서예문인화대전, 단원미술제 심사위원을 역임한 전라북도 순창의 대표적인 서예가이다.
안양루(安養樓)
강천사 오층석탑(剛泉寺 五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2호
이 탑은 1316년에 덕현(德玄) 스님이 강천사를 다시 지을 때 세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강암으로 정교하게 만든 오층탑으로 다보탑(多寶塔)이라고도 부른다.
2층.3층.4층의 덮개에는 6.25 한국전쟁(1950~1953)때 총탄을 맞은 흔적이 남아 있다.
대웅전(大雄殿)
심우당(尋牛堂)
범종각(梵鐘閣)
설씨부인 권선문 번역문(薛氏夫人 勸善文 飜譯文)
정부인 설씨가 강천사 중건을 위해서 백성들에게 시주를 권선한 16폭의 그림
정부인 설씨(貞夫人 薛氏, 1429~1508), 본관 : 순창,
귀래정 신말주(歸來亭 申末舟)의 부인
사직 설백민(司直 薛伯民)의 딸
대개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설(因果說)이란 착한 일이건 악한 일이건
사람이 살아 있을 때에 행한 것을 인(因)이라 하고, 그 후에 그에 상응한 보답을 받는 것을 과(果)라고 한다.
나는 한 여성으로서 비록 불교의 오묘한 이치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지난 날의 역사를 대략 살펴보면 불교가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이래 자비(慈悲)를 강조하고,
인과(因果)의 이치를 깨우쳐 주어 많은 중생을 고통에서 구해 주었다고 알고 있다.
그리하여 훌륭한 제왕이나, 제후들, 또는 뛰어난 조정의 대신이나 일반 지식인들까지도 모두 그 풍속을 따르고, 부처님을 흠모하였다.
그 중에는 몸소 불도(佛道)를 실천하고, 정성껏 부처님을 섬기어 심신의 더러움을 완전히 떨쳐 버려서
깨달음의 길에 나아가는 이가 끊임없이 나오는 것을 보면 불교 신앙의 깊이와 이로움이 없다면 어찌 이러한 행적이 나타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나도 평소에 불교의 가르침을 믿고 기꺼이 따르는 가운데에서 마음의 기쁨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금년 음력 2월 어느 날 밤 꿈에 돌아가신 친정어머님 형싸(邢氏)께서 선녀와 같은 옷차림으로 관을 쓰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내 앞에 마주 앉더니 조용히 말씀하시기를,
"내일 어떤 한 사람이 찾아와 너에게 좋은 일을 함께 하자고 청할 것이니 모르지기 너는 기쁜 마음으로 이를 따르고,
행여라도 싫어하는 뜻은 갖지는 말아라. 그가 청하는 일은 장차 너에게 복이 될 일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듣자마자 나는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나는 일어나 옷을 단정히 입고 앉아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는데,
과연 꼭두새벽에 밖에서 누군가가 사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을 시켜 알아보니 찾아온 사람은 가까운 마을에 사는 평소에 잘 아는 약비(若非)라는 여성이었다.
그래서 그를 맞아들여 앉게 하고 찾아온 연유를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순창고을 광덕산(廣德山) 안에 산수가 가장 맑고 아름다운 곳이 있어
옛날 '신령(信靈)이라는 스님이 이곳에서 잠시 초막집을 지어 부처님을 모셨습니다.
그런데 여러 해를 거치는 동안 무더위와 추위 및 비바람에 집과 담장이 다 무너져 마침내 빈 옛 터만 남게 되었으며,
그래서 뜬 구름 흐르는 물과 같이 떠돌아 다니는 스님들의 오랜 한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중조(中照) 라는 뜻 있는 스님 한 분이 있어 의로운 뜻으로 이 절을 다시 세울 것을 결심하고,
자신도 돈을 내는 한편 또 여러 불자들을 두루 찾아가 보시를 권하여 이때 저도 비록 적은 액수나마 성금을 냈습니다.
이 때 불전(佛殿)을 신축하여 단청을 마치고 절 이름을 부도(浮屠)가 있으므로 부도암(浮屠庵)이라 하였습니다.
비록 그 규모는 작으나, 도량이 깨끗하고 고요한 점에 있어서는 이 산 중의 다른 어느 사찰도 따를 수 없을 정도였으며,
그로부터 지위가 높고, 이름 있는 인사들이, 혹은 조용한 곳을 찾아 수양을 닦으려는 사람들이 모두 즐겨 찾아와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원래의 공사가 바쁘게 서둔 탓으로 매우 부실하여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는데도 집이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에 중조 스님과 제가 그 개축을 계획하여 여러 모로 의논을 하였으나,
워낙 재력이 부족하여 아직껏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 처지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부인께서는 평소에도 이와 같은 일을 항상 기쁜 마음으로 돕는다고 하시기에 시주(施主)로 모시고자 찾아온 것입니다.
부인의 뜻은 어떠하신지요?"
이때 나는 어젯밤 꿈 생각이 나면서 나도 모르게 일어나 재배를 하였고,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일이야말로 간 밤의 꿈이 얼마나 신기한가를 입증해 보여주는 것이네.
나의 돌아가신 어머니께서는 살아 계실 적에도 타고난 성품이 영명(英明)하여 오직 착한 일만을 하고,
악한 일은 일체 하지 않았으니 지금 틀림없이 저승에서 존귀한 자리에 계시면서 미래의 운수까지 다 아시고,
나에게 이렇게 알려 주시는 것이 분명하네.
지금 약비 그대가 말한 그러한 일은 내가 평소에도 즐겨 하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더구나 어머니의 명을 받았으니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내가 마땅히 그 일을 담당하여 그 절을 우리 집안의 원당(願堂)으로 삼겠네.
지금 그 암자(현재의 강천사)의 규모를 듣건대 그 건축에 소요되는 재물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니
그 일을 나 혼자 감당한들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일에는 이왕이면 모든 사람들이 다함께 참여하여
그들도 이 기회에 장래의 복을 위한 선인(善因)을 쌓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
다만, 오늘날 세상사람들이 모두 끝없이 욕심만을 쫓아 세상을 뜰 때까지 그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으니
어찌 그들이 다 깨달아 착한 일을 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기는 하나 또 한편 생각해 보면, 불경에 말씀하시기를,
'만약 낡은 절을 잘 수리하면 이는 두 개의 범천(梵天)에 나아갈 복을 받는다' 고 하였으니
첫째는 공덕을 쌓아 선한 뿌리를 내리도록 하여 장차 어버이에게 복이 오도록 하는 일에 이것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따라서 이러한 이야기를 뜻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그 누군들 이번 기회에 착한 일을 하여
크게는 임금과 어버이에게 복이 되게 하고 작게는 자신에게 이롭게 하며, 나아가 천지만물에 이롭게 할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마땅히 여러 신자와 그 밖의 뜻 있는 사람들에게 이 번 일의 내용을 잘 알려야 할 것일세.
다만 내자신이 직접 나아가 다니면서 널리 권유를 한다는 것은 여성의 몸으로서는 어려운 일이니
내가 지은 선을 권하는 글(勸善文)을 중조 스님이 두루 가지고 다니면서 권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이렇게 물었더니 약비가 대답하기를 "이것이 바로 저와 중조 스님이 부인께 바랐던 일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나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지어 우리의 뜻을 밝히는 바이니 신도 여러분께서는 이 글을 보신 후
각자 뜻에 따라 시주를 베풀어 다함께 착한 인연을 쌓기를 바란다.
그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하건대 혹 그이치를 믿지 않는 자가 있다면 나의 말이 허황된 말로 들릴 수 있기 때문에
가까운 시기에 있었던 영험스런 사례 몇 가지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고려 말에 한 동량승이 왕륜사(王輪寺)를 고치고 금상불을 주성하려고 원납전을 구할 즈음에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이나 선비 그리고 일반 백성들까지도 재물을 내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런데 어떤 늙은 산장관(散將官. 명예직)은 지극히 가난하여 능히 보시를 할 수 없음에 절에서 심부름이나 시키려고 13세 된 달을 내 놓았다.
스님께서는 할 수 없이 그의 뜻을 받아들였는데,
그 때에 산장관이 모시고 있는 어떤 장군은 늙었으나 슬하에 자식이 없는지라 그의 딸을 양녀로 삼고자 베 500필을 내놓고 데려갔다.
또 시중(侍中)을 역임한 최당(崔讜. 1135~1211. 호는 정안 精安. 고려 후기 문신)이라는 사람은
항상 이웃에 있는 절을 섬겨 언제나 관청에 갈 때나 돌아올 때 마다 절 문 앞에서 말을 내려 배례를 올리고,
걷다가 절을 지난 뒤에 다시 말을 탔으며, 과일이나 곡물 등 새로운 것을 얻으면 먼저 부처님께 올리고,
혹 원당에 나아가며 손수 차를 끓여 불전에 공양하기를 오랫동안 계속하였다.
그런데 홀연히 꿈에 부처님께서 나타나시어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나를 부지런히 섬겼으나,
남쪽 마을 응양부에 사는 노병(老兵)의 신심(信心)만 못하도다." 라고 하셨다.
그가 다음날 사람을 시켜 찾아본 즉 과연 한 노병이 그곳에 살고 있었다.
그가 노병에게 "듣건대 그대는 항상 이웃 절에 계신 부처님을 지성껏 공경했다 하는데,
어떤 별다른 방법으로 공양했습니까?" 라고 물어보니, 노병이 대답하기를 "내가 중풍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한 지가 7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만 아침 저녁으로 이웃 절의 종소리만 들리면 절쪽을 향하여 합장했을 따름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가 노병에게 이르기를 "그와 같은 정성을 지닌 즉, 내가 부처님을 향하는 마음이 과연 그대의 정성만 못하였습니다." 라고 하고,
이로부터 그 사람을 중히 여기고, 언제나 녹봉을 받아 번번히 쌀 한 섬씩을 그 노병에게 내려 주었다.
대저 앞서 말한 산장관은 딸을 바친 성의가 지극하여 그 딸이 장군의 양녀가 되어 보답을 곧바로 받았고,
노병은 합장의 정성이 지극하여 그 스스로가 최시중으로부터 녹봉을 받아 일생동안 편안히 지내게 되었다.
인과의 이치가 이와 같이 밝은데, 하물며 후생에 이르러서는 더 말할 나위가 있으리요?
단지 합장하는 정성도 그와 같은 결과를 낳았거늘 항상 직접 재물을 보시하는 공덕은 어떻겠는가?
이를 통해 보았을 때 반드시 널리 선을 권하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아니함을 알 것이므로
감히 이 글을 써서 모든 이들에게 선을 권하노라.
성화(成化) 18년(조선 성종 13년, 1482년) 7월 일 정부인(貞夫人) 설(薛) 공양보시(供養普施) 약비(若非)」
'국내 나들이 > 사찰(寺刹), 불교(佛敎)'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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