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연무관(演武館)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호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8. 6. 17. 22:21

    연무관(演武館)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


    성을 지키던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으로 인조 2(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연무당으로 부르던 것을 숙종(재위 1674~1720) 때 수어사 김좌명(金佐明)으로 하여금 다시 짓게 하고 

     연병관(鍊兵館)’이라는 현판을 하사하였다.

    정조 때에는 수어영(守禦營)이라 개칭하였으나 그 뒤에도 통칭 연병관 또는 연무관이라 부르고 있다.

    연무관은 문.무과 시험을 보는 공개적인 시험 장소였으며,

    특히 무기 시연은 물론 주조(晝操), 야조(夜操) 등의 군사훈련을 거행했던 장소이다.

    연무관 규모는 약 330로 규모가 크고 육중하며, 높은 기단 위에 자리 잡고 있어 멀리서도 그 자태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정면 5, 측면 3칸의 팔작지붕건물. 겹처마로 초익공(初翼工)을 올렸으며 연등천장(椽背天障)에 마루는 우물마루이다.

    기둥은 둥글며 네 기둥마다에 주련(柱聯)이 걸려 있다.

    건물 내부 가운데에 있는 대들보에는 전, 후면에 용()을 그렸고 측면쪽 대들보에는 봉황(鳳凰)을 그려 넣은 것이 특이하다.

     












    연무관(演武館) 주련(柱聯)

    玉壘金城萬仞山(옥루금성만인산) 만길 산에 옥 같은 보루와 철벽 성이니,

    風雲龍虎生奇力(풍운용호생기력) 풍운이 용호를 따라 기이한 힘이 나온다.

    角羽宮商動界林(각우궁상동계림) 각우궁상 음악 경계의 수풀을 움직이고,

    密傳蔥本空三本(밀전총본공삼본) 몰래 파 한 뿌리 전하면 삼본을 비운다.

     
















    이아터(貳衙址)


    이아는 제승헌(制勝軒)이라고 하였으며, 영조 24(1748) 이후 연무관 근처에 자리잡은 행정관청의 중심지였다.

    이 안에 있었던 작청(作廳)은 실무를 담당하는 중간 관리층인 이방(吏房)과 아전(衙前)들이 소관업무를 처리하던 곳이였다.




    장터


    이곳은 5일장이 열리던 장터였다. 조선조 말까지 성()내에 읍치소(邑治所)가 있었고, 민가가 1천여호나 되는 큰 마을이었다.

    주민 간에는 지금도 이곳을 장터라 부른다.




    한강 남부 교역의 중심지, 남한산성 성내장


    남한산성은 거래할 물건을 운송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고지대입니다.

    심지어 동문과 남문을 제외한 동문과 서문은 길도 좁고 경사도가 매우 가파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편한 지역의 장터가 유명한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남한산성의 특수성과 남한산성 옛길(봉화로)이 지나는 중심지역이라는 조건 때문이었습니다.

    중요한 도로망의 기착지이자 인구가 밀집된 지역은 어김없이 큰 장터가 서기 마련이었는데요.

    산성장(성내장)은 조선후기 한양 남부에서 송파장, 수원읍장 다음가는 장터였습니다.

    수원읍장이 삼남대로의 중요한 장이었다면 성내장은 봉화로의 중요한 장터인 셈이죠.

    성내장에 우시장이 섰다는 점, 그리고 송파장에서도 팔지 않는 매우 독특한 거래품목도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송파장보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송파장의 배후 장시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주둔지와 관아가 있는 군사와 행정의 중심지에 위치한 장시였기 때문에

    송파장에 필적할 정도의 큰 규모였을 것이라는 점은 추측할 수 있습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