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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계 이황. 두향이 사랑이야기 공원
    일상생활속에서/작품속으로 2018. 10. 24. 04:30

    퇴계 이황. 두향이 사랑이야기 공원

    "저 매화분에 물을 주어라."


    충북 단양군에서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 선생과 충북 단양출신 관기(官妓) 두향(杜香)의 애틋한 사랑얘기를 담은

    스토리텔링 공원을 두향의 무덤이 내려다뵈는 단양 장회나루 언덕에 400규모의 스토리텔링 미니공원을 만들었다.

    이 공원에는 허리 뒤춤에 매화꽃을 들고 선 퇴계와 거문고를 타는 두향의 모습이 청동상으로 표현됐다.

    또 이들의 만남부터 이별까지 스토리를 테마 별로 새겨 넣은 12개의 입석도 세웠다

    스토리텔링 공원이 조성된 장회나루는 남한강 푸른물과 구담봉, 옥순봉 등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단양의 대표적인 관광명소 중 한곳이다.

    조선 13대 명종 무렵 48세 나이에 단양군수에 부임한 퇴계에게

    19살 관기 두향이가 고이 기른 매화화분을 선물하면서 스토리가 시작된다

    두향은 집안 우환으로 시름에 잠겨있던 퇴계를 위해 거문고를 타고 매화에 대신 물을 주는 등 온갖 수발을 들면서 위로했다

    가끔 짬이 날 때면 퇴계를 모시고 장회나루에서도 풍경이 빼어난 강선대에 올라 거문고를 탔다고 한다.

    어느덧 퇴계는 자신이 평생 동안 사랑한 매화만큼이나 두향을 아끼게 됐다.

    부임한지 9개월 만에 퇴계는 풍기군수로 자리를 옮기면서 두향과 이별하게 된다.

    퇴계가 떠나던 날 두향은 매화화분 하나를 이별의 정표로 보낸 뒤

    관기 생활을 청산하고 평생을 강선대에서 수절하며 퇴계를 그리워했다

    20여년이 지나 임종을 맞은 퇴계는 '저 매화분에 물을 주어라'고 유언했는데,

    그 매화분은 두향이가 이별의 정표로 준 매화였다.

    퇴계 죽음에 슬픈 나날을 보내던 두향은 이듬해 뒤따라 생을 마감하게 된다

    두향은 살아생전 자신이 죽거든 '퇴계선생과 사랑을 이야기 하던 강선대 아래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은 두향의 유언대로 그녀를 강선대 아래에 묻어 주었다는 슬픈 스토리를 담고 있다










    자연풍경과 인물이 하나의 작품으로 담길 수 있는 매화문양의 '액자 포토존'




    매화나무에 물을 준 뒤 정성껏 소원을 비는 '양석음석(陽石陰石) 소원석'








    퇴계 이황, 두향이 사랑이야기공원

    저 매화분에 물을 주어라.”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과 단양 관기 두향(杜香)의 신분을 뛰어 넘은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만나다.





    1. 대학자 퇴계 슬픔에 젖어 단양 부임하다.


    때는 바야흐로 조선 13대 명종 무렵. 대학자 퇴계는 지천명이 가까워 올 무렵

    한양에서 벼슬생활을 하다가 조정의 어지러움을 개탄하고 여러 이유로 낙담하며 인생의 깊은 고뇌에 빠져 있었다.

    그리하여 임금께 청송부사로 보내 달라 청하였고 15481월 단양으로 오게 되었다.

    48세로 단양군수로 제수받아 부임하게 된 퇴계는 7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나

    생후 7개월 만에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후 임신하여 아들 둘을 낳았고, 첫 부인, 둘째 부인과도 사별하였다.

    또한 단양에 온 이후로 또 둘째아들 새를 죽음으로 떠나보내게 되어 견디기 어려운 슬픔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2. 퇴계, 두향을 만나다. “이 매화분은 무엇이냐?”


    퇴계는 임지인 단양에서 백성들을 보살피는 일에 전념을 다하며 자신에게 닥친 불행과 심신을 추스르고 있었다.

    그때 문득 단양 관아의 마루 저쪽에 화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유난히 매화를 아끼던 퇴계는 매화 향기에 취해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이 매화분은 무엇이냐?”하고 붇는다.

    이는 단양의 관기 두향이 보낸 매화였다.

    두향은 조실부모하여 퇴기 변씨에게 길러지면서 기적에 오르게 되었다.

    얼굴과 몸매가 아름다웠거니와 거문고와 시문에도 능하였고 난과 분매에도 솜씨가 있었다.

    두향이 사별한 어미로부터 물려받아 그동안 애지중지 기르던 분매를

    높은 인격과 매화사랑이 남다른 퇴계의 처소에 옮겨 놓은 것이었다.

    퇴계는 매화를 보고 반기는 듯하였으나 백성의 물건을 취할 수 없다하여 이를 돌려 줄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다음 날 두향은 매화분에 관한 자초지종을 아뢰고 매화분을 곁에 두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으시어 단양 고을을 잘 다스려 줄 것을 아뢰었다.

    그 이후에 퇴계는 그녀의 고운 뜻을 존중하여 그 나무를 동헌(東軒)에 심도록 하고 즐겼다.




    3. 퇴계와 두향, 매화향과 거문고 음율 속에 빠지다.


    매화에 의한 만남 이후로 퇴계와 두향은 매화에 대한 시화를 짓기도 하고

    옛 시인 두보 매화시에 대하여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며 가까워지게 되었다.

    퇴계는 시문에도 능한 두향을 애지중지하게 되었고

    두향이는 학문과 도덕이 높은 퇴계를 흠모하고 존중하며 가까이서 모시게 되었다.

    퇴계는 또한 거문고 연주에 능한 두향을 통해 거문고 선율을 들으며

    그간의 슬픔과 군정의 노고를 조금씩 씻어가고 있었고 금보가를 지어 음악과 거문고에 대한 애정도 놓지 않았다.

    두 사람은 신분의 차이를 뛰어 넘은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며 매화의 향기처럼 달콤하고 그윽한 사랑에 빠져들었다.




    4. 매화의 옛 인연과 백성을 생각하다.


    두향에게 신산한 매화의 느낌을 받은 퇴계는 매화를 인격화(人格化) 빙옥처사(氷玉處士)라 부르며 아꼈으며,

    스스로를 혹애매(惑愛梅)라 칭하기도 할 정도로 매화를 사랑하였다.

    그런 매화향기를 나누고 불우한 시절에 대한 동변상련으로 두 사람의 교우는 점점 깊어갔다.

    일찍이 퇴계는 첫째 부인 어씨가 자식 둘을 낳고 일찍 세상을 떠났고

    나라의 비정함에 실성한 권질의 여식을 둘째 부인으로 거두어 살았는데

    자신의 몸을 낮추어 심신이 온전하지 않은 부인을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였다.

    퇴계는 여성을 남성보다 낮은 존재로 여기지 않았으며,

    둘째 부인이 낳은 자식도 자신의 족보에 올리며 적서를 차별하지 않았다.

    또한 스스로 검소하고 여재를 털어 척박한 땅과 극심한 가뭄으로 생활이 힘든 백성들을 살피고 구제하는 데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사물인 매화를 사람 대하듯 존중했던 퇴계는 인()과 경()의 정신을 실천한 대학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5. 달빛 그윽한 밤, 서로 매화향기에 빠져들다.


    가여운 고을 백성을 생각하며 고단한 공직생활을 이어가는 퇴계에게

    두향은 더없이 소중한 존재로 다가오게 되었고, 생활의 유일한 활력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봄 날, 늦게까지 고을 백성을 살피다가 돌아온 퇴계는

    또 다시 두향이 두고 간 홍매화분의 향기에 이끌려 마음속 사랑을 꺼내어 두향을 품에 안게 되었다.

    기나 긴 겨울을 견디어 가장 먼저 봄의 향기를 전하는 매화처럼 퇴계에 대한 존경과

    정성을 다한 두향에게 퇴계는 밤에도 지음을 얘기하는 귀한 존재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퇴계와 두향이 함께 지었다 전해지는 매화시 도수매(倒垂梅)

    일화재배상감시(一花背尙堪猜) 꽃 한송이 고개 돌리고 있어도 그 미워함을 견디기 어려운데

    호내수수진도개(胡奈垂垂盡倒開) 어찌하여 모두 거꾸로 매달리고 매달려 피었단 말인가

    뇌시아종화하간(賴是我從花下看) 이리하여 내가 몸을 낮춰 꽃 밑에서 올려다보니

    묘두일일견심래(昴頭一一見心來) 고개를 치켜든 꽃 머리 하나하나마다 마음 다가오는 게 보이도다.


    몸사랑을 통해 인간은 생명의 비밀과 기쁨의 원천을 알게 된다고 믿었고,

    상열을 본성에 대한 예절이며 기조족인 도덕이라 여기었다.

    동방예의 나라라는 격에 맞도록 남녀의 사랑도 소중한 가치로 생각하였다.

    달빛은 스며들고 퇴계의 고고함을 잃지 않은 사람은 두향의 입술 속에서 매화향기로 번지고 있었다.  




    6. 옥순봉을 얻고 단구동문을 새기다.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향기로운 밤을 함께 보낸 이후 두 사람은 산수를 거닐며 인생을 즐기고 고귀한 정을 나누었다.

    두 사람은 강선대에 앉아 시로써 화답하였다.

    또한 두 사람은 단양의 경치가 좋은 내용을 한 가지 어휘로 묶어 부를 것을 생각하였다.

    퇴계는 이 경치 좋은 여덟 곳을 단양팔경으로 명명하려 하였으나 문제가 있었다.

    두향이 그 내용을 듣고 보니, 그 중에 옥순봉은 그 당시 단양 땅이 아니라 청풍 관할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두향은 출생한 두향마을이 바로 옥순봉 근처라 어렸을 때부터 그러한 내용을 잘 알고 있었고

    두향이 퇴계에게 옥순봉 관할의 이웃 청풍군수에게 찾아가 타협을 보면 어떻겠느냐는 생각을 전하였다.

    이에 퇴계는 청풍군수를 찾아가 상의하고 옥순봉에 단구동문(丹邱洞門)이라는 커다란 글씨를 새겨 놓았다.

    단양의 석공들이 이 소식을 듣고 찾아와 깊게 새기니 오늘까지 그 암각문이 전해온다.




    7. 단양산천의 여덟 보배를 노래하다.


    퇴계는 두향과 함께 단양의 아름다운 하늘과 산과 강물의 여덟 풍광을 명명하며 이렇게 노래하였다.

    1경은 사암풍병(舍巖楓屛사인암)이요 

    2경은 구로모담(龜老慕潭구담)이라네 

    3경은 삼도일하(三島一霞도담삼봉) 

    4경은 석미신월(石眉新月석문)이라네 

    5경은 취암무천(醉巖舞天선암)이요  

    6경은 겸산공수(謙山恭水쌍룡곡)라네  

    7경은 여인여산(如人如山와룡곡)이요  

    8경은 잠대문향(潛臺聞香강선대)이라네


    현재 단양팔경인 도담삼봉은 남한강의 수면을 뚫고 솟은 세 봉우리로 정도전의 호를 따 이름 지었다.

    석문은 수십 척의 돌기둥에 무지개 형상의 돌다리가 걸려있는 형상이다.

    구담봉은 거북모양의 장엄한 기암괴석이며, 옥순봉은 흰색에 주목해 옥순봉이라 하였다.

    사인암은 덕절산 줄기에 깎아지른 강변을 따로 치솟아 있다.

    하선암은 삼층의 넓은 바위로 봄의 철쭉, 가을 단풍이 절경을 이룬다.

    중선암은 흰색의 바위가 층층대를 이루고 있으며, 상선암은 작고 올망졸망한 바위와 벽계수가 있는 절경이다.

     




    8. 생이별 백매와 홍매의 향기가 찾아들다.


    두향은 관가에 들어오면서 집에서 돌보던 백매와 홍매 두 분을 가져와 퇴계의 방에 놓아 두었다.

    은은한 매화향기는 퇴계와 두향의 교감이었다.

    그러나 회자정리라고는 하니 이 두 사람간의 이별의 시간은 너무도 빨리 찾아왔다.

    퇴계의 친형인 이애가 충청감사로 부임하게 되어 상피제도 때문에 풍기군수로 전임하여야 했다.

    퇴계는 단양 백성을 어루만지다가 두향을 곁에 두고 아끼다 겨우 9개월 만에 단양 땅을 떠나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이별이 가까워오자 애가 끓었다.

    관기를 데리고 갈 수 없는지라 퇴계는 결국 두향을 혼자 두어야 했고,

    떠나기 전 마지막 밤에 마주 앉아 애절한 두보의 시를 주고받으며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사별이탄성(死別已呑聲)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생별상측측(生別常惻惻)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 없네


    그렇게 짧은 밤은 긴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 날 퇴계가 풍기군수로 전임되면서 꾸린 짐 속에 두향은 매화분 한 개와 수석 두 개를 넣어 두었다.

    이때 두향이 전한 청매는 아직도 도산서원 뜰 한쪽에서 그윽한 향기로 번지고 있다고 한다.

     




    9. 절절한 그리움에 사무치다.


    퇴계가 풍기군수로 떠난 후 두향은 기녀생활을 하는 것이 잠시 동안이나마 모시던 분의 인격에 대한 모독이라 생각하고

    관기생활을 정리한 후 평생을 수절하면서 퇴계를 그리워했다.

    두향은 강선대에서 거꾸로 꽃을 피우는 수양매(垂楊梅)를 보면서 눈물의 나날을 보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그리움은 쌓여가고 퇴계가 관직에서 물러나 말년을 안동 도산서원에서 지낼 때 어느 날 두향이 인편으로 난초를 보내왔다.

    퇴계는 단양에서 함께 기르던 것임을 알아차리고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자신이 평소에 마시던 우물물을 손수 길어 두향에게 보냈다.

    이 고귀한 우물물을 받은 두향은 이 물을 새벽마다 일어나서 퇴계의 건강을 비는 정안수로 소중히 다루었다.

    그리고 두향과 이별한지 몇 해 지난 어느 봄날 퇴계는 인편에 시 한 수를 두향에게 보냈다.

    두향은 죽기 전까지 매일매일 거문고에 이 시의 슬픔을 실어 노래로 불렀다.


    황권중간대성현(黃卷中間對聖賢) 누런 책 속에서 성현을 대하면서

    허명일실좌초연(虛明一室坐超然) 텅 비고 밝은 방안에서 초연히 앉아있네.

    매창우견춘소식(梅窓又見春消息) 매화 핀 창가에서 또 봄소식을 보는구나

    막향요금탄절현(莫向瑤琴嘆絶絃) 거문고를 바라보며 줄이 끊어졌다 한탄하지마라.

     




    10. 퇴계, 성리학의 큰 별이 지다.


    퇴계는 매화를 무척 사랑하여 죽을 때까지 92107수의 매화시를 썼으며,

    그중 6271수를 모아 매회시첩이란 책을 엮었다.

    이는 두향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이 매화시로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시를 지으며 그의 가슴엔 두향의 매화나무를 심은 것이다.

    두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매화에 대한 그리움으로 비유적으로 이야기 하였다.


    * 퇴계가 생의 마지막 즈음에 지는 매화시

    전신응시명월(前身應是明月)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기생수도매화(幾生修到梅花) 몇 생이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퇴계는 선비답게 인연을 끊고 사랑하는 매화를 두향이 보듯 하면서

    때로는 늙어가는 초췌해진 자기 모습에 부끄러워 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하였다.

    마침내 1570128일 숨을 거두기 직전 퇴계는 아들에게 저 매화분에 물을 주어라.”는 유언을 남겼다.

    죽으면서도 두향을 잊지 못한 것이다.

    퇴계는 생의 마지막 날에 주변과 침상을 정돈한 후 단정히 앉은 자세로 숨을 거두었다.

    위대한 대학자를 잃은 하늘은 번개구름과 비를 쏟으며 슬픔을 토해내고 있었다.

     




    11. 두향, 강선대에 가련한 꽃으로 지다.


    하늘이 흐리던 어느 날 퇴계가 보낸 정화수가 핏빛으로 변함을 보고 퇴계가 별세하였다고 느낀 두향은

    소복차림으로 단양에서 머나 먼 안동 도산서원까지 사흘을 걸어서 찾아가

    먼 발치에서나마 장례 모습을 보고 큰절하며 고운님과의 안녕을 고하였다.

    그리고는 걸음걸음 눈물을 흘리며 단양 강선대로 돌아와 식음을 전폐하고

    아침저녁으로 상식을 떠놓고 안동 쪽을 향해 절을 하고 곡을 했다.

    그러기를 몇 날 며칠, 해를 넘겨 곡기를 일절 끊고 슬퍼하던 두향은 퇴계에 대한 슬픈 그리움을 못이겨

    퇴계가 써준 혹애일매(惑愛一梅) 서지로 얼굴을 감싸고 검푸른 빛이 감도는 깊은 남한강에 자신의 몸을 던지게 되었다.

    이른 봄 강선대에 피었던 매화꽃도 강물 위로 슬피 흩날리고 있었다.

     




    12. 퇴계와 두향의 사랑, 단양에 깃들다.


    죽기 전 두향은 자기가 죽거든 퇴계 선생과 매화와 시와 사랑을 이야기하던 강선대 아래 묻어달라는 말을 남겼고

    이에 동네 사람들은 두향의 유언대로 강선대 아래 묻어주었다.

    그러나 몇 백년이 지나 두향의 무덤이 물에 잠기게 되었고 후에 강선대가 바라보이는 높은 곳으로 옮겼다.

    현재 두향 무덤은 장회나루에서 강선대 방향으로 물 건너에 있고 지금은 배를 타야 다다를 수 있다.

    두향이 죽고 450여년이 지난 후에도 두향의 퇴계를 향한 높은 절개를 기리는 이들이 있다.

    단양에서는 전설을 넘어 매년 두향제를 올리며 두향과 퇴계와의 애틋한 사랑을 추념하고 그 붉었던 두향의 외로운 넋을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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