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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치전적지(梨峙戰蹟地) - 전라북도기념물 제16호
    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18. 11. 23. 22:00

    이치전적지(梨峙戰蹟地) - 전라북도 기념물 제16호




    이치전적지(梨峙戰蹟地)


    여기 이치(梨峙)는 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수전(水戰)의 한산섬, 육전(陸戰)의 이치, 행주(幸州)를 지칭하는 3대첩의 하나인 전적지이다.

    이때 왜군(倭軍)들의 분지(分地) 책임에 전라감사를 맡은 왜장 소조천융경(小早川隆景,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금산성(錦山城)을 점거하고 호남의 수도인 전주성(全州城) 침입을 도모하여

    그의 부장(副將) 안국사혜경(安國寺惠瓊, 안코쿠지 에케이)으로 하여금 웅치(熊峙)를 공략케 하였으나

    안덕원(安德院)에서 패퇴(敗退)하고 자신은 정병(精兵) 1천여를 거느리고 이치를 공격하였으나

    전라도 도절제사(全羅道 都節制使) 권율(權慄)이 치밀한 방어진 구축과

    주장(主將) 황진(黃進), 비장(裨將) 위대기(魏大器), 공시억(孔時億) 등이 이끄는 호

    남 의병 15백여 명의 장렬한 결투로써 적을 완전히 궤멸(潰滅)하는 대첩(大捷)을 이루었다.

    이 대첩으로 적에게 호남 침입을 단념케 하여 군량(軍糧) 조달의 곡창(穀倉)이 보전되고,

    사기백배(士氣百倍)한 호남 의병이 행주, 수원 등 왜군을 강타하여 임란(壬亂)을 전승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치전적지(梨峙戰蹟地) - 전라북도기념물 제16


    이곳은 1592(선조 25) 임진왜란 때 전라도 절제사 권율(權慄)의 독전하 동북현감 황진(黃進) 장군 등이 왜적을 격파한 전적지이다.

    왜장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은 금산에서 웅치 방어선을 뚫고 호남의 수도 전주를 침공하려 했다.

    이 소식을 들은 황진 장군은 남원진에서 급히 철수해와 안덕원까지 침입한 적을 물리치고,

    바로 이치로 달려가 휘하의 비장 공시억, 위대기, 의병장 황박(黃璞) 등과 함께 사력을 다해 싸우다가 한때 부상도 입었으나,

    마침내 적을 대파하니 적의 시체가 수십 리에 즐비하였으며 아군의 피해는 적었다.

    이에 왜적은 전주 침공의 야욕을 버렸으니 이 대첩을 임진왜란 3대첩(梨峙, 閑山, 幸州)의 첫째로 손꼽기도 한다.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무민공 황진장군 이현대첩비(武愍公 黃進將軍 梨峴大捷碑)




    무민공 황진 장군 이현(이치) 대첩비 건립기


    이곳 무민공 황진장군 이현대첩비는 장군께서 순국하신지 400주년이 되는 19938,

    전북향토문화연구회 이강오 회장과 전라일보 이치백 사장의 발의로 장군의 위업을 기리기 위하여

    이현 전승지에 대첩비 건립을 추진하기로 하고 경향 각지의 뜻있는 인사들의 성원으로

    무민공 황진장군 이현대첩비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게 되었으며, 추진위원회는 모금에 착수하는 한편,

    부지 정비와 대첩비석 발굴과 조각에 전력을 기울였고 정부와 전라북도, 완주군의 지원과 함께 연차적으로 추진하면서

    6년여 기간 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여 1999525일 대첩비 건립을 완성하여 준공을 보게 되었다

    이 사업에는 부지 확장을 위해 금산군의회 유승열 의원의 임야 희사가 있었으며,

    전북향토문화연구회 8대 회장 양만정 선생과 전북대학교 장명수 총장의 큰 노력이 있었다.


     20065

    사단법인 전라북도향토문화연구회 회장 이치백








    이치전유허지(梨峙戰遺墟址) 이치대첩유허비(梨峙大捷遺墟)





    이치(梨峙,배티재)


    이치(배티재)는 전북 완주군 운주면과 충남 금산군 진산면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349m의 고개로,

    선조 25(1592) 임진왜란 때 광주목사 권율과 동복현감 황진이 관군 1,500명과 함께

    적장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가 이끄는 부대를 격퇴함으로써 임진왜란의 첫 승리를 장식한 전적지이다.

    이치전투는 이순신의 한산도대첩, 권율의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대첩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어 해질 무렵까지 계속된 치열한 전투에서 우리보다 우세한 적을 대항하여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장수들의 성실한 진두 지휘와 향토병들의 불굴의 투지, 험한 지세를 이용한 철저한 대비, 차질없이 진행된 군수품 보급에 있었다.

    이치전투는 거의 같은 시기에 벌어진 웅치전투와 더불어 왜적의 기세를 꺾어 전라도 땅을 침범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정유재란(1597) 때까지 7년 동안 군량 보급과 병력 보충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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