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천주교 하우현성당(天主敎 下牛峴聖堂)
    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19. 1. 6. 04:30

    천주교 하우현성당(天主敎 下牛峴聖堂)

     


    천주교 하우현성당(天主敎 下牛峴聖堂)


    청계산(淸溪山)과 광교산맥(光敎山脈)을 잇는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는 하우현(속칭 하우고개)

    천주교 교우들이 옹기종기 모여 농업과 축산업으로 살아가는 자연 부락으로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작은 본당이다.

    서울에서 약 24km, 안양시에서 16km 떨어져 있는 하우현은 옛날 광주부 의곡면(廣州府 儀谷面)에 속해 있었고,

    교통이 발달되지 않았던 그때에는 인천 제물포(仁川 濟物浦), 이천여주 이천(利川), 여주(麗州)를 잇는

    간선로(幹線路)가 통과하고 있었으므로 동양원(東陽院)이라는 역원(驛院)이 있던 곳이다.

    하우현 일대에 언제부터 교우들이 모여들어 살게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이 지방에 청계산과 광교산 등 높은 산들이 있고 거기에 형성된 자연의 계곡과 울창한 수목이 박해를 피해 살 길을 찾던

    천주교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피난처였음에 비추어 어느 사이엔가 교우촌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교우들이 때로는 땅을 파고 토굴 속으로 살던 곳이었다고 하여 '토굴리'라고도 부른다.

    그러기에 이 지방에는 신유년(辛酉年) 때와 병오년(丙午年) 때 이미 순교자가 배출되었으나

    신유박해 때에 의일(義一), 점마을(현 학의리)에 살던 한덕운(韓德運, 토마스)이 광주(廣州)에서 체포되어

    남한산성에서 순교한 사실이 있고, 그후, 하우현 마을에 살던 김준원(金俊遠, 아니체도)

    1845(병오년) 9월에 광주(廣州)에서 체포되고, 그해 12월에 남한산성에서 치명하였다.

    성 서루도비코 볼리외 신부는 1866(丙寅年) 묘루니 산골 교우 집에서 조선말 공부를 하여

    교우들에게 성사도 주고, 교리도 가르치며 전교지 파견을 기다리던 중 병인년 박해(군란)가 일어나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교우들의 안전을 위해

    자신은 험한 산중(청계산 중턱)에 있는 천연 동굴을 찾아가서 은신하고 있었는데,

    그의 식부(食夫) 장제철의 밀고로 그 둔토리 굴아위 동굴에서 그 해 227(1866)에 체포되셨고,

    여기서 약 4km 떨어져 있는 손골에 머물러 있던 성 김도리(St Petrus Dorie)신부님도 같은 날 체포되어

    함께 서울로 압송되어 동년 37일에 새남터에서 참수 치명하였다.

    서 신부는 1865527일 조선에 도착했을 때 나이 24세였는데,

    이 젊은 순교자는 조선에서 전교하며 살고 있던 선교사 12명 중에서 제일 나이가 적은 신부였다.

    또한 당시 교우들의 생활상 (옹기구이, 화전, 나무, 보리와 열매 등으로 연명하는 등)으로 미루어 볼 때,

    하우현 지방에서의 집거(集居)하던 생활 상황을 쉽게 알 수 있다.

    러므로 하우현은 1801(신유박해) 이전부터 교우들이 살아왔음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리하여 하우현은 이미 개화 초기, 한일 수호조약(1876)으로 종교 자유가 허락되고

    103년간의 무시무시한 군란시대가 끝나자 교우들은 각기 자기들의 옛 고장으로 돌아가고

    혹은 남은 이들이 이곳 하우현에 정착하여 현재도 그 후손들이 교우촌을 이루며 살고 있는 곳이다.


    하우현성당 미사시간

    주일 () 10:30(교중), 16:00

    평일 () 미사 없음, (, , , , ) 11:00


    경기도 의왕시 원터아래길 81-6 (청계동) 전화 031-426-8921

     







    하우현성당 사제관(下牛峴聖堂 司祭館) - 경기도 기념물 제176

     

    청계산과 광교산맥을 잇는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는 하우현(下牛峴)성당은

    19세기 초반 천주교의 피난처로 교우촌이 형성되었다가 18945월 왕림본당 2대 신부인 알릭스 신부와

    하우현 교유들이 모금한 1,500냥으로 초가 목조 강당 10칸이 건축되었으며,

    1900년에 왕림본당에서 분리되어 독립한 하우현은 1965년 현재의 성당으로 신축되었다.

    현재 200여명의 신자수로 작은 본소에 불과하지만 본당 역사 100주년이 넘은 깊은 역사를 가진 성당이다.

    1906년 신축한 하우현성당 사제관은 몸체가 석조로 되었고 지붕은 골기와 삼각 지붕형태의 팔작지붕으로

    20세기 초반에 지어진 한불절충식의 보기 드문 건축 양식이며, 평면 및 구조, 의장 등이 갖는 건축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현재의 사제관은 2005년 보수작업으로 새로이 단청한 것이며, 경기도 기념물 제176호로 지정되었다.




    성인 서루도비꼬 몰리외(SAINT LOUIS BEAULIEU) 신부 기념비









    십자가의 길 14처














    예수, 마리아, 요셉 성가정상






    하우현 Cafe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