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헌공 김구 묘역(忠憲公 金構 墓域)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19. 1. 24. 18:34
충헌공 김구 묘역(忠憲公 金構 墓域)
조선 숙종 때 우의정을 지낸 김구(1649~1704)의 묘역이다.
1682년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사헌부(司憲府), 사간원(司諫院)에 재직하면서 많은 시국 상소를 올렸다.
노산군의 복위를 적극적으로 주장하여 단종으로 복위시켰다. 1703년 우의정이 되고 이듬해 어머니 상을 돌보다 병사하였다.
묘는 원형봉토분에 사대석(莎臺石 : 묘를 보호하기 위해 병풍석 대신 둘러 세운 돌)을 둘렀고 봉분 옆에 묘표를 세웠다.
혼유석, 상석, 향로석을 봉분 앞에 놓고 망주석 1쌍과 석양(石羊) 1쌍을 아래에 배치하였다.
18세기 중반부터 문인석 대신 석양을 두었는데, 이 묘도 새로운 유행을 따랐다.
묘 입구의 신도비는 1743년에 건립되었다.
비문은 영의정 이의현(李宜顯)이 짓고, 글씨는 김구의 둘째 사위로 명필로 유명한 서명균(徐命均)이 썼다.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 424, 몽촌토성 내
충헌공 김구 신도비(忠憲公 金構 神道碑)
총 높이 406㎝, 비신 높이 274㎝, 너비 102㎝, 두께 51㎝. 1743년(영조 19) 건립되었다.
화강암으로 만든 네모 받침돌 위에 대리석제 비신(碑身)을 세우고, 그 위에 화강암으로 첨석(檐石: 처맛돌)을 얹었다.
받침돌에는 조식(彫飾)이 없으나 첨석에는 기왓골과 서까래 모양을 새기고 네 귀에 봉황을 새겼으며,
용마루에는 쌍룡을 새기는 등 조식이 화려하다. 조선 후기의 석비 가운데 우수한 예이다.
비문은 각각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을 각각 지낸 이의현(李宜顯)·서명균(徐命均)·유척기(兪拓基)가 짓고 쓰고 전(篆)하였다.
서명균은 김구의 둘째 사위로 당시 비명 글씨로 유명했고 두전(頭篆)을 쓴 유척기도 전서로 유명했다.
비문에는 숙종 연간에 활약했던 김구의 행적과 청렴하고 단정했던 그의 성품이 기술되어 있다.
말미에는 자손들의 약력과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
'국내 나들이 > 능, 원, 묘(陵 園 墓)'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인 최경환(프란치스코) 묘소 (0) 2019.05.20 인릉(仁陵), 조선 제23대 순조와 순원황후의 능 - 사적 제194호 (0) 2019.01.25 헌릉(獻陵) - 조선 제3대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 (0) 2019.01.24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 정보 (0) 2019.01.20 왕산 허위선생 묘(旺山 許蔿先生 墓) (0) 2018.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