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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인 최경환(프란치스코) 묘소
    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19. 5. 20. 05:17

    성인(聖人) 최경환(崔京煥, 프란치스코) 묘소



    1839912일 순교 후, 성인의 시신은 여러 번의 장소를 옮기는 어려움 끝에

    성인의 둘째 형인 최영겸씨 부자가 이곳 수리산에 안장하였다.

    198456일 시성식에 즈음하여 성인의 묘역에 기념비가 세워졌다.  

    성인의 시신은 비록 소박한 묘소에 잠들어 있지만 그분의 뜨거운 하느님 사랑과 순교정신은

    순례자들의 심금을 울리며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병목안로 408 (안양9) 천주교 수리산성지






    聖人 慶州崔公京煥 프란치스코(永訥)之墓

    配貞夫人殉敎者慶州李氏聖禮마리아


    성인(聖人) 최영눌(崔永訥, 京煥 프란치스코)略歷

    영눌(永訥)은 경주 최씨 한림학사(翰林學士) 致遠(字 孤雲)30대 후예(後裔)이요

    조선국 시절(朝鮮國 時節)에 평정공신(平定功臣) 이조판서(吏曹判書) 최확(崔確)10代孫이며

    서기(西紀) 1787(丁未)정종대왕시(正宗大王時) 입교(入敎)한 한일(漢馹)의 손자(孫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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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지(出生地) : 忠南 洪州郡 다락골

    탄생일(誕生日) : 18051015

    수리산 입주(修理山 入住) : 18377

    전교회장 피임(傳敎會長 被任) : 1839년 봄()

    피체(被逮, 체포일) : 1839731

    옥사순교(獄舍 殉敎) : 1839912

    시복(諡福, 로마) : 192575

    유해이전(遺骸移轉) : 1929618

    시성(諡聖, 한국 서울) : 198456

    성인 기념비 건립(聖人 紀念碑 建立) : 1984415일   










    천주경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비신자여, 네 이름의 거룩하심이 나타나며,

    네 나라이 임하시며, 네 거룩하신 뜻이 하늘에서 이룸 같이, 땅에서 또한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 죄를 면하여 주심을,

    우리가 우리에게 득죄한 자를 면하여 줌 같이 하시고,

    우리를 유감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또한 우리를 흉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이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주소서.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로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며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펴시도록 빌어주소서.
    용감하신 순교자들이여, 특별히 청하오니
        우리 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당신들은 이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사시다가
        목숨까지 바치셨사오니
    전능하신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교회를 이땅에서 날로 자라게 하시며
        사제를 많이 나게 하시고
    신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냉담자들은 다시 열심해지며
        갈린 형제들은 같은 믿음으로 하나 되고
        비신자들은 참신앙으로 하느님을 알아
        천지의 창조주
        인류의 구세주를 찾아오게 하소서.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빌어주시어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얻어주소서.
    또한 저희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믿어 증언하며
        비록 피는 흘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은총을 입어 선종하게 하소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최경환(崔京煥 프란치스코, 1804~1839) 성인의 생애


    일명 영환(永煥), 영눌(永訥), 치운이라 한다.

    한국의 두 번째 방인사제인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1821-1861)의 아버지이다.

    충청도 홍주(洪州) 땅 누곡(樓谷, 지금의 충남 청양군 화성면 농암리의 다락골)에서

    부친 최인주(崔仁住)와 모친 경주이씨(慶州李氏)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집안이 원래 교회창설 시대 때부터 천주교를 믿어 온 집안이라 어려서부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고,

    성장해서 '내포(內浦)지방의 사도' 이존창(李尊昌)의 후손인 이성례(李聖禮, 마리아)와 혼인한 뒤,

    가족들과 상의하여 교우들이 많이 살고 있는 서울의 벙거지골(笠洞)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박해와 외교인들의 탄압 때문에 가산을 버리고 서울을 떠나 강원도 금성(金星), 경기도 부평(富平)을 거쳐

    과천(果川)의 수리산(현재의 안양시 만안구 안양9동 수리산)에 정착하였다.

    여기에서 회장으로 신자들과 교우촌을 돌보며 오직 신앙생활에만 전념하였다.

    그리고 1836년에 큰 아들 최양업(토마스)를 모방(Maubant, ) 신부에게 신학생으로 맡겨 마카오로 유학보냈다.

    1839년에 기해박해(己亥迫害)가 일어나자 순교자들의 유해를 거두어 안장하고 불안해 하던 교우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돌보던 중

    731일 서울에서 내려온 포졸들에게 마을교우와 일가 등 40여명의 교우와 함께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포청에서 하루 걸러 형벌과 고문을 당하며 태장 340, 곤장 110도를 맞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잃지 않았다.

    모진 형벌로 전신이 헤어진 프란치스코는 말하기를 내 평생 소원이 칼 아래서 주를 증거하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죽는 것이 주님의 명이니, 뜻을 이루지는 못하게 되었다.” 하고는 거룩한 영혼을 천주께 바쳤다.

    911일에 최후로 곤장 25도를 맞고 그 이튿날인 912일 포청옥에서 장렬히 순교하였다.

    192575일 교황 성비오 10(Pius X)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Joannes Paulus II)에 의해

    198456일에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랐다.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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