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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산 안창호선생 묘소(島山 安昌浩先生 墓所)
    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19. 7. 10. 04:30

    도산 안창호선생 묘소(島山 安昌浩先生 墓所)





    안창호선생 이혜련여사 묘









    도산 선생 가족


    안창호 1878~1938

    부인 이혜련 1884~1969

    큰아들 안필립 1905~1978

    둘째아들 안필선 1912~2001

    큰딸 안수산 1915~2015

    둘째딸 안수라 1917~2016

    셋째아들 안필영(랄프 안, Ralph Ahn) 1926~




    한반도


    동해에 돌출한 나의 한반도야 너는 나의 조상 나라이니

    나의 사랑함이 오직 너 뿐일세 한반도야

    은택이 깊구나 나의 한반도야 내 선조와 모든 민족들이

    너를 의탁하여 성장하였구나 한반도야

    산천이 수려한 나의 한반도야 물은 맑고 산이 웅장한데

    너를 향한 충성 더욱 깊어진다 한반도야

    역사가 오래된 나의 한반도야 선조들의 유적을 볼 때에

    너를 사모함이 더욱 깊어진다 한반도야

    일월같이 빛난 나의 한반도야 둥근 달이 반공에 밝은 때

    너를 생각함이 더욱 간절하다 한반도야

    아름답고 귀한 나의 한반도야 너는 나의 사랑하는 바니

    나의 피를 뿌려 너를 빛내고저 한반도야


    1907년 안창호선생이 지은 노래가사  




    안창호 서거일 및 장례일에 대한 전보(1938.3.11.)


    일본 당국이 알리스 차(Alice Cha, 이혜련 삼촌 이암의 장녀)에게 보낸 안창호 서거일과 장례에 대한 전보이다.




    흥사단 주최 서거 1주기 추모식 순서지(1939)와 서거 50주기 추모식(1988.3.10.)  




    도산 안창호선생 이장식장

    이장식 중 정일권 국회의장이 식사(式辭)를 하고 있다.




    도산(島山) 안창호 선생(安昌浩 先生)의 생애(生涯) 


    개항 직후 평양 근교에서 태어난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 선생은

    19세의 나이로 독립협회에 참여한 때부터 일생을 오로지 근대화운동과 독립운동에 바치셨다.

    인재양성과 경제번영을 민족발전의 기초로 여기신 선생은 일찍부터 교육과 산업에 힘을 기울이셨으니

    무실역행(務實力行)의 정신을 바탕으로 대성학교, 북미실업주식회사, 흥사단 등 여러 기관을 만들고 지도하셨다.

    아울러 구국운동의 일선에 앞장 서셨던 선생은 신민회, 대한인국민회, 대한민국임시정부, 한국독립당 등을 이끄시는 한편,

    대공주의(大公主義)를 창도하여 지도이념을 체계화하고 지도자들의 대동단결을 강조하셨다.

    중국 상해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히신 선생은 국내에 끌려와 두 차례의 옥살이 끝에 만 60세를 일기로 서거하셨다.

    처음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가 1973년 부인 이혜련(李惠練) 여사와 함께 이곳 도산공원에 옮겨져 잠들어 계시다.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강남구청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북33(신사동) 도산공원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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