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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복 가족묘(李承福 家族墓)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19. 9. 15. 04:30
이승복 가족묘(李承福 家族墓)
이승복의 묘
아버지 이석우의 묘, 어머니 주대하의 묘, 이승복의 묘, 남동생 승수의 묘, 여동생 승자의 묘
이승복 기념비(李承福 記念碑)
여기 공산당 만행에 항거하여 자유 대한에 의로운 목숨을 바친 이승복 어린이가 잘들어 있다.
승복군은 1959년 12월 9일 평창군 진부면 도사리에서 이석우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진부면 노동리의 상대곡 마을에서 자랐다.
비록 화전민의 어려운 생활 속에서나마 어버이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면서 씩씩하게 자라 1967년 3월 속사초등학교 계방분교장에 입학하였다.
시오리길을 걸어 다니면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학교에서는 모범생이고 친구 간에는 우애가 두터웠다.
그가 2학년이던 1968년 12월 9일이었다.
당시 울진 삼척지구에 침투하였던 북괴의 무장공비가 우리 국군에 쫓기어 달아나다가 승복군의 집을 습격하였다.
공비들은 승복군의 가족을 모아놓고 공산당 선전을 하면서 도와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이승복군은 분연히 일어나서 선생님에게서 들은 공산당의 만행을 꾸짖으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다.
이에 놀란 공비들은 승복군의 입을 찢고 돌로 쳐서 죽이고 마침내는 어머니와 두 어린동생마저도 학살하였다.
그날이 바로 그의 생일날이었다.
이렇게 원통하게 숨져간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여기 그 일가와 함께 쉴 자리를 마련하였다.
겨레여! 이 어린 소년의 외침과 얼을 이어받아 승복군의 한이요 민족의 소원인 조국의 평화 통일을 하루 속히 이루도록 하자.
1982년 10월 25일
이승복군은 이제 편히 눈을 감으라
대법원은 1968년 이승복군이 무장 共匪(공비)들에게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가
입이 찢겨 참혹하게 살해된 사건이 역사적 진실임을 확인했다.
대법원은 24일 이승복 사건에 대한 조선일보 보도가 ‘作文(작문)’이라고 거짓 주장해 온
김주언 前(전)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에게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김씨는 공무원법에 따라 문화부 산하 신문발전위 사무총장에서 免職(면직)됐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이승복 사건에 ‘反共(반공) 조작극’이라는 색깔을 덧칠해 온
‘反(반) 대한민국 세력’의 선전선동에 사법부가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1992년 김종배씨 등이 이승복 사건 조작설을 내놓은 이래
우리 사회엔 ‘이승복은 군사정권이 만들어낸 架空(가공) 인물’이라는 그릇된 생각이 번졌다.
김씨 등은 “조선일보 기자는 현장에 가지도 않았다”며 당시 현장을 발로 뒤쫓아 가며 썼던
조선일보 기사를 널빤지에 붙여 전국 이곳저곳을 옮겨니며 ‘誤報(오보) 전시회’를 하기까지 했다.
대한민국 역사를 거꾸로 뒤집겠다는 의도를 가진 세력들은 재판을 통해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이승복군의 이야기가 사실로 立證(입증)된 뒤로도 쉽게 단념하지 않았다.
2년 전 MBC `신강균의 사실은…’이라는 프로그램을 비롯해 방송과 인터넷은 물론이고
전교조 교사들을 중심으로 교실에서까지 재생산, 流布(유포)됐다.
이들의 이런 행패로 해서 그간 유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사건 현장에서 무장공비에게 중상을 입고 겨우 목숨을 건진 뒤 현장을 증언했던 이승복군의 형은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이승복군 이야기는 슬며시 교과서에서 사라졌고 강원도 평창 이승복기념관은 관람객이 뚝 떨어졌다.
그나마 관람 온 학생들이 “이승복은 가짜 아니냐”고 묻기 일쑤였다.
이승복군이 “콩사탕이 싫어요”라고 했다가 죽었다는 참담한 말까지 지어낸 세력들의 집요한 工作(공작)의 결과다.
이승복군은 그렇게 무참하게 죽음을 당할 때 아홉 살 소년이었다.
우리 사회의 ‘反(반) 대한민국 세력’은 그 어린 주검에 수없이 침을 뱉어 온 것이다.
어린 넋의 잠이 편안했을 리가 없다. 이승복 사건 조작설에 조선일보를 끌어들여 이른바
‘언론개혁’의 빌미로 써먹었던 장본인들은 그 공적을 인정받아 정부관련 언론단체 要職(요직)을 돌아가며 차지해 왔다.
그러나 진실은 결국 이겼다. 이승복군이 이긴 것이다. 보름 뒤면 38번째 忌日(기일)을 맞는 이승복군,
살아 있었다면 47세 壯年(장년)이 됐을 이승복군, 편히 잠들라.
2006년 11월 25일 조선일보 社說(사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상(李承福像)
이승복(李承福, 1959. 12. 9 ~1968. 12. 9)
이승복 어린이 사건은 1968년 10월 3차례에 걸쳐서 울진, 삼척 지구 해상으로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침투하게 되었는데
북한의 무장간첩 중 5명이 추격을 피해서 북으로 도주하는 길에
12월 9일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노동리에 있는 이승복의 집에 침투하게 되었다.
당시 무장간첩들은 이승복에게 질문을 했다.
남조선이 좋으냐 북조선이 좋으냐라고 질문을 하자 이승복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답을 했고
분노한 공비들은 이승복의 입을 찢어 죽였고 이승복의 시신에는 오른쪽 입술 끝부터 귀밑까지 찢어진 상처가 있으며
가슴에 큰 상처가 있었다.
무장간첩들한테 그대로 끔찍한 살인을 당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그의 생일이었다.
일가족 4명 또한 무자비하게 죽음을 당했고 36군데를 찔린 이승복의 형 이학관은 거름더미에서 발견되었고
아버지와 할머니는 칼에 찔렸지만 도주하여 살아났다.
이승복을 포함한 4명의 일가족을 무자비하게 살해된 사건은 '공산당이 싫어요' 라는 발언이 더욱 기사회되어 특종 보도를 하게 되었다.
이승복의 할머니와 아버지는 사건 이후로 정신분열증(조현병)에 걸리게 되었다.
사건 이후 이승복 어린이는 반공의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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