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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산 땅굴역사전시관
    국내 나들이/전시관(展示館) 2019. 3. 12. 05:16

    궁산 땅굴역사전시관


    궁산 땅굴은?

    궁산 땅굴은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 강점기에 굴착된 곳으로, 무기나 탄약 등 군수물자를 저장하거나

    김포비행장을 감시하고, 공습 때에는 부대 본부로 사용하기 위한 곳이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을 건설하기 위해 인근 지역 주민을 보국대로 강제 동원하였다.

    일본의 패전으로 해방을 맞이하면서 굴착공사 또한 중지됐지만, 이후 이곳은 여러가지 용도로 사용되었다.

    2008년 인근 주민 다수의 제보로 지하 땅굴을 발견하여 체험 전시관을 조성하기 위해 공사를 진행하던 중

    일부 구간에서 대형 낙석이 발생하여 진입 방지장치를 마련하고 땅굴을 폐쇄한 채로 관리하다가

    2018년 출입구에서 땅굴 내부를 조감할 수 있는 전시관을 조성하였다.

    이는 역사성 교육성 및 지역 정체성을 융합한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서울특별시 강서구 마곡동












    궁산 땅굴은...


    2008년 가양동 235번지 궁산(해발 70m) 기슭 지하 3m 지점에서 발견된 길이 68m, 높이 2.7m, 2.2m 규모의 땅굴이며,

    일제강점기인 1940년 대에 군사시설 목적으로 굴착된 것이다.

    한강변에 맞닿아 있는 궁산 일대는 일제시대 군사 비행장이 있었던 김포공항과 3.1km 정도 떨어져 있다.






    태평양전쟁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아시아 전체를 식민지화하려는 계획 아래 중일전쟁을 일으키는 한편,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도차이나 반도로 침략의 칼끝을 겨누었다.

    이에 반발한 연합군에 대한 대응책으로 1941127일 하와이에 있는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면서

    전선을 태평양으로 확대시켰고 무서운 기세로 동남아시아 지역을 점령해 나갔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치열한 전투 끝에 1945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피폭 4일만에 234천여 명에 이르는 피해자를 남기고 일본은 무조건 항복 선언으로 전쟁이 끝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35


    19108월 국권 피탈로 대한제국이 멸망한 이후부터 1945815일 광복에 이르는 35년동안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통치했다.

    우리의 국권을 강탈해 간 일제는 조선총독부를 설치한 뒤, 행정 입법 사법 및 군대까지 손에 쥐고 우리 민족을 탄압했다.

    이 시기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의 숫자가 780만 명에 이르는데,

    이는 조선총독부 총계연보에서 밝힌 1942년 총 인구가 2,630만 명 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여러 분야에서 이루어진 강제 동원은 일제강점기 35년이라는 비극적인 역사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궁산은?


    궁산 정상에 자리한 양천 고성은 한강을 중심으로 각축을 벌이던 삼국시대부터 육로와 수로를 확보하기 위한 중요 군사 거점이었다.

    백제는 서해에서 한강을 거슬러 오는 침입을 경계하고 북방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 요충지로 삼았다.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은 이곳 양천산성에 진을 치고 전쟁의 판세를 가늠했으며,

    행주산성으로 군대를 이동시킨 뒤, 행주대첩이라는 빛나는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이곳 궁산의 양천산성은 오랜 세월동안 행주산성, 오두산성과 더불어

    한강 하구를 침입하는 적을 관측하고 방어하는 요충지로 기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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