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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열린 문화공간 후소)
    국내 나들이/전시관(展示館) 2019. 2. 19. 04:30

    오주석(吳柱錫)이 사랑한 우리 그림(열린 문화공간 後素)



    열린 문화공간 後素





    남창동 열린 문화공간 개관전시,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 (2018. 9. 5 ~ 2019. 7.31)




    전시를 개최하며


    시민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남창동 열린 문화공간의 개관을 기념하여

    수원시에서는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전시를 마련하였다.

    후소(後素) 오주석(1956~2005)은 수원남창초등학교 출신 미술사학자로

    우리 문화유산과 전통미술의 대중화에 힘썼던 인물이다.

    그가 특히 애정을 가지고 연구했던 작품들은 주로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그림이다.

    오주석은 오주석의 한국의 특강을 비롯한 저서에서 옛 그림 감상법을 대중에게 알기 쉽게 소개하였다.

    우리 그림에 대한 그의 생동감 넘치는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화가의 의도와 옛 그림의 멋을 느낄 수 있다.




    옛 그림 감상의 원칙


    오주석은 옛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을 저서 및 강의을 통해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 사람의 마음으로 느낀다. 그림은 천천히 봐야 한다."

    "그림의 대각선 길이 1~1.5배 거리에서 천천히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쓰다듬듯이 바라봐야 한다.


    -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중에서 -




    에필로그


    옛 그림은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하나의 생명체이다.

    그것은 학문의 대상이기 전에 넋을 놓고 바라보게 하는 예술품이다.

    옛 그림은 학문적으로 대할 때에는 까다로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한 인간의 혼이 담긴 살아 있는 존재로 대할 때

    우리의 삶을 위로하고 기름지게 하며 궁극적으로는 우리 생명의 의미를 고양시킨다.”


    -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중에서 -




    영통동구도(靈通洞口圖)


    강세황(姜世晃, 1713~1791년) 1757년경, 종이에 수묵담채, 32.9cm × 53.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표암(豹菴) 강세황의 '송도기행첩(松都紀行帖)' 중 영통동 입구를 그린 장면이다.

    1757년 송도유수인 사수(士受) 오수채(吳遂采)의 초청으로 송도 일대를 여행하고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화폭은 언뜻 위대한 자연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듯하지만 보는 이는 자꾸만 오른편 아래 쪼그맣게 그려진 주인공에 시선이 끌린다.

    빈약한 나귀에 올라탄 저 퉁퉁한 선비를 보라.

    주위 경관에 넋이 나갔는지 말구종 아이는 아예 제쳐 놓고 저 혼자 좋아라고 터벅터벅 산길을 간다.

    경치는 경치대로 대단했어도 나는 여전히 나릴뿐이라는 의식이 슴슴하다."



    금강전도(金剛全圖)


    정선(鄭敾, 1676~1759년), 173년, 종이에 수묵담채, 130.7cm × 94.1cm, 삼성미술관 Leeum, 국보 제217호


    겸재 정선은 1711년과 그 다음해의 금강산 여행 이후 여러 차례 금강산을 그렸다.

    그중 널리 알려진 이 작품은 금강산의 수많은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도록 위에서 내려다 본 시점으로 구도를 잡고,

    뾰족한 돌산과 나무숲이 우거진 흙산을 뚜렷하게 대비시켜 표현하였다.


    "장엄한 금강산의 전경을 그린 이 작품은 그 자체로 우리 국토를 상징한다.

    정선은 우선 주역(周易)의 대가답게 금강산 뭇 봉우리를 원으로 묶어 버렸다.

    그리고 반씩 쪼개어 태극(太極)을 빚어냈다. 그 중심으로부터 남북으로 길게 S자로 휘어진 선이 바로 태극인 것이다.

    음양 자체는 원래 상반되는 것이지만 태극으로 맞불리면 서로가 서로를 낳고 의지하며 조화를 이룬다."




    소림명월도(疏林明月圖)


    김홍도(金弘道, 1745~1806년 이후), 1796, 종이에 수묵담채, 26.7cm × 31.6cm

    삼성미술관 리움(Leeum), 보물 제782

     

    병진년화첩(丙辰年畵帖)’ 소림명월도는 김홍도가 52세 되던 해 그린 작품이다.

    앙상한 나무 사이로 보름달이 보이는데 얽히고 설킨 나뭇가지들을 수지법(樹枝法)으로 묘사하였다.

    나무 뒤편의 보름달을 과감하게 화면 중앙에서 살짝 아래에 배치함으로써 가을 기운을 남김없이 드러냈다.


    차고 맑은 가을 하늘, 성근 숲 뒤로 온 누리를 환하게 비추이며 둥두렷이 보름달이 뜬다.

    높은 가지부터 잎이 지고 있으나 아래쪽 잔가지와 이파리는 아직 지난 여름의 여운을 간직하고 있다.”


    *수지법- 나뭇가지를 게 발톱처럼 그리는 미술 수법의 하나. 중국 송대의 이성이 처음 사용했다  




    월만수만도(月滿水滿圖)


    김홍도(金弘道, 1745~1806년 이후), 1800, 비단에 수묵담채, 125cm × 40.5cm, 삼성미술관 리움(Leeum)

     

    주자(朱子) 서거 후 600년 되는 해 정초를 맞아 단원은 어명을 받들어 주부자시의도(朱夫子詩意圖)’ 8폭 병풍을 그려 올렸다.

    주자의 시 여덟 수에 담긴 뜻을 표현한 그림이것은 성리학의 정통을 자부했던 나라.

    조선의 국가적인 사업이기도 했지만 일단은 국왕 개인에게 바쳐진 작품이다.

    그 가운데 제4폭은 특히 만천명월주인옹이라는 호를 가지고 있던 정조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정조는 그 자신이 만 개의 자잘한 실개울에까지 고루 그 모습을 비추는 밝은 달과 같은 존재가 되길 원했다.

    그렇게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빠짐없이 임금의 진실한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서 우선 그 자신부터 성인(聖人)이 되고자 했다.“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김홍도(金弘道, 17451806년 이후), 18세기 후반, 비단에 채색, 90.4cm x 43.8cm, 삼성미술관 리움(Leeum)


    "소나무 아래 호랑이가 갑자기 무언가를 의식한 듯 정면을 향했다.

    순간 정지한 자세에서 긴장으로 휘어져 올라간 허리의 정점은 정확히 화폭의 정중앙을 눌렀다.

    가마솥 같은 대가리를 위압적으로 내리깔고 앞발은 천근 같은 무게로 엇걸었는데,

    허리와 뒷다리 쪽에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서 금방이라도 보는 이의 머리 위로 펄쩍 뛰어 달려들 것만 같다.

    그러나 당당하고 의젓한 몸짓에서 우러나오는 위엄과 침착성이 굵고 긴 꼬리로 여유롭게 이어지면서 부드럽게 하늘을 향해 굽이친다."




    송계한담도(松溪閑談圖)


    이인문(李寅文, 1745~1824년 이후), 19세기 초반, 종이에 수묵담채, 24.3cm× 33.6cm, 국립중앙박물관

     

    "깍아지른 석벽 앞 평평한 냇가에 모처럼 세 벗이 모였다.

    두 사람은 앉고 한 사람은 등을 보인 채 옆으로 기댔는데 낙락장송 성근 가지 사이로 솔향기를 실은 바람이 불어온다.

    계곡의 턱진 시내에서도 냇바위에 부딪쳐 나는 차가운 물소리가

    콸콸하고 쏟아져 내려 듣는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쓸어 준다.

    풀벌레 소리 중에 이따금씩 쓰르람쓰르람 하는 쓰르라미 소리가 반갑다

    그러나 무엇보다 미쁘고 정다운 소리는 바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펼치는 사랑하는 벗들의 음성이다."




    씨름(相撲)


    김홍도(金弘道, 1745~1806년 이후), 18세기 후반, 종이에 수묵담채, 33.8cm×* 27.2cm,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527

     

    "씨름판이 벌어졌다. 흥미진진한 씨름판, 구경꾼들은 한복판 씨름꾼을 에워싸고 빙 둘러 앉았다.

    누가 이길까? 앞쪽 장사의 들배지기가 제대로 먹혔으니 앞 사람이 승자다.

    기술은 왼편으로 걸었지만 안 넘어가려고 반대편으로 용을 쓰나 상대는 순간 그쪽으로 낚아챈다.

    그런데 구경꾼은 모두 위에서 내려다본 시각으로 그렸고 씨름꾼만 아래서 치켜다본 모습이다.

    화가는 구경꾼들이 앉아서 바라본 시각을  그대로 옮겨 왔다.

    그래서 그림 보는 이가 씨름판에 끼어든 듯 현장감이 살아난다."




    야묘도추도(野猫盜雛圖)


    김득신(金得臣, 1754~1822), 18세기 말~19세기 초, 종이에 수묵담채, 22.4cm× 27cm,

    간송미술문화재단. 보물 제1987.

     

    한가로운 시골집의 고요와 평화를 깨는 일대사건이 벌어졌다.

    검정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통통하게 살이 오른 노란 병아리를 그만 잽싸게 채서 달아난 것이다.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훔치는 그림인 야모도추도의 매력은

    이렇듯 난리법석인 흥미로운 일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해서 장장 200년 후 현대인에게까지 그 실감을 전해 준 데 있다.

    김득신은 맺힌 데 없이 쓱쓱 그어댄 붓질로 생동감을 살렸다.

    특히 잔가지를 바같에서 안쪽으로 톡톡 쳐 넣어 봄날의 움트는 생명력을 시사한 솜씨가 김홍도와 어금버금하다.“




    해탐노화도(蟹貪蘆花圖)


    김홍도(金弘道, 1745~1806년 이후), 18세기 말~19세기 초, 종이에 수묵담채, 23.1cm×27.5cm, 간송미술문화재단

     

    게 두 마리가 갈대 꽃송이를 꼭 끌어안았다.

    한자로 갈대는 로()자인데 이것이 옛 중국 발음으로는 려()와 매우 비슷하다.

    려는 임금이 과거 급제자에게 나누어 주는 고기 음식을 뜻한다.

    게는 등에 딱딱한 껍질을 이고 사는 동물이니 그 딱지는 한자로 갑()이 된다

    이 갑은 천간(天干) 중의 첫 번째니까 바로 장원급제를 의미한다.

    이렇게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상서로운 상징을 지녔으므로

    게가 갈대꽃을 탐하는 그림 해탐노화도는 과거 시험을 앞둔 사람에게 그려 주기 마련이다.“ 




    황묘농접도(黃猫弄蝶圖)


    김홍도(金弘道, 1745~1806년 이후), 18세기 후반, 종이에 채색, 30.1cm×46.1cm, 간송미술문화재단

     

    고양이와 나비가 노는 그림은 생신 축하 선물이다.

    고양이와 나비를 바라보니 칠십 고개를 넘기고 팔순을 바라보는 노인께 드린 그림인 듯하다.

    왼편의 크고 작은돌은 두말 할 것 없이 장수의 상징이다.

    패랭이꽃은 석죽화(石竹花). ()은 축하한다는 축()자와 통하니 역시 돌처럼 장수하시기를 빈다는 뜻이다

    이 꽃은 분단장한 듯 고운 까닭에 청춘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니 전체 그림을 합쳐 읽으면 생신을 맞은 어르신께서는 부디 칠십 팔십 오래도록 청춘인 양 건강을 누리시고

    또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소서하는 축원이 된다.”




    모계영자도(母鷄領子圖)


    변상벽(卞相壁, 생몰년미상), 18세기, 비단에 채색, 100.9cm×50.0cm, 국립중앙박물관


    "양지바른 뜰락 큼직한 괴석 곁에 찔레꽃 향기로운 날,

    나비며 벌들 꽃 찾아 분주한데, 어진 암닭이 병아리 떼를 돌본다.

    자애로운 어미닭의 눈빛이 또로록 구르는가했더니 부리에 작은 곤충을 꼭 물었다.

    불쑥 솟은 괴석은 유난스레 거칠고 강렬한 흑백 대비로 장닭의 기상을 지녔다.

    하지만 그 기이한 형태는 첫눈에는 시선을 잡아당기지만,

    자세히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뒤로 슬그머니 물러나 어미닭의 따사로운 모정(母情)만 더욱 빛나게 한다."




    오주석 선생(吳柱錫 先生)의 서재(書齋)


    수원 출신 미술사학자 오주석은 엄정한 감식안과 화가의 일생을 고증하여 회화사의 저변을 넓히는데 힘썼다.

    그는 수원남창초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하였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호암미슬관. 간송미술관. 공동주체(탄신 250주년 기념 단원 김홍도 특별전)을 기획하여

    옛 그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 시켰다.

    또한 "오주석의 한국의 특강",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단원 김홍도" 등 많은 저서를 통해 우리 그림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그가 연구에 몰두하며 생전에 남긴 저서와 미술사 연구 자료가 201612월 수원시에 기증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수원시에서는 우리 옛 그림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확산시키기 위해 남창동 열린 문화공간에 "오주석의 서재"를 마련하였다.

     







    오주석 저서 목록





    오주석선생기념미술사자료실(吳柱錫先生紀念美術史資料室)














    이 곳은 남창동 옛 99칸 양성관 건물터가 있던 자리에 1977년 건물을 신축하여 백내과 원장께서 거주(1977~2018)하던 건물을

    수원시에서 매입하여 리모델링을 거쳐 '열린 문화공간 후소'를 조성하여 일반에 공개한 것이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행궁로 34-2 (남창동) 열린문화공간 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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