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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산 미황사(達摩山 美黃寺)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19. 4. 3. 18:28
달마산 미황사(達摩山 美黃寺)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이다.
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에 있는 절로서 749년(경덕왕 8) 의조(義照)가 창건하였다.
사적비에 따르면 749년 8월 한 적의 석선(石船)이 사자포 앞바다에 나타났는데,
의조가 제자 100여명과 함께 목욕재계하고 해변으로 나갔더니 배가 육지에 닿았다.
배에 오르니 금인(金人)이 노를 잡고 있고, 놓여 있는 금함(金函) 속에는 "화엄경", "법화경",
비로자나불, 문수보살, 보현보살, 40성중(聖衆), 53선지식(善知識), 16나한의 탱화 등이 있었다.
곧 하선시켜 임시로 봉안하였는데 그날 밤 꿈에 금인이 나타나 자신은 인도의 국왕이라며 "
금강산이 일만불(一萬佛)을 모실 만하다 하여 배에 싣고 갔더니,
이미 많은 사찰들이 들어서서 봉안할 곳을 찾지 못하여 되돌아가던 길에 여기가 연연토(因緣土)인 줄 알고 멈추었다.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모시면 국운과 함께 흥왕하리라." 하고는 사라졌다.
다음날 소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가다가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 일어난 곳에 통교사(通敎寺)를 청건하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다.
미황사라 한 것은 소의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웠다 하여 미(美) 자를 취하고 금인의 빛깔을 상징한 황(黃)자를 택한 것이라 한다.
이 창건설화는 <금강산 오십삼불설화>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1264~1294년 사이에 중국 남송(南宋)의 학자와 관리들이 이 절에 내왕하였다고 하므로
당시 미황사가 중국에까지 알려졌던 사찰임을 알 수 있다.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미황사길 164 (서정리) 대한불교조계종 달마산 미황사
미황사 대웅보전(美黃寺 大雄寶殿) - 보물 제947호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창건되었다.
사적비(1692년)에 따르면 서역 우전국왕의 인도로 경전과 불상이 가득한 배가 땅 끝에 도착하였는데,
의조화상과 향도(香徒, 불자) 100여명이 그 배를 맞이하여 지금의 자리에 절을 세웠다.
창건 이후 미황사는 조선 중기까지 12암자를 거느린 대찰의 모습을 갖추고 번성하였다.
그러나 정유재란(1597년)을 겪으며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어 1601년에 중창하였고, 2008년에 삼창하였다.
대웅보전은 미황사의 중심 전각이다.
한 가운데에는 석가모니불, 좌우에는 아미타불, 악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다.
1598년 중창하였고, 1660년, 1754년, 1982년, 2007년에 거듭 중수하였다.
내부의 대들보와 천장은 산스크리트어 문자와 천불도로 장엄되어 있는데
그 아름다움이 인도의 아잔타 석굴 벽화, 중국 둔황막고굴의 천불벽화에 비견되어지기도 한다.
미황사 응진당(美黃寺 應眞堂) - 보물 제1183호
미황사 뒤편에 병풍처럼 둘러 선 달마산은 그 빼어난 아름다움 때문에 남도의 금강산이라고도 불린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선을 전하고, 해동의 달마산에 늘 머물러 있다고 하여 달마산이라 이름지어졌다.
고려시대의 기록에 따르면 송나라의 높은 관리들이 찾아와 달마산을 찬탄하고 에경하였다고 전해진다.
응진당은 석가모니 부처니의 제자 가운데 신통력이 뛰어난 16분의 아라한들을 모신 전각이다.
응진(應眞)은 참다운 존재의 실상을 환히 깨닫고 해탈에 이른 이들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아라한(阿羅漢)'의 한자어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대웅전과 함께 여러 차례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부 벽면에는 수묵으로 그려진 나한벽화가 있는데 선(禪)의 경지를 보여주는 유려한 선(線)맛으로 이름이 높다.
명부전(冥府殿)
삼성각(三聖閣)
범종각(梵鐘閣)
만세루(萬歲樓)
나는 지팡이
남도 오백리 역사 숲길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산자락길
달마산, 달마고도 안내문
해남 달마산 미황사 일원 -명승 제59호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소백산맥이 두륜산을 지나 마지막으로 우뚝 솟은 산이 달마산(達摩山, 489m)이다.
해남군 현산면, 송지면, 북평면에 걸쳐있고 천년고찰 미황사와 어우러져 경관이 빼어나다. 산
이름은 경전(dhama,達摩)을 봉안한 산이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산 능선은 마치 공룡의 등줄기처럼 기암과 괴봉이 7km에 걸쳐 이어져 있다.
남도의 금강산으로 불리는데 손색이 없을 만큼 풍광이 수려하고 힘찬 기상과 장엄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미황사와 부도암, 도솔암 등의 12암자터와 32기의 스님등의 부도와 탑비들은 천년 역사의 흔적이다.
산의 모습은 남도의 금강산이라 칭하고, 진도와 관매도로 지는 아름다운 낙조는 남도 제1경이라 한다.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8년(749년) 인도 우전국의 왕이 불상과 경전을 보내와 의조화상(義照和尙)이 창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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