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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시대 천주교 교우촌, 한덕골성지(閑德洞聖地)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19. 5. 7. 04:30
박해시대 천주교 교우촌, 한덕골성지(閑德洞聖地)
피난 교우촌, 천주교 박해시대사적지 한덕골(一名 광파리골)
성 김대건 안드레아사제 석상
최양업 토마스사제 석상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상
쾌지나 칭칭 나네
인생은 나그네길 초로(草露)같은 인생이라
부르시면 가야하네 누가감히 피할손가
핑계로써 통할손가 권세로써 막을손가
인삼녹용 불로초도 죽음길엔 소용없네
공수래(空手來) 공수건데(空手去) 돈모았다 자랑마소
모아둔건 두고가고 적선한덕(積善德) 갖고가리
온천하를 다얻은들 영혼구령 못한다면
무슨소용 있으리까 영원형벌 어이하리
설마할때 부르시면 때는이미 늦었다오
살았을제 힘쓸일은 주님사랑 이웃사랑
이웃사랑 하기커녕 미워하고 헐뜯은몸
한번만더 용서하사 착히살게 하옵소서
쾌지나 칭칭 나네
김진용 마티아 작사
박해시대 천주교 교우촌, 한덕골성지(閑德洞聖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묵4리(龍仁市 處仁區 二東面 墨4里) 한덕골(閑德洞)은
박해시대 천주교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모여들어 교우촌(敎友村)을 이루고 살았던 사적지이다.
한국인 첫 사제인 성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1821-1846) 신부 가족들은 박해를 피해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솔뫼를 떠나 서울 청파를 거쳐 이곳으로 피난 와서,
처음에는 기거할 집이 없어 마을 근처 성애골(현재는 매몰되었음) 골짜기에 들어가 산(生) 나무와
산 나무에 칡으로 얽어매고 억새풀을 덮고서 살았었다는 눈물겨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원래 한덕골은 윗마을 광파리골과 아랫마을 한덕골을 합쳐서 부르던 이름이며, 그 중 교우촌은 윗마을인 광파리골이다.
족보에 의하면 성 김대건 신부의 조부 김택현(金澤鉉, 1766-1830)과
숙부 김제철(金濟哲, 1803-1835)의 묘가 한덕동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성 김대건 신부 가족들의 한덕골 피난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한국인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崔良業) 신부는 1849년 4월 15일 중국 상해(上海)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이듬해 귀국하여 이곳에 와서 중백부(仲伯父, 崔榮謙)와 어린 동생들을 눈물로 상봉하였다.
최 신부는 그 이후에도 가끔 이곳에 들러 성사를 주곤 하였다.
이곳 한덕골 출신 순교자로는 성 김대건 신부와 부친 김제준(金濟俊, 이냐시오, 1795-1839 성인을 비롯하여,
김 시몬(1870년 순교, 40세), 김 마리아(1866년 순교, 42세) 등이 있다.
신앙 때문에 고향과 가산 다 버리고 이곳에 피난 와서, 초근목피로 근근이 연명하며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신자 본분을 사셨던 신앙 선조들의 기도소리가 지금도 바람을 타고 은은히 들려오는 듯 하다.
2006년 9월 16일
성 김대건신부 순교 160주년 기념일에...
천주교 수원교구 천리요셉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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