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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예술의 대표적인 건축물, 성 소피아 성당(Aya Sofya)해외 나들이/터키(土耳其) 2019. 5. 8. 19:30
비잔티움 예술의 대표적인 건축물, 성 소피아 성당(Aya Sofya)
성 소피아 성당(성스러운 지혜)은 비잔티움(Byzantium)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Constantinople, 현재 이스탄불)에 있는
비잔티움 예술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니카의 반란(532년)으로 불타 버린 것을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 황제가 재건하였다.
그 후 916년간 그리스 정교의 총본산으로서의 역할을 했지만,
1453년 오스만 터키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후, 메흐메드 2세는 성 소피아를 모스크(이슬람 사원)로 개조하였다.
하지만 성당의 이름은 바꾸지 않고 놓아 두었다. 아마 소피아가 '지혜'를 뜻하는 추상명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성(聖)'은 그리스어로 '하기아' 혹은 '아기아' 이지만, 터키식으로는 '아야'로 발음된다.
그래서 성당은 그리스 이름 그대로 '아야 소피아(Aya Sofya)로 불렸다.
성 소피아 성당은 이렇게 시대를 거치면서 기독교의 성당과 모스크(이슬람 사원)으로서의 특징을 모두 지니게 된다.
성 소피아 성당은 황제의 대관식, 전승 기념 등의 행사에 사용되었으며,
정사각형의 벽 위에 원형의 돔을 올려놓는 비잔티움 건축 양식을 잘 보여 준다.
내부는 대리석 기둥과 모자이크, 금박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고, 중앙을 차지하는 돔은 지름이 31m나 된다.
네 개의 첨탑(미나레트, Minaret)과 내부의 아랍어 장식은 오스만 제국의 점령 이후에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면서 세워진 것이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비잔티움 건축의 대표작으로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건축물로 여겨지고 있다.
로마 제국의 건물이라고 하여, 기독교의 문화유산으로만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슬람교와도 관련이 크며, 500년 가까이 이슬람교 신자들의 예배당으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어떠한 종교 행위도 금지되고 있다.
이스탄불의 상징, 성 소피아 성당(성 소피아 박물관)
터키 현지어 명칭 : Hagia Sophia Museum / Church (Ayasofya)
성 소피아 성당은 마치 이스탄불에 산재해 있는 여느 모스크와 비슷해 보인다.
간혹 사람들은 마주보고 있는 블루모스크와 아주 흡사하다고 느낄 것이다.
성 소피아 성당은 현재 성 소피아 박물관이라는 정식 명칭을 가지고 있지만 이곳은 최초에는 성당이었다.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규모면에서도 세계 최대를 자랑하던 성 소피아 성당은
오늘날까지도 비잔틴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비잔틴 제국 시대에 그리스도교를 처음으로 공인하고 이 곳에 거하기로 정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새로운 도시의 큰 사원'으로
325년 창건했던 성 소피아 성당은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명에 따라 532년~537년에 다시 크게 개축되었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은 성 소피아 사원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이후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정복당한 이 곳은 회교사원, 즉 모스크로 그 용도가 바뀌면서 성당을 둘러싸는 미나레트가 세워지고,
성당안벽은 회칠로 덮이고 그 위에 이슬람교 코란의 금문자와 문양들로 채워졌다.
회칠속으로 성모마리아의 모자이크는 모두 사라졌다.
1934년 성 소피아 박물관이란 이름으로 정식 명칭을 바꾸면서 복원작업이 진행되어 두꺼운 회칠이 벗겨지면서
성모마리아를 비롯한 비잔틴시대의 화려한 흔적들이 드러났다.
성 소피아 성당의 중앙에 서면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공존하는 기묘한 장면이 연출되는 역사적인 장소임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본당의 넓이는 75m X 70m로 7,570㎡에 달하고 천장높이는 55.6m, 돔의 지름은 33m에 달하는 세계적으로 손 꼽히는 유적지이다.
주소 : Sultanahmet | Eminonu District, Istanbul, Turkey (Sultanahmet - Old City)
성 소피아 성당의 내부 모자이크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 시기에 모스크로 바뀌면서 모두 회칠을 하여
오랫동안 그 존재를 아무도 모르고 있었으나,
1935년 박물관으로 바꾸기 위해 벽을 씻어내는 작업을 하면서 많은 모자이크가 드러나게 되었다.
황금으로 만든 이 유명한 데이시스 모자이크(The Deisis Mosaics)는 12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최후의 심판 때 세례 요한과 성모마리아가 인간의 구원을 탄원하고 있는 장면이라고 한다.
여러 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이들 모자이크는 각 시대별로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서 그 자체로도 매우 소중한 유물이다.
가장 대표적인 모자이크를 보자면, 가운데에 정면을 향한 예수가 있고
좌우로 성모 마리아와 세례 요한이 각각 자리한 'Deisis(전 인류를 위한 기도의 표현)'라는 테마의 벽화이다.
HENRICUS DANDOLO(엔리코 단돌로, 1107~1205)
성소피아 성당의 2층 한쪽 구석에는 바닥에 ‘HENRICUS DANDOLO’라고 새겨진 곳이 있다.
이곳은 성당의 대리석 바닥을 깨고 만든 무덤으로, 엔리코 단돌로의 무덤이다.
황제나 정교회 수장도 아닌 사람의 무덤이 어떻게 이 위대한 건축물 안에 있었을까?.
단돌로는 1204년 제4차 십자군을 이끌고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던 사람이다.
베네치아 출신의 단돌로는 십자군을 부추겨 비잔티움 제국(동로마)으로 진격한다.
1204년 4월, 십자군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고 엄청난 학살과 파괴‧약탈을 자행한 뒤 라틴 제국을 세웠다.
이때 단돌로는 베네치아의 이익을 확보하는데 온 힘을 기울인다.
그 결과 비잔티움 제국의 영토 3/8을 차지한다.
이로서 가톨릭과 정교회로 나눠졌던 동서교회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강을 건넜고 비잔티움 제국은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무엇보다 큰 불행은 숱한 문화재와 예술작품이 불타거나 약탈돼 밀반출됐다는 것이었다.
단돌로는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다음해인 1205년 사망했다.
그때 나이가 97세였다. 죽을 때까지 권력을 쥐고 있던 그는 소망대로 성소피아 성당 내부에 묻혔다.
그러나 1261년 그리스인들이 콘스탄티노플을 탈환하면서 무덤이 파헤쳐지고 뼈는 개들에게 던져졌다.
빈 무덤 앞에 설 때마다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허무한지, 권력이 얼마나 무상한지 확인하고는 한다.
죽어서까지 영화를 누리려 했던 한 사람의 끝은 뼈 하나도 챙기지 못하는 비극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라는 성소피아 성당이 전해주는 교훈 중 하나다.
가운데는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님,
예수님의 오른쪽에는 헌금 주머니를 든 황제 요한네스 콤네노스,
왼쪽에는 봉납 명세서를 든 황후 이레네 그리고 연결된 벽쪽으로 왕자 알렉시스가 있다.
성 소피아 성당(Aya Sofya)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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