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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근린공원(島山近隣公園)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19. 7. 13. 04:30
도산근린공원(島山近隣公園)
도산 안창호기념관
도산 안창호 선생, 이혜련 여사 합장 묘소
도산의 말씀
우리 청년은 태산 같은 큰 일을 준비합시다.
낙심 말고 겁내지 말고 용감하고 대담하게 나아갑시다.
若慾改造社會(약욕개조사회) 先自改造我窮(선자개조아궁)
만일 사회를 개조하려면 먼저 스스로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개조하여야 한다.
도산의 말씀
낙망(落望)은 청년(靑年)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民族)이 죽는다.
도산의 말씀
나 하나를 건전(健全)한 인격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 민족(民族)을 건전허게 하는 유일(唯一)한 길이다.
도산의 말씀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이 될
공부를 아니 하는가
도산기상(島山氣像)
천추만대에 빛나는 우리 민족의 위대한 선각자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 선생은
한국을 세계사의 중심무대에 우뚝 솟은 부강(富强)과 도의(道義)의 새로운 민주국가로 만들기 위하여
우리 민족에게 5대 정신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1.자주정신(自主精神)
당신은 이 나라의 주인입니까?
1.진리정신(眞理精神)
진리(眞理)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正義)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1.협동정신(協同精神)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겠소
1.개조정신(改造精神)
나는 사람을 가리키어 개조하는 동물이라고 하오
1.애국정신(愛國精神)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 해왔소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 1878~1938)는 우리나라 근대화와 독립운동의 큰 지도자였으며, 민족주의 사상가로 큰 삶을 살았다.
안창호는 우리 겨레가 일제의 침략과 지배 속에 고통받고 있을 때 위기에 처한 민족과 나라를 지키고 독립을 되찾고자
구국독립운동에 앞장섰고, 자주 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였다.
안창호는 1878년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다 1894년 구세학당에 입학, 1897년에 졸업하였다.
졸업 후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했고 독립협회가 해산한 후
1899년에는 고향인 강서군에서 점진학교를 개설하고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02년 교육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한 뒤190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인친목회를,
1905년에는 공립협회를 조직하고 재미한안사회를 지도하였다.
1907년 귀국한 안창호는 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를 조직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했으며,
대성학교를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하였고, 1909년 에는 청년학우회를 조직하여 지도자 양성에 주력하는 등 구국운동을 총지휘하였다.
1910년 일제의 강제 병합을 눈앞에 두고 망명한 안창호는 러시아령 연해주와 북만주 일대를 순회하면서
재외 한인 사회의 민족운동을 지도하였다.
1911년 미국으로 돌아간 안창호는 흥사단을 조직하고 대한인국민회중앙총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재미동포의 단결과 독립운동 지원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비와 조직을 위하여 중국 상해에 도착한 안창호는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에 취임하여 임시정부의 초석을 다졌다.
또한 각지에 수립된 임시정부를 통합하고, 통합임시정부 노동국 총판에 임명되었다.
안창호는 임시정부의 활성화를 위하여 독립운동 방략을 세우고, 연통제 교통국을 조직하는 등 많은 일을 하였다.
특히 독립운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항공기 도입을 추진하고 흥사단원 및 청년들에게
비행사 양성훈련을 받게 하는 등 항공력을 이용한 독립운동을 역설하였다.
1923년에는 국민대표회를 추진하고 주도하며 민족투쟁 역량의 통합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후 만주 등지를 순회하면서 독립운동 기지로서의 이상촌 건설을 추진하였으며, 남경에 동명학원을 설립하였다.
1925년에는 미주 동포의 단합과 대한인국민회, 흥사단의 조직을 강화하고
이상촌건설과 민족유일당운동을 위한 자금을 확보하고자, 미국 전역을 순회하였다.
1926년 중국으로 돌아온 안창호는 1927년에는 대독립당 건설을 추진했으며, 대공주의(大公主義)를 제창하였다.
1930년 한국독립당을 조직하여 활동하다 1932년 피체되어 국내로 압송되었다.
1935년 가출옥한 안창호는 전국을 순회하고 송태산장에 은거허였다.
그러나 1937년 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피체되었으며,
1938년 끝내 해방을 보지 못하고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서거하였다.
도산근린공원(島山近隣公園)
도산근린공원은 도산 안창호(安昌浩)선생이 이 나라 자주와 독립을 위하여 바친
위대한 애국정신과 민중의 교화를 위한 교육정신을 국민의 귀감으로 삼게 하고자 조성되었다.
서울특별시에서는 1973년 11월 10일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던 도산 선생의 묘소를 이곳으로 이장하는 동시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부인 이혜련(李惠練)여사의 유해를 옮겨와 합장하였다.
한편, 청담동에서 논현동에 이르는 노폭 50m, 연장 3,250m의 신설 가로를 도산대로(島山大路)로 명명 하였다.
도산근린공원은 총면적이 29,974m²이고 35종의 국내,외 수종 교목류와 관목류 7,600여주가 식재되어 있으며,
도산선생 내외분 묘소와 도산 안창호기념관, 기념비, 동상, 어록비, 기념조형물 등이 있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 6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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