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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흥향교(順興鄕校)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47호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9. 7. 27. 04:30

    순흥향교(順興鄕校)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47


    순흥향교는 고려 말 조선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세조 3(1457) 금성대군(錦城大君)단종(端宗) 복위운동으로 인해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와 함께 폐지되었다가 숙종 9(1683)에 관청이회복되면서 향교도 새롭게 설립되었다.

    그 후 두 차례 옮겼다가 정조 14(1790)에 현 위치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조는 대성전(大成殿)을 중심으로 한 제사 지내는 공간과 명륜당(明倫堂)을 중심으로 한 공부하는 공간이 앞뒤에 있다.

    넓은 마당을 앞에 두고 영귀루가 있으며 영귀루 뒤에는 관리 건물인 주사와 동재가 명륜당 앞에 자리하고 있으며,

    제향 공간인 대성전 앞에는 동무와 서무가 자리하고 있는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 구조이다.

    순흥향교는 39위를 봉향(奉享)하는 중설위(中設位) 향교로서, 1949년 성균관(成均館)의 공문(孔門) 10()

    송조 6현중 4현을 매안하라는 시달에 불응하고 39위를 봉향하고 있다.

    현재 향교 내에는 임사안(任事案), 집사안(執事案), 향교잡록(鄕校雜錄), 교중잡록(校中雜錄) 등의

    향교와 관련된 중요한 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437

     




    순흥향교 영귀루(詠歸樓)


    정면 5,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지붕의 2층 누각형 건물이다.

     2층 전면에는 사각판문을 달았고 1층 가운데는 향교에 드나드는 출입문으로 사용된다.

    영귀루(詠歸樓)의 영귀(詠歸)논어(論語)’선진편(先進篇)’에서 

    공자와 제자들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영이귀(詠而歸), 공자가 제자들에게 이루고 싶은 소원이 무엇인가를 묻자,

    대부분의 제자들은 벼슬에 올라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한다고 답했으나,

    증점(曾點)늦은 봄 날씨 따뜻한 때 봄옷이 마련되면 대 여섯 명의 어른과 예닐곱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기수(沂水)에 나가 목욕하고, 무우(舞雩)의 제단 터에서 바람을 쏘인 뒤

    ()를 노래하며 돌아오는 삶을 살고 싶다.”고 대답하여 칭찬을 받았는데,

    영귀(詠歸)란 증점의 마음에서 비롯된 영이귀(詠而歸)에서 나온 용어이며,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의미하며,

    이후 선비들과 도학자들이 영귀(詠歸)라는 이름의 (), (), ()를 짓고,

    가장 닮고 싶고, 이루고 싶은 삶의 이상향으로 삼은 것이 영귀(詠歸)’라고 한다.




    주춧돌에 단기 4292’라고 각자(刻字)해 놨는데,

    서기 1959년으로 이때 영귀루를 지었거나 일부를 보수 한 것으로 추측해 본다.





    순흥향교 동재(東齋)


    명륜당(明倫堂) 동쪽에 있는 건물로 유생(儒生)들의 기숙사로 이용되었던 건물이다.

    동재는 양반 자제들의 기숙사이고, 서재는 평민 자제들의 기숙사이다.




    순흥향교 명륜당(明倫堂)


    유생들의 학문을 가르치는 강학공간으로 정면 4, 측면 3칸으로 가운데 2칸이 강당인 대청이고 좌.우측에 1칸씩 방을 배치했다.

    화려하게 단청을 한 것이 특이하다.




    순흥향교 내삼문(內三門)


    내신문(內神門)이라고도 한다. 중문은 신도(神道)이고, ,서문은 인도(人道)이다,




    순흥향교 대성전(大成殿)




    순흥향교 동무(東廡)


    유현(儒賢)들을 배향(配享)하는 건물로 대성전(大成殿) 壇下(단하)에 위치한다.




    순흥향교 서무(西廡)


    유현(儒賢)들을 배향(配享)하는 건물로 대성전(大成殿) 壇下(단하)에 위치한다.







    보호수(느티나무)

    고유번호 : U-28-8-3-60

    지정일자 : 1982.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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