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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석사 조사당(浮石寺 祖師堂, 국보 제19호)과 선비화(禪扉花)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9. 7. 29. 04:30

    부석사 조사당(浮石寺 祖師堂, 국보 제19호)과 선비화(禪扉花)







    부석사 조사당 벽화(浮石寺 祖師堂 壁畵) - 국보 제46


    이 벽화는 부석사를 창건하고 우리나라에서 화엄종을 처음 시작한 의상대사(義湘大師)를 모시고 있는

    부석사 조사당(국보 제19) 안쪽 벽면에 사천왕과 제석천, 범천을 6폭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이다.

    현재는 일제강점기에 해체 분리된 벽화를 별도(부석사 박물관)로 보관하고 있다.

    흙벽 위에 녹색으로 바탕을 칠하고 붉은색·백색·금색 등으로 채색하였으며,

    각각의 크기는 길이 205, 75가량이다.

    양쪽의 두 천부상은 우아한 귀족풍으로 양감이 풍만하며,

    가운데 사천왕은 악귀를 밟고 서서 무섭게 노려보는 건장한 모습이다.

    훼손된 부분이 많고 후대에 덧칠하여 원래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지만

    율동감 넘치는 유려한 선에서 고려시대 불화의 품격을 느낄 수 있다.

    건물에서 발견된 기록을 통해 조사당을 세운 연대가 고려 우왕 3(1377)임을 알게 되었으며,

    벽화를 그린 연대도 같은 시기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회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사당 선비화(祖師堂 禪扉花)


    선비화의 학명는 골담초(骨擔草)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한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중생(衆生)을 위하여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이곳 조사당 처마 밑에 꽂았더니 가지가 돋고 잎이 피었다고 한다.

    1300년 이상 조사당 처마 밑에서 비와 이슬을 맞지 않고서도 항상 푸르게 자라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감을 주고 있다.

    일찍이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 선생이 부석사를 찾아와 이 선비화를 보고 시()를 짓기도 하였다.


    擢玉森森倚寺門(탁옥삼삼의사문

    僧言卓錫化欞根(승언탁석화령근)

    杖頭自有曺溪水(장두자유조계수)

    不借乾坤雨露恩(불차건곤우로은)


    빼어난 옥 같은 줄기 빽빽이 절문에 비꼈는데

    지팡이 신령스레 뿌리내렸다 스님이 일러주네

    석장의 끝에 혜능 선사 조계의 물 닿아있는가

    천지의 비와 이슬 그 은혜를 빌리지 아니했네





    부석사 조사당(浮石寺 祖師堂) - 국보 제19


    조사당은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의 상()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고려 우왕 3(1377)에 세웠고, 조선 성종21(1490)과 선조 6(1573)에 다시 고쳤다.

    고려 신종 4년인 1201년 단청을 하였다는 기록도 확인된 바 있어 조사당이 세워진 연원은 더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정면 3, 측면 1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무량수전과 같이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물인 공포(栱包)를 간결한 형태로 기둥 위에만 설치한 주심포양식이다.

    출입문 좌우 안쪽 벽에는 고려시대에 그려진 제석천(帝釋天)과 범천(梵天), 그리고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있었는데,

    1916년 건물을 수리하면서 떼어 내어 무량수전에 보관하다가 지금은 부석사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원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며 고분벽화를 제외하면 가장 오래된 채색 벽화이다.

    현재 조사당 내부에 있는 벽화는 새로 그린 것이다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북지리) 대한불교조계종 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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