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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산 돈암서원(論山 遯巖書院) - 사적 제383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9. 10. 1. 04:30

    유네스코 세계유산, 논산 돈암서원(論山 遯巖書院)

     

    한국의 서원은 2019년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2019년 7월 6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 9곳을 세계유산에 등재하였다.

    세계유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인류 전체를 위해 보호되어야 할 뛰어난

    보편적 가치가(Outstanding Universal Value) 있다고 인정하여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한 유산을 말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 현황(9개 서원)

    소수서원(경북 영주), 옥산서원(경북 경주), 도산서원(경북 안동),

    병산서원(경북 안동), 도동서원(대구 달성), 남계서원(경남 함양),

    무성서원(전북 정읍), 필암서원(전남 장성), 돈암서원(충남 논산)

     

     

     

     

     

     

     

     

     

     

     

     

    돈암서원 홍살문과 하마비(下馬碑)

     

     

     

     

     

     

     

     

     

     

     

     

     

     

    돈암서원의 외삼문인 입덕문(入德門)

     

     

     

     

     

     

    돈암서원 응도당(遯巖書院 凝道堂) - 보물 제1569

     

    이곳은 유생(儒生)들이 공부하던 곳으로 1880(고종17) 서원을 현재의 위치로 옮길 때

    옛터에 남아 있던 것을 1971년에 옮겨서 지었다.

    서원이나 향교에서 강학(講學) 공간으로 사용하는 강당이 사당 방향과 직각으로 배치되는 예는 드문 편인데.

    응도당은 강학 공간에서 전면에 직각방향으로 틀어서 배치되어 있다.

    여러 기록에 의하면 돈암서원의 건물 배치와 규모는 김장생(金長生)

    강경(江景) 죽림서원(竹林書院)을 창건했던 규례를 이어받은 것이라고 한다.

    장수강학(藏修講學)의 성격을 가진 강당으로. 원래의 건물은 드물게 큰 규모와 옛 규제를 충실히 따랐다 한다.

    응도당은 정면 5, 측면3칸의 누() 마루식 건물로 겹처마에 맞배지붕의 주심포 계통의 건물이며.

    박공널 밑에 비바람을 막기 위한 방풍판(防風板)을 설치하고 풍판 아래에는 눈썹지붕을 퇴칸처럼 달았다.

    응도당은 기와에 씌여 있는 명문(銘文)으로 보아 1633(인조 11)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거경재(居敬齋) - 동재(東齋)

     

    '거경(居敬)'은 성리학의 수양 방법 중 하나로

    우러르고 받드는 마음으로 삼가고 조심하는 태도가짐을 말하며, 유생들이 학습하던 공간이다.

    거경재는 장대석 기단위에 정면 3, 측면 2칸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정의재(精義齋) - 서재(西齋)

     

    '精義(정의)'란 자세한 의의라는 뜻으로 정의재는 학문을 하는 유생들이 모여

    경전의 의의를 자세히 강론하던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장대석 기단 위에 정면 3, 측면 2칸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돈암서원 원정비(遯巖書院 院庭碑)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66

     

    조선시대 중기 문인(文人)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선생의 문하생들이 돈암서원을 세운 사연과,

    사계와 그의 아들인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부자의 학문과 업적을 적은 비이다.

    연꽃 무늬가 새겨진 방형의 비 받침대에 대리석 비석과 비 머리가 서 있다.

    이들은 예학과 성리학의 대가로 고향에 돌아와 주자학을 연구하였는데,

    비문에는 장중하고 온화한 사계와 치밀한 신독재의 성품을 기리고, 그들의 높은 학문을 적고 있다.

    현종 10(1669)에 세웠는데, 비문은 송시열(宋時烈)이 적고 송준길(宋浚吉)이 글씨를 썼으며,

    앞면에 새겨져 있는 전서체(篆書體) 제목은 김만기(金萬基)가 썼다.

    이 서원은 숲말에 있던 것을 홍수때 물이 차므로 고종 17(1880)에 이곳으로 옮겨지었는데,

    그때 비석도 옮겨왔다. 현재의 건물들은 비문에 적혀 있는 건물 배치와 다르다.  

     

     

     

     

     

     

     

     

     

     

    양성당(養性堂)

     

    돈암서원의 유생들이 모여 강학하던 서재로 사당 바로 앞에 위치하여 정면 5,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중앙 3칸은 전후에 퇴를 둔 대청이며, 좌우에는 온돌방 각 1칸씩 두었다.

     

     

     

     

     

     

     

     

     

     

     

     

     

     

    돈암서원 꽃담(遯巖書院 花墻)

     

    꽃담장은 본래 궁궐 같은 공간에 연출된 독특한 전통담장이다.

    돈암서원의 숭례사(崇禮祠)를 둘러싼 꽃담장은 이곳이 특별한 공간임을 알려준다.

    내삼문(內三問)은 숭례사에 제항을 지내기 위해 출입하는 문으로,

    사당 앞의 이 칸과 양 협칸을 별도로 하나씩 세우고 문과 문 사이에는 담장이 쳐져 있다.

    담장에는 지부해함, 박문약례, 서일화풍 등 김장생과 그의 후손들이 예학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12개의 글자를 새겨 놓았다.

     

    地負海涵(지부해함) - 대지가 만물(萬物)을 짊어지고 바다는 만천(萬川)을 포용한다.

    (풀이) 땅이 만물을 짊어지고 바다가 모든 물줄기를 수영하듯이 배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자세를 가져야 한다.

    또한 참된 배움을 익힌 사람은 아집과 편견의 한계에서 벗어나 땅과 바다처럼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博文約禮(박문약례) - 지식은 넓히고 행동은 예의에 맞게 하라.

    (풀이) 배움을 통해 지식을 확장하면서도 자만하지 않고, ()에 맞게 말과 행동을 절제할 수 있다면

    참다운 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배움의 참뜻을 구현한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과 활용뿐만 아니라

    예법(禮法)에 맞는 예의 실천을 위한 자기 수양이 함께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瑞日和風(서일화풍) - 상서(祥瑞)로운 햇살과 온화한 바람

    () 상대방을 배려하고 응대하면서 지부해함박문약례를 실천한다면

    화평하고 조화로운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사계 김장생 선생의 예학정신이 담겨 있다  

     

     

     

     

     

     

     

     

     

     

    돈암서원 유경사(遯岩書院 惟敬祠)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5

     

    숭례사(崇禮祠)란 현판이 걸려있는 사우(祠宇)로서 정면 3, 측면 3칸의 익공양식에 주심포 양식이 가미된 건물이다.

    장대석(長臺石)으로 4단의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원형의 주초석과 둥근 기둥을 세웠다.

    한편 측면의 3칸 가운데 전면의 1칸은 통칸의 퇴칸(退間)으로 시설하였으며, 문은 4분합의 띠살문을 달았다.

    창방 위에는 화반형의 초각반(草刻盤)을 배치하여 장식하였다.

    지붕은 겹처마에 맞배지붕이며 측면의 박공널 밑에는 비바람을 막기 위한 방풍판(防風板)을 설치하였다.

    사당의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공포의 짜임새가 큰 건물 못지않으며,

    세부적인 조각에도 장식성이 강한 요소들을 응용한 것은 사당의 위계를 높이려는 의도로 보인다.

    기호사림의 종장인 김장생(金長生)을 주향하고, 그의 제자로 깁집(金集), 송준길(宋浚吉), 송시열(宋時烈)을 배향(配享)하였다..

     

    김장생(金長生, 1548~1631)

    조선 중기의 학자·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희원(希元), 호는 사계(沙溪). 서울 출신. 할아버지는 지례현감 호(),

    아버지는 대사헌 계휘(繼輝), 어머니는 평산 신씨(平山申氏)로 우참찬 영()의 딸. 아들이 집()이다.

     

    김집(金集, 1574~1656)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 서울 출신.

    아버지는 장생(長生), 어머니는 창녕 조씨(昌寧曺氏)로 첨지중추부사 대건(大乾)의 딸.

    아버지 김장생과 함께 예학의 기본적 체계를 완비하였으며, 송시열에게 학문을 전하여 기호학파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송준길(宋浚吉, 1606~1672)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 세영(世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수 응서(應瑞), 아버지는 영천군수 이창(爾昌).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 김은휘(金殷輝)의 딸이다.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菴) 또는 우재(尤齋). 봉사 송구수(宋龜壽)의 증손, 할아버지는 도사 송응기(宋應期),

    아버지는 사옹원봉사 송갑조(宋甲祚). 어머니는 선산 곽씨(善山郭氏)로 봉사 곽자방(郭自防)의 딸이다.

     

     

     

     

     

     

     

     

     

     

    전사청(典祀廳)

     

    전사청은 양성당 동측면에 위치하고 있는 ''자형 평면건물로, 제행과 관련되어 제향 때 제물을 준비, 제관들이 일을 보는 건물이다.

    이 건물은 홑처마 백골집 형태로 한쪽은 팔작지붕, 다른 한쪽은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장판각(藏板閣) - 논산시 향토유적 제9

     

    '藏板(장판)'이란 판을 간직하여 보관한다는 뜻으로 장판각에는 김장생의 문집인 사계전서(沙溪全書),

    김장생의 부친 김계휘 당시의 사실을 기록한 황강실기(黃岡實記), 김집의 문집인 신독재전서(愼獨齋全書) 등과

    경서변의(經書辨疑), 가례집람(家禮輯覽), 상례비요(喪禮備要) 등이 보관되어 오고 있다.

    장판각은 정면 3, 측면 2칸으로 우물마루를 깔았다.

     

     

     

     

     

     

     

     

    정회당(靜會堂)

     

    장판각 서쪽에 세워져 있는 건물로 '정회(靜會)'는 유생들이 수행하는 방법 중 하나로

    고요하게 몸소 실천하며 수행한다는 뜻으로 사계선생의 부친인 황강공께서 강학하던 건물이며

    대둔산 자락의 고운사터에서 1954년에 옮겨왔다.

    정회당은 정면 4, 측면 2칸으로 후면열 가운데 2칸은 마루방을 두었다. 우물마루를 깔았다.

     

     

     

     

     

     

     

     

     

     

    연산돈암서원비(連山遯巖書院碑)

     

     

     

     

    황강 김계휘선생 정회당 사적비(黃岡 金繼輝先生 事蹟碑)

     

     

     

     

    헌성금록(獻誠金錄)

     

     

     

     

     

     

    논산 돈암서원(論山 遯巖書院) - 사적 제383호

     

    서원(書院)은 선현(先賢)을 봉사하는 사우(祠宇)와 유생(儒生)들을 교육하는 재()가 결합된 사학(私學)을 말한다.

    돈암서원은 1634(인조 12)에 이곳에서 서북방 1.5km 떨어진 숲말(林里)에 건립되었으며,

    현종 원년(1660)에 사액(賜額 : 임금이 사당.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 그것을 적은 현판을 내리는 것)을 받았다.

    1880(고종 17)에 서원이 있던 숲말의 지대가 낮아 홍수 피해가 있자 현재의 이곳으로 옮겼다.

    1866(고종 3) 서원 철폐령 이후에도 존속된 47개 서원 중 하나로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했던 전통 있는 곳이다.

    이 서원은 기호사림(畿湖士林)의 종장인 김장생(金長生)을 주향하고,

    그의 제자로 문묘에 제향(祭享)된 김집(金集). 송준길(宋浚吉). 송시열(宋時烈)을 배향(配享)하였다.

    따라서 돈암서원은 호서지역은 물론 기호지방 전체에서 존숭 받았던 서원이다.

    돈암서원의 주요 건물배치를 살펴보면, 입구에 하마비(下馬碑)와 홍살문이 있고

    최근에 건립된 서원비(書院碑)가 세워져 있으며, 외삼문(外三門), 유생들이 공부하던 응도당(凝道堂), 2기의 서원비,

    거경재라 불리기도 하는 양성당(養性堂), 내삼문(內三門), 사우(祠宇)가 배치되어 있다.

    이 외에 김장생의 부친인 김계휘(金繼輝)가 후학을 가르치던 건물인 정회당(靜會堂), 유생들의 기숙처였던 정의재(精義齋),

    황강실기(黃岡實記), 사계유고(沙溪遺稿), 신독재유고(愼獨齋遺稿) 등의 목판이 보존되어 있는 장판각(藏板閣),

    그리고 전사청(典祀廳) 등이 있다.

    여러 기록에 의하면 돈암서원의 건물 배치와 규모는

    김장생(金長生)의 강경 죽림서원(竹林書院)을 창건했던 규례를 이어받은 것이라고 한다.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326-14 (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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