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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억새의 은빛 물결이 장관인 '제주 산굼부리' -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263호
    국내 나들이/제주도(濟州道) 2019. 11. 26. 04:30

    억새의 은빛 물결이 장관인 '제주 산굼부리' - 천연기념물 제263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비자림로 768 (고래리)



















    흔히 말하는 '굼부리'란 곧 '화산체의 분화구'를 가리키는 제주어이다.


    그것은 산 위나 중턱에 동그랗게 움푹 팬 환형(環形)의 것도 있고,

    산체의 한쪽 사면이 도려내어진 듯이 벌어진 말굽형도 있으며, 양자를 모두 가진 복합형 화산체도 있다.

    그 모양이나 크기에 상관없이 이를 '굼부리'라 하고 지역에 따라서는 '움부리'라고도 한다.




    산굼부리 분화구


    제주도에는 360여개의 기생화산이 분포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기생화산은 분화구를 갖지 않거나

    분화구를 갖고 있더라도 대접을 엎어놓은 듯한 형태 또는 말굽형의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산굼부리 분화구는 용암이나 화산재의 분출없이 폭발이 일어나 그 구멍만이 남게 되는

    '마르(Maar)' 분화구로써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아주 희귀한 형태이다.

    산굼부리 분화구 안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같은 제주도의 한라산에 있는 식물들과도 격리된 상태에서 오랫동안 살아왔으므로

    식물분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됨과 동시에 진기한 형태의 분화구는 지질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므로

    국자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263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산굼부리는 해발 400m에 위치하며, 표고 438m, 외부주위둘레 2,067m, 내부주위둘레 756m, 깊이132m이고

    넓이가 약 30㎡​에 달해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보다도 크고 깊다.

    이곳에는 이른 봄철에 피는 세복수초를 비롯하여 변산바람꽃, 고란초, 눈괴불주머니, 벌깨냉이, 각시족도리 등 약 450여종의 식물이 자란다.

    오름의 외측 사면에는 참억새가 군락을 이루며 가을에는 장관을 연출한다.

    분화구 내 사면은 태양이 비치는 일사량에 따라 다양한 식생의 분포를 보이는데,

    햇볕이 잘드는 북쪽사면은 난대림을 이뤄 붉가시나무,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생달나무 등 상록 활엽수들이 자라고 있으며,

    그 아래 층에는 금새우란, 자금우, 겨울딸기 등이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햇볕이 잘들지 않는 남쪽사면에는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산딸나무, 단풍나무 등 온대성 낙엽수 군락이 있다.​​

    산굼부리 분화구에는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왕주똥나무 군락, 상산 군락, 복수초 군락, 변산바람꽃 군락 등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학술적으로도 연구가치가 매우 높게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노루와 오소리 등의 포유류를 비롯해서 조류, 파충류 등 야생동물의 서식처로도 유명하다.  




    산체에 비래 대형의 화구를 가진 특이한 형태

    소수를 제외하는 대부분의 오름이 혹은 크게 혹은 작게 저마다에 어울리는 형태의 굼부리를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아득한 옛날 그들이 두꺼운 지각을 뚫고 나와 제주섬에 좌정하는 숨구멍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산굼부리는 산체에 비해 대형의 화구를 가진 특이한 형태로 인해 이체를 띤다.

    어떻게 보면 몸뚱이는 없고 아가리만 벌려 있는 것 같은 기이한 기생화산이다.

    드넓은 들판 한군데가 푹 꺼져 들어간 커다란 구렁. 실제 그 바닥이 주변의 평지보다 100m 가량 낮게 내려앉아 있다.

    이 희한하게 생긴 기생화산이 학술적 가치로나 관광자원으로서 보배롭게 여겨지고 있는 것은

    한국에는 하나밖에 없는 '마르(Maar)형 화구'이기 때문이며, 이런 화산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고 한다.

    지구가 만들어낸 걸작 하나가 몇 십만 년 뒤 제주섬에서 내외의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마르, 화구둘레가 환상의 낮은 언덕으로 둘러싸인 폭렬화구

    '마르'란 화구둘레가 환상(環狀)의 낮은 언덕으로 둘러싸인 폭렬화구를 말하며,

    화산활동 초기에 단시간의 미약한 폭발만이 일어나고 활동이 중지됨으로써 형성된다.

    특히 그 폭발은 주로 가스만 터져 나오고 다른 물질은 소량이거나 거의 동반하지

    않기 때문에 화구 주위는 낮은 언덕을 이룬다. 이러한 생성과정으로 생겨난 산굼부리는

    표고가 437.4m, 이 최고점은 화구 남쪽 둘레의 약간 둔덕진 등성이에 있다.

    화구바닥은 305.4m로 그 표고차, , 최고점으로부터의 깊이 132m가 된다.

    그리고 북쪽 기슭의 도로(교래승당)가 등고선상 해발 410m 안팎이므로

    도로에서의 산높이 최고 28m, 화구 바닥은 도로에서 지하 100m 깊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이것을 백록담의 깊이(115m)와 비교해 보면 산굼부리 쪽이 17m 더 깊은 것으로 나타난다.

    지도상의 계산으로는 섬 안에서 가장 깊은 화구이다.

    이것이 그다지 메워짐 없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내사면이 우거진 초목으로 다져져서 토사의 유입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화구의 크기는 바깥둘레 약 2700m에 밑둘레 750m, 그 넓이 30에 이르는 초대형이다.

     

    보기 드문 분화구 식물원

    마르형 화구로서 귀중한 존재인 이 굼부리는 또한 보기 드문 분화구식물원이기도 하다.

    상록, 낙엽, 활엽 및 침엽의 난대성 및 온대성에 겨울딸기, 자생란 등 희귀식물이 한 울타리 안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식생에 있어 남향사면과 북향사면이 현저히 양상을 달리한다.

    깊이에 따라서도 다르게 나타난다. 한 울타리 안이면서도 끼리끼리 따로 살고 있다.

    이것은 사면의 방위에 따라 일사량과 일조시간, 기온 등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각기 거기에 적응한 식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록지(漢鹿址)와 사슴동상








    산굼부리 전설


    옛날 산굼부리 이곳은 산신의 기가 흐르는 곳으로 사농바치(사냥꾼)들이 사냥이나 산행을 나설 때면

    이곳에서 산신제가 행하여졌다고 전해오고 있다.

















    용암수형석(熔岩樹形石)


    나무꼴 모양의 공동을 남기고 있는 용암수형석은 화산이 폭발하여 분출된 용암이 나무를 덮고 흘렀을 때

    생겨나는 현상으로 용암의 외형은 공기에 의해서 굳어지고 내부는 나무에 의해 굳어지게 된다.

    용암에 묻혔던 나무는 고온으로 연도 탄화되어 차츰 없어지고, 뒤에 그 모양만 남겨 놓게 된다.  




    산굼부리 신화와 전설

     

    '산굼부리''산신의 주둥이' 또는 '산신이 생기다'란 뜻이 있는 말로 해석되고 있으며, 그 어원은 '산의 감발'이다.

    여기에는 옥황상제의 말잣딸(세째공주)과 한감(한별)이라는 별과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 옛적에 하늘나라 옥황상제께서는 많은 시녀들과 견우성과 직녀성처럼 훌륭한 별들도 거느리고 있었는데

    한감은 그들별들 중의 하나였다.

    옥황상제의 딸 가운데에서도 특히 말잣딸(세째딸)은 착할 뿐만 아니라

    총명해서 상제의 사랑을 독차지하다시피 하여 자라고 있었다.

    한편 한감은 별들의 세계에서도 영특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상제의 생일잔칫날이 되었다.

    많은 손님들이 초대되어 오갔는데, 한감도 그 자리에 초대되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한감과 말잣딸은 서로 눈이 맞더니 사랑의 불이 붙기 시작했다.

    한감과 말잣딸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서로 만나고 속삭이고 떨어지곤 하였다.

    둘 사이의 사랑의 소문은 어느새 세상에 퍼지게 되었고, 드디어 소문은 상제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상제께서는 크게 노하시며 하인을 불러 한감과 말잣딸을 당장 잡아오라고 명하였다

    상제 앞에 끌려온 한감과 말잣딸은 엎드리어 사실을 아뢰고 용서를 빌었다.

    상제는 "부모의 하락없이 남녀가 사랑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하며 귀양살이를 명하였다.

    이들은 그 길로 구름길, 바람길을 따라 천동과 벼락을 치며 이 세상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한감과 말잣딸은 지상에 내려와 어디로 좌정할까를 점치다가 산굼부리에 살기로 하였다.

    이 때부터 이들의 부부살림은 시작된 것이다.

     

    한감은 사냥을 하고 말잣딸은 나무열매를 따 먹으며 살았다. 한라산에는 온갖 짐승도 많았으나, 나무열매도 풍성하였다.

    노루,오소리, 사슴, 멧돼지, 꿩들과 보리수열매, 산딸기, 산바나나, 다래, 머루, 시러미들과 그 밖의 열매들은 이들의 주식이었다.

    이렇듯 한감과 말잣딸의 식성은 동물성식품과 식물성식품으로 그 식생활이 각기 구분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그 식성이 다름에서 서로 갈등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결국 이들은 이 식성이 다름에서 서로 살림은 분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고약한 냄새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으니, 우리 이제 헤어져 삽시다" 말잣딸의 제안이었다.

    한감도 더 이상 억지를 부릴 수가 없어 결국 동의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말잣딸은 인가를 찾아 내려오다가 지금의 제주시 남문 밖 천년 팽나무 아래 이르렀다.

    여기가 경치좋고 좌정할만 하다고 판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신앙민들에 현몽시켜 단골을 두게 되었다. 신앙민들은 제물을 차려와 명과 복을 비는 것이었다  

    지금 이곳을 '각시당'이라고 불리우고 있으며, 옥황상제 말잣딸 아기가 귀양와 좌정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한감은 산굼부리에 살면서 산의 짐승들을 돌보며 살아가게 되었다.

    사냥꾼들은 사냥할 때 이곳에서 산신제를 지내면 그날 사냥에 큰 성과를 올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옛날에는 이곳에서 산신에 대한 제사를 올린 다음 산행을 해야 무사했다고 전한다.

    오늘날 이곳에서 사람들이 큰 소리를 지르던지 부정한 짓을 하게되면 안개가 삽시간에 덮히고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산신이 노해서 부리는 조화라고 한다.


    출처 : 제주민속박물관장 사회학 박사 진성기씨의 제주도 전설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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