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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20. 6. 7. 18:25
삼위일체(심순화 카타리나 작)
사랑하는 사람만이 하느님을 알 수 있다(1요한 4,7-8)
“할머니! 하느님은 몇 분이시죠?” “일흔한 분이시지유”
“아니 할머니! 하느님은 한 분뿐이시라고 안배우셨어요?어떻게 하느님이 일흔한 분이나 되신다는 거죠?”
“왜유~ 거기 십계명에 나오잖아유~ 일은(흔)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이(2)는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삼(3)은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사(4)는…”
눈이 침침해 교리서를 비록 꼼꼼히는 못 보시지만,
세례를 받으시겠다는 일념으로 일단 일러주는 대로 외우셨던 할머니. 할머니께서는
보고, 읽고, 해석하고,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철학적 사고로 분석하지는 못하셨지만,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것만은 확실히 아셨습니다.
그래서 텃밭의 상추를 이웃과 나누시고, 빌려주고 꾸어주는 것에 인색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어쩌다가 동냥치가 대문을 두드리기라도 할라치면
한 대접 가득 밥을 퍼담아 툇마루까지 내어주시는 모습은
‘일은(흔)’ 한 분이신 하느님께 향한 사랑의 응답이었습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하느님 사랑의 신비 안에 들지 못하셨을 것이라고
감히 아무도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우리는 ‘위격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각각이시요,
본성으로는 한 분이시며, 위엄으로는 같으신 한 본체로서의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이해 문제로 힘겨워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앎’을 이해와 논리로 풀어가려 할 때,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삼위일체는 물리적인 숫자 개념과 철학적 사고방식으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오직 ‘신앙의 신비’로 고백하는 교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하느님 신비’에 다가갈 수 있을까요?
하느님께서는 요한 1서(7-8절)를 통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주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을 압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희생 제사를 통해 세상의 죄를 용서하시며,
이를 통하여 믿는 이들을 모두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시고 계신다는 사실은,
오직 ‘사랑’으로서만 깨닫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사랑하고, 다른 이들의 죄와 잘못을 용서하며,
이웃들에게 참사랑을 실천하여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참사랑의 도구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주님 품으로 되돌아가는 날,
그제야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글 | 이상용 요한 크리소스토모 신부(천주교 수원교구 성소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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