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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승 순의비(李學承 殉義碑) - 사적 제406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7. 10. 22:45
이학승 순의비(李學承 殉義碑)
증좌승지이공학승순의비(贈左承旨李公學承殉義碑)
1897년 면암 최익현이 지음
장성 황룡전적(長城 黃龍戰蹟) - 국가 사적 제406호
이곳 장성 황룡전적은 고종 31년(1894) 반봉건, 반외세의 정신으로 일어선 동학농민군이
최초로 정부에서 파견된 경군(京軍)에 승리한 동학 농민혁명의 최대 격전지이다.
황룡전투는 전봉준의 동학농민군이 고창, 영광, 함평을 차례로 점령한 후,
전라도의 수도이자 이씨왕조의 태생지인 전주를 점령하기 위하여
이학승이 이끄는 경군과 일대 접전을 벌였던 전투이다.
1894년 갑오농민혁명에 동학군이 호남에서 항쟁할 때
조정에서 홍계훈을 차출하여 초토사로 삼아 장차 병력을 치려하였다.
이학승 공이 장위영대관으로 종군하여.영광에 머물렀다.
동학군 수 만 명이 장성 황룡 월평에 웅거하고 있을 때 군사 200여명을 이끌고
황룡강을 건너 물을 끼고 공격하여 백여급을 베었으나 중과부족으로 죽음에 이르자
휘하 사졸이 공을 붙잡고 도망가길 청하니 공이 웃으면서 장부가 떳떳하게 죽을 뿐이지
난을 당하여 구차하게 살려고 함을 옳지 못하다하고서 꼿꼿하게 홀로 버티고서
적을 꾸짖으며 굴복하지 않다가 죽었으니 곧 4월 23일이며 43세의 나이다.
조정에 알려저 무관인 선전관에게 당상관인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를 증직하고
예관을 보내 치제하였으며 그의 동생 이도승을 김포군수로 삼았다.
후에 그의 충절을 기리려는 논의를 전 참봉 기우만이 창도하고 부사 김성규가 도왔으며
유생 송영순 박만승이 그 일을 주관하였으며 박만승이 탁신재 김한목을 시켜
800리길 청양의 면암 최익현 선생에게 비문을 구하여 세운 비다.
이 비가 공교롭게 동학혁명황룡전적지기념탑과 지근거리에 서 있어
어수선한 구한말의 상황을 말없이 대변해주고 있다.
이학승은 성종 임금의 후손으로 군수 이종규의 아들임.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장산리 356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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