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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당 현판(奉壽堂 懸板) - 유네스코 아태기록유산수원사랑/화성행궁(華城行宮) 2020. 7. 29. 21:34
봉수당 현판(奉壽堂 懸板) - 유네스코 아태기록유산
1789년 9월 수원 신읍치 관아의 동헌(東軒)이 완공되었다.
이듬해 2월 정조가 수원에 행차하여 장남헌(壯南軒)이라 명명하고
친히 현판 글씨를 쓴 후 화성행궁의 정전(正殿)으로 삼았다.
1793년 1월 정조는 장남헌에서 수원도호부(水原都護府)를 유수비(留守府)로 승격시킨다는
하교를 내리고 어필(御筆)로 쓴 ‘화성행궁(華城行宮)’ 현판을 걸게 하였다.
1795년 정조는 혜경궁홍씨(惠慶宮洪氏)의 회갑연을 위해 8일간 수원행차를 하였다.
회갑연을 거행할 때 정조는 장수를 기원하는 악장(樂章)과 자신의 감회를 읊은 시를
신하들에게 보이면서 ‘만년(萬年)의 수(壽)를 받들어 빈다’고 하였다.
이때부터 장남헌을 봉수당으로 바꿔 부르게 하고,
글씨는 당대의 명필이었던 송하(松下) 조윤형(曺允亨, 1725~1799)으로 하여금 쓰게 하였다.
정조는 조윤형의 글씨를 애호하여 수원화성의 편액을 가장 많이 쓰게 하였는데,
글씨를 잘 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더 아낀 이유는
충신 조한영(曺漢英, 1608~1670)의 손자였기 때문이다.
봉수당은 화성행궁의 정전으로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며,
정문인 신풍루에서 진입하는 중심축의 가장 윗자리에 위치한다.
평상시에는 수원유수가 집무하는 행정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1790년 2월에는 봉수당 앞에서 문무과 시험이 치러지기도 하였으며
1795년 을묘년에는 혜경궁홍씨의 회갑연이 거행되었다.
1796년 11월 정조의 명을 받아 판중추부사 이병모(李秉模, 1742~1806)가 봉수당 상량문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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