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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행궁 무예24기 시범공연
    수원사랑/화성행궁(華城行宮) 2021. 11. 22. 20:12

    무예 24기 시범공연

     

    기간 : 연중(매주 화요일~일요일), 월요일 휴연

    시간 : 오전 11~1130/ 오후 2~230(오후 공연은 토, 일요일만 진행)

    장소 : 화성행궁 유여택

    이용료 : 공연 관람 무료(화성행궁 입장료 별도)

    문의처 : 수원시립공연단(031-267-1644~7)

    무예24기 상설공연이 2021. 11. 9.()부터 재개되었으나,

       코로나19 지침에 따라 관람인원은 100명 이하로 제한됩니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행궁로 11 (남창동) 화성행궁 內

     

     

     

    무예 24기(武藝二十四技)란?

     

    정조의 명을 받은 실학자 이덕무, 박제가와 무예의 달인 백동수가

    1790년에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24가지 무예를 말한다.
    「무예도보통지」는 조선 전래의 무예는 물론, 중국과 일본의 우수한 무예를 적극 수용하여

    '24기(技)'로 정리한 무예교범서로서 부국강병의 실학정신이 담겨 있으며,

    수원화성에 주둔했던 당대 조선 최정예부대인 '장용영' 군사들이 익혔던 무예로,

    역사적 가치는 물론 예술적, 체육적 가치가 아주 높은 무형의 문화유산이다.
    무예 24기가 완성되기까지 임진왜란을 통해 조선왕조는 창검 무예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1598년 한교가 중국 무예인 장창, 쌍수도 등을 군사들이 쉽게 익힐 수 있도록

    자세와 동작을 그림과 설명으로 풀이한 「무예제보」를 펴냈으며,

    1604년에는 「권보」를, 1610년에는 최기남이 언월도, 왜검 등을 풀이한

    「무예제보번역속집」을 편찬하여 군영에 보급했다.
    이처럼 조선은 임진왜란을 겪은 뒤 중국과 일본의 우수한 무예를 적극 수용하였다.

    이 무렵 기창ㆍ본국검ㆍ예도 같이 우리의 고유한 무예가 발굴되고, 새로운 무예가 창안되었으며,

    효종이 북벌을 준비하던 1650년 무렵부터 이러한 무예를 무사 선발의 시험과목으로 삼았다.

    1680년 무렵에는 한ㆍ중ㆍ일 삼국의 검술에 통달한 김체건이 교전을 창안하여 군영에 보급하였다.

    1759년에는 북벌을 꿈꾸던 장헌세자의 명을 받은 훈련도감 교련관 임수웅이

    지상무예 18가지를 도보로 정리한 무예 신보를 편찬하였다.
    정조는 즉위하던 1776년에 아버지의 뜻을 이어 18기와 마상무예 4기를 군사들에게 익히도록 하였고,

    1785년에는 이런 내용을 법으로 정했다.

    정조의 명을 받은 규장각 검서관 이덕무, 박제가와 장용영 초관 백동수가

    지상무예 18가지와 마상무예 6가지를 합해 모두 24가지의 무예를 정리하여

    1790년 4월에 「무예도보통지」를 장용영에서 펴내 전 군영에 보급했다.

    이후 장용영, 훈련도감, 어영청 등 중앙 군영은 물론

    팔도의 군영에서도 「무예도보통지」를 교범 삼아 무예 24기를 익혔다.

     

     

    무예 24기 군사훈련

     

    장창(長槍) : 긴 창을 말하며, 전보와 후보로 이루어져 있는 장창의 자세는

                    대적, 기만, 방어, 공격세로 구성되어 있다.

    죽장창(竹長槍) : 자루가 길므로 자세는 아주 단순하며,

                          대나무를 여러 겹 붙여 만든 긴 창으로 주 용도는 적의 기병을 막는데 쓰였다.

    기창(旗槍) : 단창이라고도 불렸으며 고려시대에 임금의 수레를 호위하는 군사들이 익혔던 무예이다.

    당파(鏜鈀) : 삼지창으로 알려졌으며 주로 창을 막는데 이용한다.

    기창(騎槍) : 말을 타고 창을 사용하는 기법을 말하며, 조선 초기부터 무과 시험의 주요한 과목이었다.

    낭선(狼筅) : 긴 대나무에 가지를 세우고 사이에 철심을 붙여 적의 접근을 막는데

                    효과적으로 사용한 무기이다.

    쌍수도(雙手刀) : 중국에서는 장도(長刀)라 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무예제보까지는 장도라 불렸다.

                          그 이름처럼 길고 큰 칼을 쓰는 법으로 왜구의 검에 대적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예도(銳刀) : 중국에서 조선세법이라고 불릴 만큼 조선의 독특한 칼 쓰는 법이 수록된 검법이다.

                    조선 검법의 핵심이며 가장 기본적인 칼쓰는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왜검(倭劍) : 토유류, 운광류, 천유류, 류피류 4개의 류로 구성되어 있으며,

                    회수력 때문에 타법(打法)이 독특하게 발달한 검법이다.

    교전(交戰) : 조선의 검선 김체건이 왜검을 응용하여 격검 하도록 만든 것이며,

                    24반 무예 중 가장 늦게 완성된 검법이다.

    제독검(提督劍) : 중국에서 전해져 조선에서 완성된 검법이다.

    본국검(本國劍) : 신라의 화랑들이 익힌 검법이다.

    쌍검(雙劍) : 두 개의 검을 들고 구사하는 검법이다.

    마상쌍검(馬上雙劍): 말위에서 검 두 개를 사용하는 기법이다.

    월도(月刀) : 칼날의 모양이 달처럼 생겨 월도라 불린다.

    마상월도(馬上月刀) : 말위에서 월도를 사용하는 기법으로, 조선의 기병들이 필수로 익혔던 기예이다.

    협도(挾刀) : 미첨도라 불리고, 무예 24기 중 가장 무거운 병기이다.

    등패(藤牌) : 등나무로 만든 방패와 요도, 표창을 사용하는 무예이다.

    권법(拳法) : 창검 무예를 배우기 전에 익혔던 맨손 무예이다.

    곤방(棍棒) : 무기술의 기초로 익혀야 했으며, 특히 음양수를 익히는 기본이 되는 무기술이다.

    편곤(鞭棍) : 쇠도리깨를 연상시키는 무기술로 연속 공격이 쉽고 강한 타격력을 바탕으로

                    기병들의 주요한 무기로 사용되었다.

    마상편곤(馬上鞭棍) : 말위에서 편곤을 사용하는 법으로 자루를 약간 짧게 하여

                               기병들이 항시 착용하였던 기본 무기였다.

    격구(擊球) : 말을 활용한 기마민족의 전통을 경기로써 이어지게 하는 기예이다.

    마상재(馬上才) : 말 위에서 일종의 재주를 부리는 기예이다.

     

     

     

    유여택(維與宅)

     

    1790년(정조 14) 창건, 1998년 복원

    유여택은 수원읍을 옮긴 이듬해인 조선 정조 14년(1790)에 지은 건물로,

    화성 축성을 시작하던 1794년 가을에 증축되었다.

    처음 건물은 은약헌(隱若軒)으로 부르다가 증축 후 이름을 바꾸었다.

    유여택이란 <시경>에서 주나라의 기산(岐山)을 가리켜

    ‘하늘이 산을 만들고 주시어 거처하게 하였다(此維與宅)’라는 고사를 인용해서 지은 이름이다.

    정조는 유여택에서 신하들의 보고를 받고 과거 시험에 합격한 무사들에게 상을 내리기도 했다.

    1800년 정조가 승하한 뒤에는 화령전이 완성되기 전까지 현륭원 재실과

    창덕궁 주합루에 있던 정조의 초상화를 모시는 공간으로도 사용되었다.
    처음 지은 은약헌의 북쪽 1칸은 공신루(拱宸樓)라는 누마루였는데

    증축하면서 실내에 온돌을 놓고 창호를 달았다. 현재 창호는 복원되지 않았다.

     

     

     

    남군영(南軍營)

     

    1794년(정조 18) 창건, 2002년 복원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좌우에 남군영과 북군영 건물을 짓고

    약 100명의 군사가 교대로 행궁을 지켰다.

    남군영은 국왕 친위 부대인 장용영 외영 군사들이 주둔하는 건물이다.

    장용영 군사는 왕이 화성에 내려올 때는 물론 평소에도 화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봄, 가을로 두 번 시험을 치러서 수석을 차지한 군사에게는

    곧바로 관직을 높여 주는 등 특별한 혜택을 주었다.


    * 장용영 외영(壯勇營 外營) : 정조의 친위 군사조직 중 화성을 지키는 부대

     

     

     

    행궁전도(行宮全圖) - 1797년 정리의궤(整理儀軌)

     

     

     

    장용영(壯勇營)

     

    조선 22대 국왕 정조는 왕권 강화를 위해 1785년(정조 9)에 장용위(壯勇衛)라는

    국왕 호위의 전담부대를 설치하여 총책은 장용영 병방(壯勇營 兵房)이라 하였고,

    그 아래에 무과 출신의 정예금군(精銳禁軍)을 두어 국왕의 호위를 담당하는 친위체제로 만들었다.

    그 뒤 1793년(정조 17)에 규모를 더욱 확대시켜

    하나의 군영(軍營)으로 발전시킨 금위조직(禁衛組織)이 장용영이다.

    장용영은 크게 내영(內營)과 외영(外營)으로 나누어지는데,

    내영은 도성을 중심으로 하였고 외영은 수원화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강력한 왕권의 상징으로 삼으려 하였지만, 정조가 죽자 1802년(순조 2)에 혁파되었다.

     

     

    장용영 갑주(壯勇營 甲冑) - 갑옷과 투구

     

    정조대왕(正祖大王),

    2품 병조판서(兵曹判書) - 방위대신(防衛大臣),

    3품 장용대장(壯勇大將), 4품 선전관(宣傳官), 5품 교련관(敎鍊官),

    정 7품 좌우 별장(左右 別將), 장교(將校), 초관(哨官)

    9품 기수(旗手), 조총수 9품 별부료군관(別付料軍官) 총사(銃士)

    궁수 9품 별부료군관(別付料軍官) 궁사(弓士)

    포수 9품 별부료군관(別付料軍官) 포수(砲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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