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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당선생초상(阮堂先生肖像)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3. 28. 20:42
완당선생초상(阮堂先生肖像)
우측내용
완당선생초상(阮堂先生肖像)이라는 전서 아래에는
행서체로 쓴 소치허련사본(小痴許鍊寫本)이 써 있어
그림을 그린 이는 소치 허련(1809-1892)이다.
완당 선생 초상/소치 허련 사본/선생께서 돌아가신지
78년 되는 갑자년(1924년) 여름에 오세창이 삼가 씀.
이 글씨를 쓴 이는 위창 오세창(1864-1953)이다.
-좌측내용
발문은 오세창과 같은 시대의 학자 윤희구(1867-1926)가 쓴 것이다.
완당 어른의 초상화는 소치 허련이 그린 것인데...(중략)...
선생의 풍골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을 것이므로 초상화가 없어도 문제될 것은 없다.
초상화를 모시는 사람의 한결같은 존경심이 어찌 겉모습에 그치겠는가?
추사 김정희
완당(阮堂). 추사(秋史). 예당(禮堂). 시암(詩庵). 과파(果坡). 노과(老果). 외에
차를 무척 좋아하여 다로(茶老). 고정실주인(古鼎室主人).
승설차 이름을 본 딴 승설학인(勝雪學人) 등 많은 호를 가지고 있는
서화가이자 문신인 김정희.
추사는 30살에 다산의 아들 유산의 소개로 동갑인 초의를 만나
친교를 두터히 하며 지내며 초의로 부터 해마다 차를 얻어 마셨다 한다.
추사가 제주도에 귀양을 갔을 때
초의가 제주도로 찾아가 같이 지내며 차나무도 심고 참선을 하였다.
추사는 쌍계사의 만허스님에게서 차를 얻곤 했는데
추사의 차 끓이는 솜씨는 일품이었다고 전해진다.
차를 즐기던 그는 차로 인해 학문과 예술의 경지가 한층 더 승화되었다.
신위가 추사와 자주 왕래를 했는데
추사는 이름난 차를 새로 끓일 때 마다 시동을 시켜
신위에게 차를 한 사발씩 보내고 했는데
어느날 차를 보내준 뒤 뒤따라 신위에게 갔다.
추사가 소매에서 시가 적힌 글을 꺼내 신의에게 보여주자
" 당신의 시상이 민첩하고 기묘하여 차를 끓이는 사이에 시 한수를 짓는구려.."
추사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 정말 그렇습니다. 풍로에 부채질 하는 동안 갑자기 지은 시랍니다.."
이렇듯 추사의 시를 짓는 재능 또한 차 끓이는 솜씨에 못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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