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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 경상감영지(大邱 慶尚監營址) - 사적 제538호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3. 23. 19:11

    경상감영공원(慶尙監營公園)

     

     

    節度使以下皆下馬(절도사이하개하마)

     

     

    하마비(下馬碑)

    이 비(碑)는 조선시대 경상감영(慶尙監營)의 정문인 관풍루(觀風樓) 앞에 서 있던 것으로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이하는 말에서 내려 출입하라는 뜻의 표석이다.

    병마절도사란 도(道)의 병권(兵權)을 맡은 책임자로

    대개 종이품관(從二品官)인 관찰사(觀察使)가 겸임하였다.

     

     

    선화당(宣化堂) -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

     

    선화당은 경상감영의 정청(政廳)으로서 대구에

    경상감영(慶尙監營)이 정착하게 된 선조 34년(1601) 이곳에 세운 건물.

    그 후 현종 11년(1670) 영조 6년 (1730) 순조 6년(1806) 세 차례의

    큰 화재로 불탔으나 순조 7년(1807)에 새로 지었고 1970년에 중수하였다.

    이 건물은 현존하는 관아(官衙) 건축이 별로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귀한 가치를 지닌다.

     

     

     

    대구 선화당 측우대

     

    국보 제330호 (2020. 2. 27 지정),

    재료 화강석, 제작연대 1770년(영조46), 기상청 소장.

     

    대구 선화당 측우대는 측우기를 받치는 측우대 중에서 제작연대가 확인된 유일한 것이며,

    1950년 초에 기상청으로 이관되었다.

    이후 선화당에는 측우대만 모형으로 설치되어 있었으나,

    2015년 12월 시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기상청에 소장되어 있는

    측우기(보물 제561호, 금영측우기)를 모형으로 제작 설치하였다.

     

     

    징청각(澄清閣) -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호

     

    징청각은 경상도 관찰사의 처소로서 선조 34년(1501) 경상감영이 대구에 정착하면서

    선화당 등 여러채의 건물과 함께 세워졌다.

    그후 여러차례의 화재로 불탄 것을 순조 7년(1807)에 다시 지었고

    1970년 공원 조성 때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경상도 관찰사 및 대구 판관 선정비(慶尙道 觀察使 및 大邱 判官 善政碑)

     

    이 비석들은 역대 경상도 관찰사 및 대구 판관 등의 선정비로

    대구 향교 및 시내 도처에 산재해 있던 것을 경상감영지로 옮겨 관리하고 있다.

    (영세불망비 13, 청덕선정비 3, 거사비 5, 불망비 2, 송덕비 2, 청덕비 1,

    무흘승도비 1, 선정애민비 1, 위국혜민비 1, 총 29기)

     

     

    대구 경상감영지(大邱 慶尚監營址) - 사적 제538호

     

    조선시대에는 각 도에 관찰사를 파견하여 지방 통치를 맡게 하였다.

    대구 경상감영은 조선후기 경상도를 다스리던 지방관청으로서 관찰사가 기거하던 곳이며,

    선조 34년(1601년)에 설치되었다.

    대구 경상감영지는 경상감영의 중심건물인 선화당과 징청각이 원위치에 잘 보존 되어 있고

    발굴조사 결과 감영지로 확인되었다.

    이곳은 조선후기 관아의 격식과 구성을 잘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문화유산으로 평가 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경상감영 내외로 도로가 만들어지며 그 영역은 현재의 모습으로 크게 축소되었지만

    오늘날도 역사적 공간으로서 변함없는 가치를 간직하고 있다.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로 99 (포정동) 경상감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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