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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정묘(宣靖廟)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3. 31. 20:49

    선성군(宣城君) 

     

    선성군(1392-1460)은 조선조 제2대 정종의 4번째 서자(庶子)로

    숙의 지씨(淑儀 池氏) 소생 둘째 아들이다. 

    성은 이(李), 이름은 무생(茂生). 시호는 양정(良靖)이다. 

    선조 때의 재상 이홍주는 그의 5대손이다. 

    그는 정종성의 딸이자 포은 정몽주의 손녀와 혼인하여 딸 하나를 두었다.

    1계부인인 김중약의 딸과의 사이에서도 1남을 낳았으며, 2계부인에게서 8남 2녀를 보았다.

    1425년(세종 7)에 종3품 중직대부(中直大夫) 정윤(正尹)에 봉해졌으나,

    1427년(세종 9) 학문을 게을리한다는 이유로 직첩을 박탈당하고 황해도 배천으로 유배되었다. 

    훗날 그 본의를 알고 1430년(세종 12) 유배에서 풀려나 종학(宗學)에 나갔다.

    1432년(세종 14년) 원윤(元尹)의 직첩을 받고 1454년(단종 2) 3월에

    중의대부 선성군(宣城君)에 봉해졌으며, 그해 5월에 종친(宗親), 의빈(儀賓), 

    문무백관(文武百官)과 함께 경회루(慶會樓)에서 진풍연(進豊宴)을 열기도 하였다.

    1872년(고종 9) 3월, “증 상보국 숭록대부 영종정경 행중의대부"

    (贈 上報國 崇祿大夫 領宗正卿 行中義大夫)로 추증(追贈)되었다. 시호는 양정(良靖)이다. 

    묘는 남한산성 동북쪽 40km의 거리에 덕봉(현 경기도 하남시 덕풍동)에 있다. 

    덕봉의 남쪽 남향의 등성에 선성군 양정공(良靖公)의 유택(幽宅)이 있다.

     

     

    선정묘(宣靖廟)

     

    선정묘는 조선 정종의 4남 선성군(宣城君)과 배위 3명의 신위를 봉안한 사당이다.

    선성군의 사당은 본래 경기도 파주에 있었으나,

    후손이 끊기면서 서산의 후손들이 그 제향을 대신 맡게 되었다.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는 전주 이씨(全州李氏)의 동족 마을로,

    처음 입향한 인물은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을 지낸 이창주(李昌冑, 1567~1648)이다.

    후손의 전언에 따르면 선성군의 신위는

    파주에서 서울~수원~온양~예산~면천을 거쳐 옮겨졌으며,

    곳곳에서 군인의 호위를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모셔온 신위는 한동안 후손의 집에 임시로 보관되다가

    1928년 선정묘를 건립하여 이안(移安)하였다.

    사당과 외삼문으로 구성된 남향 건물이며 솟을대문으로 들어서면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사당이 있다.

    사당은 2단의 단을 조성한 위에 마룻바닥은 타일을 깔았고,

    4각의 높은 초석에 둥근기둥을 세웠다.

    화려한 다포 양식에 지붕은 양 측면에 방풍판을 대목(帶木)에 의지하여 붙이고,

    판자와 판자 사이에 졸대를 덧대어 붙였다.

    시설이 있는 맞배지붕이다. 동측에 재실인 선미재(宣美齋)가 있다.

     

    * 방풍판 : 맞배지붕에서 비바람을 막기 위하여 붙여 댄 널빤지

    * 졸대 : 좁고 가늘게 쓰는 재료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이문안길 32-9 (여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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