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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미순교자 3위 복자상(海美殉敎者 三位 福者像)
    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21. 5. 16. 19:23

    해미순교자 3위 복자상(海美殉敎者 三位 福者像)

     

    2014년 8월 16일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시복하신 해미순교자 3위 복자상

     

    * 해미(海美)라는 지명을 그대로 풀어보면 아름다운 바다라는 뜻인데

    이 지명은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에서 한 글자씩 따와 생겨난 이름이다.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13 (읍내리)

     

     

    복자(福者) 김진후(金震厚) 비오

     

     

    복자(福者) 이보현(李步玄) 프란치스코

     

     

    복자(福者) 인언민(印彦敏) 마르티노

     

     

    시복기념비

     

     

    김진후(金震厚) 비오

     

    1739~1814. 12. 1, 본관 김해(金海),

    충청도 면천 솔뫼(현 당진 우강면 송산리) 출생, 해미에서 옥사(獄死)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의 증조부,

    면천군수로 재직 중 ‘내포지방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李存昌)에게 감화를 받고 50세 때 입교하였다.

    그 뒤 벼슬을 버리고 신앙생활에 전념하다가,

    1791년 신해박해 때부터 시련을 받기 시작하여 4∼5차례 붙잡혀

    전주·홍주·공주 등의 감옥에서 고문을 받고 배교를 강요당했으나 신앙을 지켰다.

    그러나 1801년 신유박해 때 다시 체포되어 모진 형벌을 받고 배교를 약속하고 유배되었다.

    1805년 귀양에서 돌아온 뒤 배교 약속을 지키지 않아 다시 잡혀 해미감옥에 압송되었는데,

    이때도 끝내 배교하지 않아 10년이 넘도록 옥중생활을 하였다.

    옥중에서도 굳은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주위의 존경을 받다가 1814년 옥사하였는데,

    순교자의 옥중생활 중 제일 긴 기간 동안 갇혀 있었다.

    1816년에는 셋째 아들 한현(漢鉉 혹은 宗漢)이,

    1839년에는 둘째 아들 택현의 아들 제준(濟俊)이,

    1846년에는 제준의 아들 대건이 순교함으로써 32년 동안 4대에 걸쳐 순교자가 나왔다.

     

     

    이보현(李步玄) 프란치스코

     

    1773~1800. 1. 9

    충청도 덕산 황모실 출생, 해미에서 장사(杖死)

    박해로 신자들이 체포되자 날마다 예수의 수난 이야기로 가족과 신자들을 격려하였다.

    1798~1799년에 연산에서 체포되어 1799년 해미 장터에서 몽둥이로 맞고 볼두덩이를

    무참히 맞고서 순교했으나 얼굴에는 웃음을 띠고 있었으며

    이를 직접 목격한 비신자들이 여러명 입교했다고 함.

    “신앙을 고백하고 천국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

     

     

    인언민(印彦敏) 마르티노

     

    1737~1800. 1. 9

    충청도 삽교 용동리 출생, 해미에서 장사(杖死)

    큰돌로 맞아 턱이 떨어져 나가고 가슴뼈가 부서지며 마지막으로 매질을 당하면서 한 말.

    “그렇구 말구, 기쁜 마음으로 내 목숨을 천주님께 바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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