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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선 수행과 국제포교의 중심 사찰, 삼각산 화계사(三角山 華溪寺)
    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21. 6. 2. 04:18

    서울특별시 강북구 화계사길 117 (수유동)

    대한불교조계종 삼각산 화계사

     

    화계사 www.hwagyesa.org/

     

     

    일주문(一柱門) - 삼각산 화계사(三角山 華溪寺)

     

    절에 들어가는 어귀에 우뚝 서 있는 문으로,

    기둥을 양쪽에 하나씩만 세워서(一柱) 지어진 것이 다른 건물과 다르다.

    이 문을 경계로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으로 나뉜다.

    이 문을 들어설 때 오직 일심(一心)에 귀의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화계사 일주문은 1998년에 조성되었다.

     

     

     

    동국대학교 백상원(東國大學校 白象院)

     

    화계사 입구인 일주문 바로 오른쪽에 백상원이 있는데,

    이 건물은 동국대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승(學僧)이

    수행하며 머무는 곳으로 기숙사로 사용하고 있다.

     

     

    三角山 華溪寺 事蹟碑(삼각산 화계사 사적비)

     

     

    북한산둘레길 안내판(화계사 입구)

    흰구름길 구간(白雲路 區間) -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

     

     

    화계사(華溪寺)

    화계사는 고려 광종 때 법인대사 탄문(法印大師 坦文)이 지금의 화계사 근처인

    삼각산 부허동(浮虛洞)에 보덕암(普德庵)을 창건한 것이 시초이다.

    그 후 1522년 보덕암의 신월선사(信月禪師)가 서평군(西平君) 이공(李公)과 협의하여

    보덕암이 있던 부허동 남쪽의 화계동으로 법당 3동과

    스님들의 요사(寮舍) 50칸을 옮겨짓고 화계사라 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9월에는 화재로 인하여 불전과 요사가 모두 전소되는 비운을 겪고 말았으나

    도월(道月) 스님이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가문의 시주를 받아 중창하여

    이듬해인 1619년 3월에 낙성을 보았다.

    1866년(고종 3)에 용선도해(龍船渡海) 스님과 범운취견(梵雲就堅) 스님이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시주를 받아 불전과 승방을 중수하였는데

    현재의 대웅전과 큰방인 화장루가 그것이다.

    1877년(고종 14)에는 왕명으로 황해도의 배천 강서사(江西寺)로부터

    1649년에 조성된 지장보살(地藏菩薩)과 시왕(十王)을 옮겨 왔고,

    이듬해 초암(草庵) 스님이 이 존상들을 봉안하기 위하여 명부전을 중수하였다.

    이후 조대비(趙大妃)와 홍대비(洪大妃) 등의 뜻을 받드는

    상궁의 출입이 잦아 ‘궁(宮)절’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일제강점기에도 꾸준히 사세를 유지하였으며,

    한국전쟁 이후 1964년에 천불오백성전을 건립하는 등 사세가 여전하였다.

    근래에는 1991년 대적광전을 건립하고, 1992년에는 국제선원을 개원하여

    외국인 스님들의 수행처가 되게 하였다.

     

    서울특별시 강북구 화계사길117 (수유동)

    대한불교조계종 삼각산 화계사

     

    화계사 www.hwagyesa.org/

     

     

     

    화계사 국제선원

     

    화계사 국제선원은 사찰 입구 오른편 건물 3층에 있다.

    화계사 국제선원이 1984년 처음 개원했을 때는 요사채 방 하나를 사용하였으나

    사람의 왕래가 잦아 수행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다.

    1991년 대적광전이 건립되고 4층에 재개원하였다가 2010년 옛 백상원 건물로 이전하였다.

    2018년 옛 백상원 자리에 국제선문화체험관 및 템플스테이 숙소 건물이 완공됨에 따라,

    현재 건물 3층 전체를 외국인 수행체험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매년 이곳에서 여름과 겨울 안거를 통해 많은 외국인들이 수행정진 하고 있다.

    그동안 국제선원을 거쳐 간 많은 수행자 중에 200여 명이 승려가 되었는데,

    계룡산 무상사(無上寺) 조실 대봉, 전 주지 대진, 싱가포르 관음선림의 대광,

    LA 국제선원의 무상, 홍콩 수봉선원의 대관 스님 등이

    화계사 국제선원 출신의 대표적인 외국인 승려이다.

    이렇게 화계사에 국제선원이 들어서고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것은 조실 숭산 스님의 노력의 결과이다.

    숭산 스님은 1972년 미국 포교를 시작으로 세계 각국을 돌며 한국의 선불교를 알려,

    서양에서는 달라이라마와 함께 세계 4대 생불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현재 스님이 세운 해외선원만 해도 32개 나라에 120여 곳이 넘는다.

    미국에 처음 세워진 프로비던스 선원(Providence Zen Center)에서는

    1982년에 세계의 종교 지도자들이 모여 세계평화 회의를 열기도 하였다.

    스님의 해외 포교로 한국의 불교가 점차 알려지면서 우리나라로 불교 공부를 하러 오는

    외국인들이 부쩍 늘어나 2000년에는 무상사에도 국제선원을 개원하였다.

    1999년, 숭산 스님에게서 불법을 인가받은 대봉 스님이 조실로 있다.

     

     

     

    범종각(梵鐘閣)

     

    1972년에 조성된 옛 범종각은 특이한 2층 6각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당시 화계사에서 가장 멋진 건물이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노후화로 인한 안전문제로 철거되고 2010년 3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일 목조 건물인 현 범종각이 건립되어

    이 곳에 사물(四物)을 함께 봉안하게 되었다.

    종각에 걸어두는 범종과 법고, 운판, 목어를 불구(佛具) 사물(四物)이라하는데,

    사찰에서 의식의 시작을 알리거나 공양 또는 함께 일할 때 대중을 모으기 위해 사용된다.

     

     

     

    대적광전(大寂光殿)

     

    대적광전은 1991년 정수스님이 조성한 정면 7칸, 측면 4칸의 현대식 복합건물이다.

    비로자나불은 연화장(蓮華藏) 세계에 있는 부처님으로 연화장 세계가 장엄하고

    진리의 빛이 가득한 대적정(大寂定)의 세계이므로 전각 이름을 대적광전이라 한다.

    현재 대적광전 1층은 공양간, 2층은 불교대학 강의실과 스님들의 요사,

    3층은 법당, 4층은 시민선원으로 운용되고 있다.

     

    3층 법당은 대중법회와 불공을 드리는 공간으로 

    내부에는 중앙에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

    좌·우측에 원만보신(圓滿報身) 노사나불과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 석가모니불이

    삼신불을 이루고 있고 뒷면에 각각의 후불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협시보살로는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모셨다.

    동쪽 벽에는 지장보살과 지장보살탱화가 별도로 모셔져 있다.

    불상들은 1991년에 조성되었고 탱화는 1998년에 조성하였다.

     

     

     

    꽃, 과일, 초, 향, 떡 등 공양물 보시

    전각별 십시일반 보시 받습니다.

    접수 및 문의 : 화계사 종무소 02-902-2663

     

     

    부처님께 축원 올리는 화계사 축원방입니다.

    크고 작은 소원을 달아 줄에 묶어 주세요.

    매월 초삼일간 특별기도 후 회향하는 날 불에 실어서 올려드리겠습니다.

    화계사 종무소 종무실장 손모음

     

     

     

    쉼없이 노젓는 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서산대사의 해탈 시

     

    근심 걱정없는 사람 누구인가

    출세하기 싫은 사람 누구인가

    시기질투 없는 사람 누구이며

    흉허물 없는 사람 어디 있겠나

     

    가난하다 서러워 말고

    장애를 가졌다 기죽지 말라

    못 배웠다 주눅들지 말라

    세상살이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보화루(寶華樓)

     

    보화루는 대웅전 앞마당에 있는 큰 건물로 요사(寮舍), 그리고 종무소와 다실로 사용하고 있다.

    큰방은 법회 이외에도 불교대학 강의실 그리고 각 신행단체의 회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이 건물의 마루에서 대웅전을 바라보면 불상이 보인다.

    곧 마루에서 바로 예불을 드릴 수 있도록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건물은 서울 근교의 왕실사찰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보통 대방(大房)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큰방이라는 뜻이다.

    보화루에는 군데군데 현판이 붙어 있는데, ‘보화루’와 ‘화계사’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수제자 위당(威堂)신관호(申觀浩)가 쓴 것이고,

    또 하나의 ‘화계사’ 현판은 1866년 대방을 중수할 때 흥선대원군이 쓴 것이다.

    흥선대원군이 쓴 현판에는 좌측에 두인,

    우측에 ‘대원군장(大院君章)석파(石坡)’라는 방인의 도서2과가 있다.

    글씨는 예서와 해서를 혼용하였고 질박한 느낌을 준다.

     

     

     

    천불오백성전(千佛五百聖殿)

     

    대웅전의 왼편에 자리 잡은 천불오백성전(千佛五百聖殿)은 오백 나한을 모신 전각이다.

    높은 단 위에 설치된 데다가 내부에 많은 나한상을 봉안하고 있어 건물 높이가 상당하다.

    봉안된 조각상은 찬하(餐霞) 최기남 거사가 조성한 것으로, 최기남은 1915년 관직에서 물러나

    금강산에 들어가 조국의 광복을 기원하며 십팔나한상과 천불상, 오백나한상 등을 조각하였다.

    조성한 조각상들을 강남 봉은사와 여주 신륵사에 봉안했다가,

    1964년 최기남의 아들 무방(無方) 거사의 시주로 천불오백성전을 건립하고 이곳에 모시게 되었다.

     

     

     

    삼성각(三聖閣)

     

    불교의 여러 신(神) 중에는 우리나라에서만 믿어오는 신들도 꽤 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산신과 칠성이다.

    산신(山神)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토속신으로 나이 든

    도사의 모습으로 묘사되며 호랑이와 동자를 거느린다.

    칠성(七星)은 기우(祈雨), 인간의 무병장수와 부귀영화를 관장한다.

    칠성은 본래 도교에서 신앙하던 것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민간신앙으로 자리를 잡았다.

    본래 북두칠성을 말하지만, 불교와 융합되면서 치성광여래불(熾盛光如來佛)로 격이 상승되었다.

    치성광여래불의 좌우에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협시한다.
    독성(獨聖)은 남인도 천태산에서 홀로 깨달아 성인이 된 나반존자를 가리킨다.

    희고 긴 눈썹을 가진 도인으로 오른손에는 석장을,

    왼손에는 염주 또는 불로초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 세 신은 본래 별도의 건물에 각각 모시나

    오늘날에 와서는 세 신을 함께 모시고 건물 이름도‘삼성각’이라고 부른다.
    화계사 삼성각은 경내 좌측 언덕에 세워져 있다.

    본래 있던 산신각을 1885년에 금산(錦山)스님이 중수했던 것을

    1975년에 진암(眞菴)스님이 낡은 건물을 고쳐 지은 것이 바로 현재의 삼성각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기와는 동기와를 얹었다.

    내부에는 1973년에 조성한 칠성 탱화와 독성탱화, 산신탱화가 봉안되어 있고

    외부 벽화에는 심우도(尋牛圖)가 그려져 있다.
    산신상은 2011년 당시 한말선(大法性) 신도회장의 원력과 시주로

    주지 수암(秀岩) 스님이 조성 봉안하였다.

     

     

     

    화계사 대웅전(華溪寺 大雄殿)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5호

     

    현재의 대웅전은 1870년(고종 7년) 대덕(大德) 용선(龍善)과

    초암(草庵) 스님이 흥선대원군의 지원을 받아 중수하였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서 지붕 옆면이 여덟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제법 높은 단 위에 세워져 있어 앞마당에서 올려다보면

    지붕의 양쪽이 마치 커다란 새가 날개를 펼친 듯 활력이 있다.

    또한,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놓인 다포 양식 건물이다.

    대웅전은 내부천장의 장식이나 건축 부재의 장식이 모두 조선 후기의

    양식을 보여주는 목조건축물로 1986년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5호로 지정되었다.

    대웅전 외벽에는 석가모니불의 일생을 표현한 <팔상성도>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정면 문 하단에는 연꽃 문양이 그려져 있다.

     

     

     

    범종(梵鍾)

     

    사물은 각각의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

    범종은 땅속 특히 지옥에 있는 중생들을 제도(濟度)하고, 법고는 가축과 짐승을,

    그리고 목어는 수중생물, 운판은 날아다니는 짐승을 제도한다.

    그래서 사물을 모두 치는 것은 이세상 모든 중생들에게 부처의 법음(法音)을 들려주어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세계로 인도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현재 동종과 함께 걸려 있는 대종은 진암(眞菴)스님이 1978년에 조성하였다.

    이러한 사물을 한 곳에 모아두는 곳이 범종각인데, 본래부터 이렇게 한곳에 모아둔 것은 아니다.

    제법 규모가 큰 절에서는 종은 종각에, 법고는 법고각에 걸어두고,

    운판은 공양간 입구에, 목어는 법당에 걸어두고 사용했다.

    종각도 없고 법고각도 없는 소규모 절에는 법당이나 요사 등 적당한 곳에 걸어두기도 한다.

    절의 규모가 커지면서 사물을 따로 봉안하는 건물이 세워진 것이다.

     

     

    동종(銅鐘) - 보물 제11-5호

     

    범종각에 걸려 있는 조그마한 종으로 크기는 작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유물이다.

    본래 경북 희방사에 있던 것을 1898년에 화계사로 옮겨왔다.

    종에 새겨진 명문에 따르면 1683년 사인 스님에 의해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무게는 300근에 달하며, 2000년 2월 15일에 보물 제11-5호로 지정되었다.

    이 종은 가장 윗부분인 용뉴에 쌍룡(雙龍)을 배치해놓은 것이 특징이다.

    상대에는 범자(梵字)를 2줄로 배치하여 장식하였고

    그 바로 아래에는 조선 후기 양식을 지닌 유곽이 있다.

    유곽대는 도식화된 식물무늬로 채우고 유곽 안에 있는 9개의 유두는

    여섯 잎으로 된 꽃받침 위에 둥근 꽃잎을 새겨 넣었다.

    하단에는 가는 두 줄의 띠를 둘렀고 띠 안에 연꽃을 새겨놓았다.

    사실성과 화사함이 돋보이는 수작일 뿐 아니라 승려가 공명첩을 가지게 되었다는

    당시의 사회상을 알려주는 명문이 남아 있어 종 연구와 더불어 사료로서 가치가 크다.

     

     

    미륵석불전(彌勒石佛殿)

     

    미륵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 열반 후 56억 7000만 년 뒤

    이 사바세계가 인간의 수명은 8만4000세요 지혜와 위덕이 갖추어져

    안온한 기쁨으로 가득차 있는 이상적 국토로 바뀐 세계에 출현하시는 부처님이다.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고 3회에 걸쳐 사제, 십이연기 등의 법문을 설하여

    뭇 중생들을 제도하니 이것이 용화삼회의 설법이다.

     

    미륵불신앙은 미륵불이 출현하는 국토의 풍요로움과 안락함에 대하여 설함으로써

    중생에게 죄악의 종자인 모든 업장과 번뇌의 장애를 끊고 자비심을 닦아

    미륵불의 국토에 태어나도록 하자는데 그 깊은 진의가 있다.

    이 미륵불에 대한 신앙은 삼국의 불교 전래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널리 신봉되었다.

     

    2015년 11월 미륵존불 조성을 결의한 이후 2017년 12월 3일 복장물 봉안법회를 가졌으며,

    2018년 12월 7일 점안법회를 봉행하였고, 2019년 5월 5일 12존불 안치

    7일 특별기도 입재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밝은 햇살 아래 동쪽을 향해 편안하게 앉아 계시는 화계사 미륵부처님은

    우리가 소원하는 바를 무엇이든 언제까지든 들어주실 것만 같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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