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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경루(讚慶樓) - 보물 제2049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6. 24. 04:29
송백강릉(松栢岡陵)
원래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쓴 "송백강릉"이란 액자는 화재로 불타고
지금 걸려있는 "송백강릉" 액자는 1792년(정조 10년)에
부사 한광근의 아들 한철유가 쓴 것이다.
松栢岡陵은 소나무와 잣나무처럼 늘 푸른 산등성이를 뜻한다.
소헌공원관리사
靑松沈氏事蹟碑(청송심씨사적비)
普光祭閣(보광제각)
맞은편에 청송심씨 시조 할아버님 심홍부(沈洪孚) 묘소가 있는
보광산(普光山)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으로 장마철 홍수(洪水) 등 용전천의 범람으로
묘소로 갈 수 없을 때 이곳에서 망배(望拜)로 향사(享祀)를 받들어 왔다.
시조 심홍부(沈洪孚)는 고려 충렬왕 때 문림랑(文林郞)으로 위위시(衛尉寺)에서 승(丞)을 역임했다.
문림랑(文林郞)은 종9품의 문관 계급이며,
위위시(衛尉寺)는 궁중(宮中)에서 의전(儀典)업무를 관장하는 관청의 명칭이고,
승(丞)이란 종6품의 벼슬이다.
그의 생몰연대나 사적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없어 알 수가 없다.
찬경루(讚慶樓) - 보물 제2049호
찬경루는 세종 10년(1428년)에 청송군수였던 하담(河擔)이 2층 16칸으로 세운 누각(樓閣)이다.
조선시대 때 누각은 객사(客舍)와 이웃하여 있으면서,
사신(使臣)들을 위한 연회(宴會)나 지방 유생(儒生)들을 위한 백일장 장소로 사용되었다.
숙종 14년(1688)에 손보고 고쳤으며, 화재로 인해 불타서 없어진 것을
정조 16년(1792)에 다시 일으켜 세우는 등 여러차례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2008년에 건물을 다시 고치고 단청(丹靑)도 새로 하였다.
경상도 관찰사 홍여방(洪汝方)이 찬경루에 대해 쓴 문서에는
“지금까지 왕후와 왕족이 끊이지 않는 복을 누리고 있으니 이 누에 올라 그 묘를 바라보면
저절로 우러러 찬미하게 되어 찬경(讚慶)이라 이름 지었다.”라고 하는 기록이 있다.
이렇듯 찬경루라는 이름은 청송심씨 가문에서 소헌왕후(昭憲王后)가 탄생하였고,
이 누각이 청송심씨 시조 묘소를 바라보고 있음에 따라 ‘우러러 찬미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건물 내 사분합문 위쪽에는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安平大君)이 쓴
‘송백강릉(松栢岡陵)’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었으나 화재로 불타서 없어졌다.
지금은 정조 16년(1792)에 부사 한광근(韓光近)의 아들
한철유(韓喆裕)가 쓴 송백강릉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다.
건물 안에 조선시대 때 명성을 떨치던 서거정(徐居正), 김종직(金宗直),
송시열(宋時烈), 홍성민(洪聖民) 등이 남긴 시문이 보관되어 있다.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금월로 269 (월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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