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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엔군 초전기념관
    국내 나들이/기념관(記念館) 2021. 8. 5. 04:06

    유엔군 참전의 교훈

    Lessons from the UN Forces Participation

     

    6 · 25전쟁은 유엔 헌장을 위반한 침략의 주범인 북한을 비롯한 공산국가에 대해

    "다시는 지구상에서 이러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유엔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응징 차원의 전쟁이었다.

    대한민국이 오늘날 경제대국, IT강국, 문화대국으로 발돋움하며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6 · 25전쟁 때 유엔의 즉각적인 조치와 21개 자유 우방국의 헌신적인 지원,

    그리고 낯선 땅 위에서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한 4만여 명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는 유엔이 항구적인 평화를 구현할 수 있는 국제 평화 기구로서의 권위를 드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고, 아울러 유엔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기사회생한 대한민국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일원으로서 계속 남아 국제 평화에 기여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Thanks Task Force Smith

    We express our thanks to the brave soldiers of

    Task Force Smith who fought for the freedom and peace of this country.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우신

    스미스 특수부대 용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원, 그들을 기원합니다.

    Task Force Smith, We remember them

     

     

     

     

    유엔을 통한 물자지원국 현황(1950.7~1956.6)

     

     

     

     

    6.25전쟁 인명 피해현황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원들의 소중한 흔적들

     

     

     

     

    스미스 부대의 참전

     

    유엔의 확고한 전쟁방지 의지를 처음으로 실천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죽미령 전투에서 참전했던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미8군 제24사단 21연대 1대대와

    제52포병대대 A포대를 주축으로 편성된 부대로 일본 규슈에서 훈련을 받던 중 한국으로 파병되었다.

    7월 1일 부산의 공항에 도착한 스미스 부대는 2일 대전에 도착하여 5일 새벽 죽미령에 도착하게 된다.

     

     

     

     

    스미스특수임무부대

     

    1950년 7월 5일, 6 · 25전쟁에 최초로 투입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미 제8군 제24사단 제21연대 제1대대와 제52포병대대를 주축으로 편성된 부대로,

    대대장인 찰스 스미스 Charles B. Smith 중령의 이름을 따서 스미스 부대로 알려져 있다.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의 결성

     

    1950년 6월 30일 저녁, 캠프우드의 스미스 중령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제21연대장인 리차드 스테판 Richard W. Stephans 대령이였다.

    리차드 스테판 대령은 스미스 중령에게 "즉시 CP(command post : 지휘소)에 보고하라"고 명령하였다.

    스테판 대령은 스미스 중령에게 그의 대대를 인솔하여 이타즈케 공군 기지로 갈 것을 명령하였다.

    이렇게 하여 스미스 특수임무부대가 출동하게 되었다.

     

     

     

     

    한국 군사원조에 관한 유엔결의문

     

    Resolution by the UN Security Council of Military Assistance to the Republic of Korea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군대의 대한민국에 대한 무력 공격을 평화의 파괴행위로 규정하고,

    북한당국에게 전투를 즉각 중지하고 그들의 군대를 즉시 38도선으로 철수시킬 것을 촉구하였다.

    우리는 유엔 한국위원단으로부터 북한당국이 전투를 중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군사적 조처가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받았다.

    이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대한민국이 평화와 안전을 보장할 효과적인 조처를 즉각 취하여

    줄 것을 유엔에 호소하였음을 감안하여, 무력침략을 격퇴하고, 그 지역에서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원조를 제공하여 줄 것을 유엔 회원국에게 권고한다.“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보낸 병력요청 편지

     

    6 · 25전쟁 개전 직후인 1950년 7월 8일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병력 지원을 요청한 친필 편지이다.

     

    김일성 친필 서한 번역본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각료회의 대표인 스탈린 동지에게 스탈린 동지께선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한 투쟁에 도저히 측량할 수 없는 큰 도움을 주셨기에,

    심심한 사의와 경의를 표하는 것을 받아주시길 청합니다.

    우리 민족이 미제국주의자에게서 벗어나도록 조력을 아끼지 않는

    스탈린 동지의 충심에 감사드리며, 나는 동지께 25~35명 정도의 소비에트 무관을

    북한 인민군 사령부에서 활용할 수 있기를 간곡히 청합니다.

    이는 아직 우리 군의 지휘부가 현대적 병력 운용법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충복, 북한 각료회의 대표

    김일성. 평양시

     

     

     

     

    전쟁 고아들 (1953년)

     

     

     

     

    이발을 하고 있는 전쟁 고아들(1953년)

     

     

     

     

    유엔군 초전기념관

     

    6 · 25전쟁 당시 북한의 침략에 맞서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싸운

    유엔군의 첫 전투를 알리고 이곳 죽미령에서 장렬히 산화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원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습니다.

     

     

     

     

    적진과 마주친 참호에서 경계근무 중인 미 제27연대 병사(1952. 8. 10)

     

     

    경기도 오산시 경기대로 742 (외삼미동)

    유엔군 초전기념관 www.osan.go.kr/osanUn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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