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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인이씨(龍仁李氏) - 대전 뿌리공원
    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21. 11. 29. 04:08

    용인이씨(龍仁李氏) 유래(由來)와 위상(位相)

     

    우리 용인이씨는 길권(吉卷)님을 시조로 고려 초에 개성(開姓)하여

    그 후손들이 일천여 년 간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하면서

    명문의 맥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적 충효우(忠孝友)의 가문이다.

    시조님께서는 용인의 토호(土豪)로서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공을 세워

    구성백 삼한벽상공신 삼중대광 태사(駒城伯 三韓壁上功臣 三重大匡 太師)의 벼슬에 오르셨고

    사후에는 조정에서 그의 공을 기려 안의(安毅)의 시호를 내리고 그가 살던 용인을 본관으로 삼게 하였다.

    고려 말에 이르러 중인(中仁) 중시조님께서는 문하시중 구성부원군(駒城府院君)이셨으나

    고려가 망하자 장남·장손과 함께 삼대불사(三代不仕)의 고결한 충절을 지켜

    절신의 사표(師表)가 되심으로써 후손들이 올리는 시향 외에도

    의정부시 민락동의 송산사(松山祠)와 파주 탄현 소재 고려대전(高麗大殿)에서

    그의 정충대절의 얼을 기리는 추모제향을 각기 매년 봉행해 드리고 있다.

    용인이문은 조선조에서 대과에 86인이 급제하는 등으로 더욱 융창 발전하여

    3 정승(政丞), 17 판서(判書) 등 명공거경(名公巨卿)과 수많은 고관대작(高官大爵)이 배출되어

    명문 중 명가반열에 오른 대표적 청요직(淸要職) 가문이 되었다.

    한편 신사임당(申師任堂)의 어머님 되시는 용인이씨(1480~1569)는 효녀이고 열부(烈婦)로서

    그의 딸을 오만 원 권 화폐의 주인공으로 탄생(誕生)시키셨고, 외손자 율곡 이이(栗谷 李珥)의

    대성(大成)에 지대한 공헌 등으로 우리 문중이 낳은 현모양처의 참 여인상이 되셨다.

    따라서 조선 제22대 정조대왕(正祖大王)께서

    “용인이씨는 가계가 오래되고 이름난 조상들의 음덕으로 대대로

    고관대작의 벼슬 등이 끊이지 아니하니 과연 대성(大姓)이로다.”라고

    극찬한 것은 우리 용인이문의 큰 자랑이라 할 것이다.

     

    2015. 10

    용인이씨 대종회

     

    대전광역시 중구 침산동 364 뿌리공원 內

     

     

    중시조 찬탄시(中始祖 讚嘆詩)

     

    쓸쓸하고 적막한 두문동(杜門洞)에는 외로운 충성만이 해와 별과 같이 빛나고

    벼슬을 사양하고 절개를 지키니 천추(千秋)에 방명(芳名)을 떨치었네.

    고려말 유신(高麗末 遺臣)

     

     

    작품명 : 비상(飛翔)

     

    조각가 : 백승업(白承業)

    작품 설명 : 용인이씨의 전통적인 충효우(忠孝友)의 얼을 봉황(鳳凰)이 감싸 안고

    무한한 우주공간 속으로 날아오르려는 형태.

     

    서필가(書筆家) : 한국서예박물관 관장 槿堂 梁澤東(근당 양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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