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정나씨(安定羅氏) - 대전 뿌리공원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21. 11. 27. 04:14
안정나씨 문중 유래(安定羅氏 門中 由來)
안정나씨 시조는 고려 공민왕 때 삼중대광 문하시중(三重大光 門下侍中)을 지낸 나천서(羅天瑞)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공민왕 19년 이성계와 더불어 북녘 동령부(東寧府)를 평정하고
군량미 부족으로 굶주린 병사를 진무(鎭撫) 나천서가 수백석 곡식을 구하여 구제했고
기울어져가는 국운을 바로 잡으려고 진력한 공으로 안천군(安川君)과 안정백(安定伯)에 봉군되고
경상북도 안정현을 식읍지(食邑地)로 받으므로 나주에서 안정으로 이관하여 안정나씨 시조가 되었다.
고려의 국운이 다함에 나천서는 아들 합문지후직경(閤門祗侯直卿)과 함께 안정현으로 내려와
야은 길재(冶隱 吉再)와 더불어 금오산에 은거하며 고려의 재상으로서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켰으므로
두문동서원(杜門洞書院) 충북 청원의 홍양사(鴻陽祠)에 배향되었다.
사대를 독자로 내려오다가 오세 유선(裕善)이 세 아들을 두어
맏아들 한성참군 계종(繼宗)의 후손을 경파, 둘째 아들 청산현감 연종(連宗)의 후손을 회덕파,
셋째 아들 경흥도호부사 사종(嗣宗)의 후손을 청주파라 하는데,
경흥도 부사 사종은 여진족의 남침을 죽음으로 막아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충정(忠貞)의 시호를 내렸다.
위 삼파의 후손으로 명종 때 장음정 나식(長吟亭 羅湜)은 문장기절이 높고,
정음나숙(淨陰羅淑)은 홍문관 부제학으로 청백리로서 형제분이 을사명현이고
구포 나만갑(鷗浦 羅萬甲)은 병자호란 때 명신으로 증 좌의정이며,
숙종 때 명촌 나양좌(明村 羅良佐)는 도학이 깊은 의인이었다.
안정나씨는 청반(淸班)으로서 절의를 숭상하고 충효에 힘써
시조공의 의로움을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이어왔다.
시조의 묘소는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안정리 해망산(海望山) 계좌지원(癸坐之原)에 있다.
대전광역시 중구 침산동 364 뿌리공원 內
작품명 : 몸과 지체
조각가 : 나상길
제작자 : 보령석재
작품 설명 : 두 개의 기둥과 연결된 가지는 조상과 자손의 관계를 뜻하며
이는 몸에 연결된 신체의 각 부분인 지체를 상징한다.
곧게 뻗은 두 기둥은 충정과 기상의 상징이며
두 개의 둥근 가지는 자손들의 연합과 원만한 성품을 나타내었고
앞뒤에 모두 한글로 나자를 형상화하였다.
서기 1997년 9월 세움
'국내 나들이 > 공원(公園)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인이씨(龍仁李氏) - 대전 뿌리공원 (0) 2021.11.29 봉화금씨(奉化琴氏) - 대전 뿌리공원 (0) 2021.11.28 사천목씨(泗川睦氏) - 대전 뿌리공원 (0) 2021.11.26 나주정씨(羅州丁氏) - 대전 뿌리공원 (0) 2021.11.25 무송유씨(茂松庾氏) - 대전 뿌리공원 (0) 2021.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