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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적, 충청남도 기념물 - 천안 유관순 열사 유적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2. 6. 21:11

    사적, 충청남도 기념물 - 천안 유관순 열사 유적(天安 柳寬順 烈士 遺蹟)

     

    천안 유관순 열사 유적은 유 열사가 태어나 자란 집과 아우내 만세운동의 시작을 알린 봉화터이다.

    현재 이곳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유관순 열사는 1902년 12월 16일에 태어났으며, 이화학당에 다니던 중

    서울의 3.1운동에 참여했다가 고향으로 내려와 1919년 4월 1일 3천여 명이 참여한

    충청지방 최대의 독립만세운동인 아우내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일제의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 갇혔지만

    그 안에서도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모진 폭행과 고문을 받았고, 결국 1930년 9월 28일 순국하였다.

    아우내 3.1운동 사적지에는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추모각과

    구미산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비가 있다.

    이곳에서는 유 열사를 비롯해 아우내 만세운동을 함께 이끌었던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소중한 뜻과 역사적 의의를 기리고 있다.

    정부에서는 유관순 열사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2019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追敍)하였다.

    * 추서(追敍) : 생전에 큰 공을 세워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덕망을 갖춘 사람에게 훈장을 주는 일.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생가길 18-2 (용두리)

     

     

     

    안방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대하여 논의하는 모습을 가상 연출하였다.

     

     

     

     

    건넌방

    유관순 열사가 집에서 태극기를 제작하였다고 기록된

    경성복심법원 재판 기록문에 근거하여 연출하였다. 태극기는 1919년 당시의 태극기이다.

     

     

     

    3.1운동 당시의 태극기

     

    1919년 3.1 운동 당시 만세시위에서 사용한 태극기이다.

    그때의 태극기는 지방마다 모양이 다르게 그려졌다.

    태극기 제작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1949년 10월 15일에 국기 제작법을 제정하여 현재의 태극기로 확정하였다.

     

     

     

    현재의 태극기

     

    태극기의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그리고 전통적으로 평화를 상징하는 우리의 민족성을 나타내고 있다.

    가운데의 태극 문양은 음(파랑)과 양(빨강)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이다.

    건곤감리(乾坤坎離)의 4 괘는 음과 양이 서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형상화하였으며

    태극을 중심으로 통일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유관순 기념 기독교 대한감리회 매봉교회

     

    유관순 열사가 어려서부터 다녔다는 매봉교회가 생가 옆에 있다.

    매봉교회는 1908년 설립되었다가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일제에 핍박을 받아 1932년 폐쇄되었다가

    1967년 유관순 열사의 모교인 이화학당의 창립 80주년을 기념하여 재건립되었다.

    현재 건물은 1998년 기독교 대한 감리교회 남부연회의 후원으로 새롭게 지어진 것으로

    지하 1층 지상 2층의 건물로 1층에는 유관순 열사의 전시관이 있다.

     

     

     

    류관순 女 옥사 <8호 감방의 노래>

     

    진중이 일곱이 진흙색 日服(일복) 입고

    두 무릎 꿇고 앉아 主(주)님께 기도할 때

    접시 두 개 콩밥 덩이 창문 열고 던져줄 때

    피눈물로 기도했네!

    피눈물로 기도했네!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산천이 동하고

    바다가 끓는다.

     

     

     

    한민족 공동체 中部(중부), 동심원, 류관순 서원

     

     

    열사 유관순(1902~1920)

     

    대한독립만세!

    오오 하나님이시어 이제 시간이 임박하였읍니다.

    원수 왜를 물리쳐 주시고 이땅에 자유와 독립을 주소서

    내일 거사할 각 대표들에게 더욱 용기와 힘을 주시고

    이로 말미암아 이 민족의 행복한 땅이 되게하소서.

    주여 같이하시고 이 소녀에게 용기와 힘을 주소서

     

     

     

    광고물(홍보물)을 붙일 장소가 그렇게도 없었을까?

    유관순 그림 양 어깨 주변에 광고물을 ~~~ (천안역 광장에서)

     

     

     

    3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옥 속에 갇혀서도 만세 부르다
    파란 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불러봅시다
    지금도 그 목소리 들릴듯하여
    푸른 하늘 우러러 불러봅니다.

     

     

     

    유관순 열사 생가 비문(柳寬順烈士 生家 碑文)

     

    천년에나 한 번씩 나타나는 크고 빛난 별이 바로 이곳에 내려와

    일천구백이 년 양력 십이월 십육일에 유관순으로 태어났다.

    유관순은 별처럼 밝고 총명하고 씩씩한 처녀로서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의 교훈 아래

    어려서부터 효성과 신념이 강하였고 형제와 친구에게도 우애가 남달리 두터웠다.

    관순은 서울 이화학당에서 배우는 동안에도 성실한 모범생으로 이름이 높았다.

    기미년 거국적인 삼일 독립운동을 보고 고향에서 거사할 것을 결심하고 고향인 지령리로 돌아왔다.

    이십 여일을 돌아다니며 교회, 학교, 유림의 대표들을 만나 취지를 설명하고

    거사의 장소와 시일을 약속한 다음 마침내 음력 이월 그믐날 밤에

    관순은 매봉에 올라 내일을 알리는 봉화를 높이 들었다.

    양력 사월 일일 정오에 아우내 장터에서는 나라의 주권을 외치는

    수천 명의 만세소리가 태극기의 물결과 함께 천지를 흔들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관순의 부모와 수십여 명의 열사들은 즉석에서

    저들의 총칼 아래 충혼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이어 관순도 체포되어 일본 헌병의 손아귀에서 갖은 악형을 당했으나

    추호도 굴하지 아니하였으며 마침내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삼 년형을 받았다.

    그리하여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하면서도 밤낮없이 옥중 투쟁을 계속하다가

    일천구백이십 년 구월 이십팔 일 크고 빛난 우리의 별은 이 땅 위에서 빛을 거두고 말았다.

    그러나 그 별은 이 하늘에 떠있어서 영원히 겨레의 별이 된 것이다.

     

    서기 일천구백칠십칠 년 팔월 일일 세우다.

    박화성 짓고, 이철경 쓰다.

     

     

     

    낙우송(落羽松)

     

    낙우송과 낙우송속에 속하는 2종의 침엽수.

    북아메리카 남부지방의 늪지대가 원산지이며 관상용이나 목재를 얻기 위해 널리 심는다.

    경제적으로 중요한 식물인 낙우송은 영어로는 볼드 사이프러스(bald cypress) 또는

    스왐프 사이프러스(swamp cypress)로 부른다.

    낙우송속 식물로는 현재 전 세계에 걸쳐 3종만이 자라고 있다.

    이중 우리나라에는 미국산 낙우송을 널리 심고 있는데, 깃털처럼 생긴 잎이

    가을에 황갈색으로 단풍이 들어 낙엽처럼 떨어지기 때문에 낙우송이라고 부른다.

    주로 물기가 많은 곳에 심고 있다.

    자료 출처 : 다음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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