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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양천씨(潁陽千氏) - 대전 뿌리공원
    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21. 12. 29. 04:09

    작품명 : 昇天 鶴(승천 학)

    조각가 : 崔召東(최소동)

     

     

     

    영양천씨(潁陽千氏) 성(姓)의 유래(由來)

     

    시조는 명나라 건국 초기의 승상공 천암(千巖)이시다. 창성은 공께서 출생하시었던

    천고봉(千古峰) 만인암(萬刃巖)[현 중국 사천성(四川省)]에 연고 되고 원나라 때이다.
    본관은 영양(潁陽)이니 공이 노후에 정주한 이래로 세세로 전가된 현 하남성 등봉현이다.
    우리나라의 영양천씨(潁陽千氏)는 9세조이신 사암 충장공 천만리(思庵 忠壯公 千萬里) 장군을

    중시조로 모시고 400년의 종사가 찬연하게 이어져 온다.

    중시조님은 임진전란 때 명나라 구원군 조병영량사(調兵領糧使)로

    양차에 출정하셨던 구국의 명장이시다.

    그 공적을 선망하여 부산(釜山)의 자성대에 천만리(千萬里) 장군 비(碑)를 관민이 건립하였다.
    정유 출정 때 상(祥)과 희(禧) 두 아들을 대동하였고, 개선 귀환의 영예를 마다하고 한성에 귀화하였으니

    이는 장차 명망 청건(明亡淸建)의 정세 통찰과 우국 지조의 결연한 결단이었다.

    조선조에서 화산군(花山君)을 봉하고 충장(忠壯) 시호를 내리는 등,

    전공과 위덕을 기렸으나 병자호란 이후 친명 배청(親明背淸)의 보복적인 박해 와중에서

    음둔 산거의 고초를 겪었던 암흑기의 종사로 이어져야만 했다.

    남원의 환봉산(環峰山)에 묘소가 봉안되었음은 공의 전투 시의 유언에 따랐음이고

    고성(固城)에 종가가 이룩되었음은 장자의 추원 성심과 음둔책에 기인하였다.
    천씨(千氏)의 종사(宗史)는 임진란에서 비롯됨으로써

    우리나라 근대 수난사와 궤적을 함께 하면서 성족의 면모들이 날로 부각되어 온다.

    추원 성심이 유달라 각지에 사원(祠院)이 건립되어 남원 환봉(南原 環峰),

    고성 호암(固城 虎岩), 청도 황강(淸道 皇岡), 문경 노양(聞慶 魯陽), 진양 만첨(晉陽 萬瞻),

    안동 동산(安東 東山), 울산 화정(蔚山 花亭)에 향사하고 있다.
    조선조 때 화산군 충장공(花山君 忠壯公) 등, 나라의 은전과 시혜를 입었음에도

    이를 누린 바가 없이 오히려 박해를 당했으나 오늘의 성족으로 면모가 돋보이게 됨은

    혈맥 속에 깃든 조상의 고고한 지조와 자긍심의 소산 이리라.
    戊寅年(1998년)

     

    대전광역시 중구 침산동 364 뿌리공원 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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