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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손돌목 돈대(孫乭項 墩臺)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2. 29. 20:09
강화해협 건너편의 손돌 묘(김포)가 있는 덕포진 - 손돌목
콜로라도 함상의 수자기(帥字旗)
수자기를 최초로 끌어내린 퍼비스 일병(왼쪽)과
그를 도운 브라운 상병(오른쪽)이 총을 짚고 서 있다.
당시 노획된 수자기는 현재 강화역사박물관 수장고에 보관 중이다.
점령당한 후 손돌목 돈대와 조선군 시체들(1871. 6. 11)
신미양요 기간 동안 조선군과 미군이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은 광성보였다.
특히 손돌목 돈대는 조선군 사령관인 중군 어재연 장군이
직접 지휘하며 격렬하게 반격을 가하던 요새로써
미군 측에서는 맥키(Hugh Mckee) 해군 중위와 두 명의 수병이 전사하고,
조선 측에서는 어재연 장군을 비롯한 대부분의 조선군이 장렬히 전사한 곳이다.
흰옷 차림릐 조선군 전사자 시체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는 모습이 처참하기 그지없다.
광성보 전투 후 부상당하여 포로가 된 콜로라도함상의 조선인 군사들과
이들을 인수하기 위하여 승선한 조선인 관리(官吏)
광성보 전투에서 부상당한 채 붙잡힌 포로들은 약 20명이었는데
기함 콜로라도(Colorado) 호에서 치료를 받은 후
1871년 6월 14일 조선측에 9명이 인도되었고,
나머지는 함상에 남아 치료를 계속 받았다.
손돌목 돈대(孫乭項 墩臺)
손돌목 돈대는 조선 숙종 5년 (1679년)에 축조된 돈대로
원래 돈대 중앙에 3칸의 무기고(武器庫)가 있었고, 포좌(砲座) 3개가 있었다.
돈대 넓이는 778㎡에 성곽 길이가 108m이다.
고종 8년(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 때 미국 해군과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던 현장이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강화 광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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