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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의 명화 - 이삭 줍기, 만종
    국내 나들이/미술관(美術館) 2022. 1. 11. 19:17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cois Millet, 1814~1875)

     

    밀레는 프랑스의 노르망디 작은 마을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미술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어 틈틈이 그림 공부하면서 화가의 꿈을 키워 갔다.​

    1838년, 파리국립미술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으나 교과과정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루브르 박물관의 명화들을 모사하면서 홀로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아는 사람들에게 초상화를 그려 팔면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던 그는 1848년,

    살롱전에 <키질하는 농부>를 출품, 이로 인해 국가의 공식적인

    작품 주문까지 받게 되어 조금씩 생활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때 파리에 콜레라가 돌자 이를 피할 겸 가족들과 함께

    파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조용한 시골 마을인 바르비종으로 이주,

    그곳에서 아름다운 농촌 풍경과 농민들의 성실하고 소박한 모습을 즐겨 그렸는데,

    이런 모습을 화폭에 담는 것이 더욱 진실되고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결과 자연주의 화가로서 ‘이삭줍기’, ‘만종’ 등과 같은 유명한 작품을 남기게 되었다.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안면대로 3175-7 (승언리) 오마이 갤러리

     
     
     
     

    이삭 줍기(The Gleaners) - 1857년 작품

     

    밀레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상당히 오래전부터 계획한 흔적을 보여 주고 있는데,

    특히 많은 데상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농민화 가운데서도 비교적 주제가 뚜렷한 것으로,

    어떤 점에선 밀레의 사상의 단면을 보여 준다고까지 할 수 있다.

    허리를 굽혀 이삭을 줍고 있는 두 여인과 그 오른편에 약간 허리를 굽힌

    한 여인의 배치가 주는 견고한 짜임새와, 세 여인이 지니는 양감이

    먼 지평의 배경을 통해 더욱 리얼하게 전달되고 있다.

    농민 가운데 가장 하층의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다룬 이 작품은

    바로 그러한 견고한 인물의 설정 때문에 일종의 사회적 향의의

    성격을 띤다고 비평가들은 말하고 있다.

    밀레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1857년 살롱에 출품되었던 작품이다.

     

     

     

     

    만종(晩鐘, The Angelus) - 1857~1859년 작품

     

    '이삭 줍기'와 함께 밀레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

    밭에서 일을 끝내고 저녁 종이 울리는 가운데 부부가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이 장면은,

    단순히 노동에서 오는 기쁨뿐만 아니라 삶의 진실과 기쁨을 전해주고 있어

    쉽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수 있었다.

    먼 지평선에 황혼이 물들어 가고,

    이 빛을 받은 부부의 경건한 자세는 종교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종교화의 새로운 양식이라고 칭송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작품은 처음 1천프랑에 국외로 팔려 나갔으나,

    많은 사람의 손을거쳐 다시 프랑스로 팔려 왔을 때는

    800배가 되는 80만 프랑으로 올랐다는데도 이 그림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1906년에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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