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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주교 되재성당지(升峙聖堂址, 승치성당터)
    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22. 1. 30. 20:11

    드망즈 주교가 찍은 사진 (1911년)

     

     

     

     

    되재성당

     

    박해가 시작되면서 전국 신도들의 피난처가 되었던 고산 지방에 본당이 설립된 것은 1891년이었다.

    초대 본당 신부인 우도(오) 신부는 차돌박이에 부임하여 성당을 설립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나

    1893년 비애모(우) 신부가 부임하여 1894년 정월 되재에 정착하여 성당 공사를 착공하였다.

    그러나 동학농민전쟁으로 1895년 가을에서야 완공하였고,

    1896년 11월 1일, 모든 성인의 대축일, 뮈텔 주교에 의해 축성식을 가졌다.

    성당 건물은 한국가옥의 전통양식인 팔작 기와지붕의 목조와가로서 400명을 수용할 수 있었으며,

    한강 이남에서는 첫 성당 건물이었다.

    1906년 베르몽(목) 신부는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신성학교를 설립하여,

    1908년 태극계명학교로 개명하고, 태극계명학교 측량강습소를 열어 측량기술요원을 양성하였다.

    되재본당은 1929년 진산 지방리 본당을 세웠고, 이를 발전시켜 1935년에 금산 본당을,

    1942년에 수청 본당을 분리 신설하였다.

    1944년에는 도시화 현상으로 교세가 감소하여 수청리 공소로, 다시 고산본당 소속 공소가 되었다.

    되재성당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 병화를 입어 전소되고,

    1954년 다시 그 자리에 공소강당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되재성당지(升峙聖堂址, 승치성당터)

     

    되재성당은 1895년에 세워진 최초의 한옥 성당으로

    서울 약현동성당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진 성당이다.

    초기 성당의 모습은 제8대 조선 대목구장이었던

    뮈텔 주교(Gustave Charles Marie Mutel, 閔德孝)의 일기에 그려진 도면과

    제1대 대구 대목구장 드망즈 주교(Fiorian Demange, 安世華)가 찍은 사진 자료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바실리카 교회 건축양식을 한식 목구조에 적용한 한옥 성당이었다.

    단층 한식 목구조 건물로 기와를 얹은 팔작집이었으며,

    평면은 정방형인데 제단과 출입구를 나란히 배치하여 제단을 향하는 공간의 깊이를 확보하였다.

    또한 남녀를 구분하는 당시 풍습에 따라 출입문을 따로 내고 내부 중앙에 가림막을 설치하였다.

    성당의 부재는 논산 쌍계사의 부재를 사용하였다.

    이처럼 되재성당은 서양 문화가 한국에 들어와 정착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념물이다.

    그러나 초기 성당 건물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고,

    그 자리에 1954년 공소 건물을 새로 세웠다가 2006년 복원사업을 통해 일부 복원되었다.

    성당 구내에는 성당 외에 사제관과 기술학교인 태극계명학교 등이 있었고,

    성당 뒤편에는 전라도에서 활동했던 두 명의 프랑스 선교사(조스 신부, 라푸르카트 신부) 묘가 있다.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승치로 477 (승치리)

    천주교 되재성당 (문의 전화 고산성당 063-262-6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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